2화
‹ ›종소리는 자정이 넘도록 그치지 않았다.
처음엔 그냥 시간을 알리는 종인가 했다. 그런데 열두 번을 넘기고도, 스무 번을 넘기고도 계속 울려서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세는 것도 그만뒀다. 저 아래 신전에서 울리는 소리인지, 마을 어귀 종탑에서 울리는 소리인지도 몰랐다. 그냥 벽을 타고 스며드는 진동만 느껴졌다.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처럼.
'저것도 나 때문인가.'
그런 생각이 드는 것부터가 웃긴 일이었다. 이 탑 안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 나랑 무관한 게 있긴 한 건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뭔가 이상한 일이 생기면 습관처럼 나를 의심하게 됐다.
다음 날 아침, 문 아래로 식사를 밀어넣는 시녀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으로.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쟁반을 든 것도 아니고 빈손으로 접시 하나 미는데 저렇게 떨 일인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뭐야, 왜 저래.'
"무슨 일 있어요?"
내가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발소리만 급하게 멀어졌다. 평소라면 짧게라도 "식사하세요" 정도는 말해주던 사람인데. 이 탑에 갇힌 지 두 해, 저 목소리를 들은 것도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그 몇 번의 인사조차 오늘은 없었다.
나는 문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접시를 물끄러미 봤다. 빵 한 조각, 수프 한 그릇.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식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입맛이 안 돌았다.
그날 오후, 나는 삼층 창가에 붙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평소라면 텅 비어 있던 탑 아래 마당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병사들, 사제복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담요를 덮은 무언가.
시체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담요 밑으로 삐죽 나온 발목이, 그 위로 흩어진 갈색 흙자국이, 사람들이 그 주변을 조심스럽게 도는 발걸음이. 저건 그냥 자다 죽은 게 아니었다.
'또네.'
또,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는 게 스스로도 이상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놀라지도 않고 그냥 '또'라니. 이게 정상인가.
이 탑에 온 지 두 해 동안,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 첫 번째는 겨울이 끝날 무렵이었다. 탑 근처 우물에서 물을 긷던 남자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다음엔 봄에, 탑 담벼락 아래 자라던 나무들이 한꺼번에 잎을 떨어뜨리고 죽었다. 여름엔 짐승이 말라 죽었다. 살가죽만 남은 채로. 가을엔 우물물이 하룻밤 사이 검게 변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겨울이 오려는 즈음에 사람이 또 죽었다.
다들 그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어쩐지 그 원인이 나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정말 그런가? 확신은 없었다. 그런데 확신이 없다는 것과 아니라는 것은 다른 얘기였다.
감시병 하나가 문밖에서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탑의 기운이 또 새어나온 거 아니야."
"쉿.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아니, 진짜로. 저번에 죽은 것도, 이번 것도 다 탑 근처잖아. 다른 데선 이런 일 없다고."
"목소리 낮춰.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발소리가 몇 걸음 멀어지더니 다시 낮아진 목소리가 들렸다.
"위에서도 알아? 이거."
"알겠지. 알면서도 말 안 하는 거지."
탑의 기운.
그 단어가 귀에 박혔다.
'내 얘기야?'
확신은 없었지만 무시하기도 힘들었다. 내가 이 방 안에서 가만히 앉아 숨만 쉬고 있어도, 뭔가가 이 벽 밖으로 새어나가고 있다는 뜻인가. 그럼 나는 뭐, 숨만 쉬어도 사람을 죽이는 존재라는 건가.
'아, 몰라.'
생각해봐도 답이 안 나오는 걸 계속 붙잡고 있어봐야 소용없었다. 나는 창가에서 물러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등이 서늘했다.
강서은이 온 건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화들짝 일어났다. 문이 밖에서 열린 건 밥 나를 때 말고는 처음이었다. 심장이 먼저 뛰기 시작했다.
"유리야."
두 해 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강서은은 신전의 흰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어깨에 걸친 은실 자수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반짝였다. 옷자락이 스칠 때마다 낯선 향, 향유 냄새 같은 게 났다. 예전엔 안 나던 냄새였다.
예뻤다. 여전히.
그리고 여전히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눈 밑이 살짝 그늘져 있었고, 웃는 얼굴인데도 뭔가 억지로 끌어올린 것 같았다.
"오랜만이다."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울지 마, 울지 마.'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는데도 눈가가 뜨거워졌다. 진짜 이상한 일이었다. 이 년 동안 안 울던 눈물이 왜 지금 나오는지.
강서은은 성큼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두 해 동안 참았던 무언가가 그 품 안에서 한꺼번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등을 감싸는 손이 예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았다. 신전에서 뭘 배웠는지, 이제는 어른 같은 손이었다.
"많이 힘들었지."
강서은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너는 안 힘들었어?"
내가 되묻자, 강서은은 대답 없이 웃었다.
그 웃음이 조금, 지쳐 있었다.
우리는 침대 끝에 나란히 앉았다.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 볕이 강서은의 옆얼굴에 걸렸다. 예전엔 나랑 같은 눈높이였는데, 지금 보니 어깨선도 목선도 그때보다 훨씬 여려 보였다. 살이 좀 빠진 건가.
강서은은 신전에서의 생활을 짧게 이야기해줬다. 매일 아침 기도를 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사람들 앞에서 성녀답게 웃어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나만 보면 손을 잡으려고 해. 성녀님, 성녀님, 하면서. 처음엔 좋았는데 이젠 좀…… 지쳐."
"그래도 넌 잘하잖아. 원래 그런 거 잘했으니까."
"잘하는 거랑 좋아하는 거는 다르지."
강서은이 어깨를 살짝 늘어뜨렸다.
"진짜 힘든 건 그게 아니야."
강서은이 목소리를 낮췄다.
"신전에서 자꾸 이상한 걸 물어봐. 이 근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이상한 일?"
"사람이 죽고, 짐승이 말라 죽고. 다들 그게 마왕의 봉인이 약해지는 징조라고 해."
마왕.
그 단어가 나오는 순간, 이상하게 등에 식은땀이 쫙 흘렀다.
'왜 하필 지금.'
"마왕이 어디 있는데?"
내가 최대한 태연하게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신경 쓰면서.
"몰라. 아주 오래전에 어딘가 봉인됐다고만 전해져. 이 근방일 거라고, 사제들이 그러더라. 신전 위쪽 사람들끼리 자기들끼리 계속 뭐라고 회의도 하고, 지도도 펴놓고 뭘 표시하고 그러던데."
"그렇게 심각한 얘기야?"
"응. 요즘 신전 분위기가 이상해. 다들 뭔가 준비하는 것처럼 서두르고."
강서은이 창밖을 힐끗 보더니 다시 나를 봤다.
"그래서 이 탑에 대해서도 물어봤어. 여기 갇힌 사람이 누군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랬더니?"
"아무도 모른다고 하더라. 기록이 없대. 그냥 오래전부터 있던 죄수라고만. 내가 자꾸 물어봤더니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라. 성녀님이 왜 그런 걸 궁금해하시냐고."
강서은이 내 손을 잡았다. 손바닥이 따뜻했다.
"유리야, 너 여기 있는 거, 위험할 수도 있어."
나는 웃으려고 했는데 웃음이 잘 나오지 않았다.
'위험한 건 이미 알고 있어.'
화분이 시들고, 새가 떨어져 죽고, 벌레가 재가 되는 걸 벌써 몇 번이나 봤는데. 손끝에서 뭔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그 느낌을, 나는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다.
그걸 강서은에게 말해야 하나, 나는 잠깐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다 얘기하면, 이 애가 도와줄 수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더 위험해지는 건가.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말하면, 얘가 나 무서워하면 어떡해.'
그 생각 하나가 목구멍을 꾹 눌러 막았다. 이 년 동안 유일하게 나를 사람으로 봐주는 애였다. 그 눈빛이 바뀌는 걸 보는 게, 죽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강서은이 돌아가기 전, 문 앞에서 다시 나를 안았다.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그 품 안에서 나는 두 해 치 외로움을 다 느낀 것 같았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신전에다 얘기해서 여기서 꺼내줄게."
"고마워."
짧은 대답이었지만 진심이었다.
"약속이야."
강서은이 문틀을 잡고 한 번 더 나를 돌아봤다. 눈에 뭔가 맺혀 있었는데 그게 눈물인지 그냥 빛의 반사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문이 닫히고, 다시 혼자가 됐을 때, 방 안은 갑자기 더 조용해졌다. 강서은이 있던 자리에 남은 향유 냄새만 아직 옅게 남아 있었다.
나는 창가에 놓인 화분을 물끄러미 봤다. 이 방에 들어온 첫날부터 있던 화분이었다. 작은 잎이 몇 개 붙어 있는, 이름도 모르는 풀이었다. 지금까지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뻗어 잎사귀를 살짝 만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이다.'
안심하려던 순간, 손바닥에서 검은 그림자 같은 게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화분 전체가, 순식간에,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소리도 없이.
연기도 없이.
그냥, 재가 됐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아무 흔적도 없었다. 화상도, 열기도, 냄새도. 그냥 평범한 내 손이었다.
그런데 방금 그건 뭐였을까.
'왜 하필 지금이야.'
강서은이 방금 나가고 얼마 안 됐는데. 만약에, 만약에 그 애가 아직 문밖에 있었다면.
등줄기로 식은땀이 다시 흘러내렸다. 나는 재가 되어버린 화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 검은 흔적을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만져봤다. 바스락,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냥 손이 스치자 가루처럼 흩어졌다.
밖에서 다시 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