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얼떨결에 대륙 흑막

2화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흘, 이라는 숫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천장의 나무 무늬를 눈으로 몇 번이나 따라 그렸는지 모른다. '짐을 싸면 어디로 가야 하지. 겨울에 갈 곳이 없는데.' 나는 이불 속에서 손가락을 접으며 셈을 했다. 은화 열두 닢, 그게 내가 가진 전부였다. 방을 하나 빌리려면 최소 한 달에 은화 여섯 닢은 필요했다. 두 달이면 끝이었다. '두 달 후엔 또 뭘 팔아야 하나.' 나는 손가락을 다시 접었다 폈다. 약초 상자, 화로, 낡은 의자. 팔 수 있는 건 몇 개 되지 않았다. 창밖으로 눈발이 날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난히 크게 들렸다. 다음 날, 나는 공방 문을 그대로 열었다. 달아날 곳도 없었고, 손님들에게 사정을 설명할 방법도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화로에 불을 붙이고, 선반을 정리했다. 말린 약초 다발을 순서대로 걸어두는 손이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였다. 오전 내내 손님이 두 명 왔다. 아이 옷을 수선하고, 깨진 접시를 붙였다. 은화 세 닢을 벌었다. 작은 위안이었지만, 사흘 안에 이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사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세 닢. 이걸로 뭘 할 수 있지.' 나는 동전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굴렸다. 차갑고 무거운 감촉이 오래 남았다. 둘째 날, 한도훈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부하가 넷으로 늘어나 있었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나는 하던 일을 멈췄다. "짐은 다 뺐나?" 그가 문을 열자마자 물었다.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시간?" 한도훈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소리가 좁은 공방 안에 크게 울렸다. "내가 사흘 준다고 했잖아, 그런데 벌써 시간이 부족하다고?" "저는 여기서 6년을 살았어요. 갈 곳을 찾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내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건 네 문제라고 했지."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이 선반 위를 훑었다. 짝! 그가 선반 위 유리병을 손등으로 쳐서 떨어뜨렸다. 약초가 담긴 병이 바닥에 부딪혀 깨졌다. 말린 쑥과 카모마일 가루가 마루에 흩어졌다. 쨍그랑, 하는 소리가 귓속에서 오래 맴돌았다. "아깝네." 그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런 게 다 얼마짜리인지도 모르고." 나는 그 병이 은화 다섯 닢짜리라는 걸 말하지 못했다.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그가 다시 선반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거 말고도 더 있잖아." 옆에 있던 부하 하나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됐어." 한도훈이 손을 내리며 말했다. "어차피 내일이면 다 갈아엎을 텐데." "내일까지다." 한도훈이 문을 향해 걸어가며 다시 말했다. "내일 이 시간에 여기가 그대로면, 내 손으로 다 뒤집어버릴 거야." 그가 부하들을 데리고 나가는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가 나간 뒤, 나는 무릎을 꿇고 깨진 유리조각을 하나씩 주웠다. 손끝이 몇 번이나 베였다. 피가 조각 사이에 스며들어 붉게 번졌다. 쑥과 카모마일 가루가 손에 묻어 알싸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걸 언제 다 치우지.' 나는 조각을 하나씩 헝겊에 담으며 생각했다. '무섭다.'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그 감정을 인정했다. 손이 떨려서 조각을 두 번이나 놓쳤다. 셋째 날, 마을 사람들 몇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박천수 아저씨도 왔다. 그의 손에는 작은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서인 씨, 우리가 뭘 도와줄 수 있을까?" 그가 물었다. "괜찮아요, 아저씨." 나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걸 숨기지 못했다. "이거라도 받아." 그가 보따리를 내밀며 말했다. "삶은 감자 몇 알이야. 별거 아니지만." "영주가 결정한 일이면 우리도 어쩔 수 없어." 다른 이웃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서인 씨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또 다른 이웃이 덧붙였다. 누구도 오래 머물지 못했다. 다들 눈치를 보며 하나둘 자리를 떴다. 공방 안에는 다시 나 혼자 남았다. '다들 무섭겠지.' 나는 감자가 든 보따리를 안고 생각했다. '나도 그런데.' 오후가 되자 한도훈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부하 넷을 데리고 왔고, 그의 표정에는 처음의 짜증이 아니라 즐거움이 섞여 있었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여유가 넘쳤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거, 알고 있지?" 그가 물었다. "짐을 다 못 뺐다면, 내가 직접 도와줄게." 그가 뒤에 선 부하들을 향해 턱짓을 했다. 부하 둘이 선반 쪽으로 다가갔다. 그가 성큼 다가와 내 손목을 잡았다. 차갑고 억센 손이었다. "잠깐, 놔주세요." 내가 손을 빼내려 했지만, 그의 손이 더 세게 조여들었다. "놔달라고 하면 놔줄 거 같아?" 그가 코웃음을 쳤다. "넌 그냥 조용히 따라오면 돼." 부하들이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갈 곳도 없잖아." 한도훈이 덧붙였다. 손목이 아파왔다. 손끝이 저려오고, 눈앞이 흔들렸다. 그 순간, 이상하게 오래된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어린아이의 손이, 지금 잡힌 내 손과 겹쳐졌다. 열한 살쯤 아이의, 뜨겁게 달아오른 작은 손이었다. 마력이 통제를 벗어나 온몸에서 새어나오던 그 아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도 이렇게 손이 뜨거웠는데.' 나는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생각했다. 한도훈이 나를 끌고 가려던 그 순간, 나는 문득 저 멀리서, 아주 익숙한 기운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건 12년 전, 내가 처음 느꼈던 그 아이의 기운과 똑같았다. 심장이 갑자기 크게 뛰었다. '설마.' 나는 손목이 아픈 것도 잊고 그 기운이 다가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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