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얼떨결에 대륙 흑막

4화

두 달 후, 6월.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은 열일곱 개였다. 나는 그 계단을 매일 저녁 여덟 시부터 세었다. 첫 번째 계단은 나무가 썩어 밟을 때마다 삐걱거렸고, 여섯 번째 계단부터는 벽에 곰팡이 자국이 번져 있었다. 그 자국을 손으로 짚으며 내려가는 게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있었다. 강도윤은 마력 제어를 조금씩 익혀갔다. 처음엔 하루에 열 번씩 발작을 일으키던 아이가, 두세 번으로 줄었다. 나는 매일 저녁 시술소 지하실로 내려가 그를 만났다. 손바닥을 마주 대고 마력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훈련부터 시작했다. 도윤의 손은 아직도 어른 손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였는데, 그 작은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은 3급 마법사인 나조차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짙었다. “선생님, 이번엔 셌어요?” 도윤이 물었다. “조금.” 내가 대답했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셌잖아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시 해봐. 이번엔 천천히.” 내가 손을 다시 내밀었다. 그 시간이 어느새 내 하루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아침에 시술소 접수대에서 손님들의 증상을 받아 적을 때도, 오후에 3급 마법사들끼리 모여 잡일을 나눠 맡을 때도, 나는 속으로 여덟 시를 기다렸다. 도윤을 만나러 가는 시간만이 그날 하루에서 유일하게 내가 뭔가를 제대로 해내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어느 밤, 도윤이 팔에 시퍼런 멍이 든 채 나타났다. 멍은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넓게 퍼져 있었다. 색이 짙은 곳은 거의 검은색에 가까웠다. “이게 뭐야?” 내가 놀라서 물었다. 도윤은 대답 대신 소매를 끌어내려 멍을 가리려 했다. 나는 그 손을 붙잡고 소매를 다시 걷어 올렸다. “말해봐. 누가 그런 거야?” 내가 다시 물었다. “형이…… 마력 그릇 검사한다고 일부러 발작을 유도했어요.” 도윤이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폭주하면 재밌다고 그러거든요.” 나는 그 순간 손이 떨리는 걸 느꼈다.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떨림이 팔을 지나 어깨까지 올라왔다. “누가 그랬어?” 내가 물었다. “1황자 형이요.” 도윤이 대답했다. “괜찮아요. 늘 있는 일이라.” 도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멍든 팔을 계속 문지르고 있었다. 아프지 않은 척하려는 손짓이었다.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전혀 괜찮지 않게 들렸다. 열한 살짜리 아이가 저런 말투로 자신의 상처를 설명하는 걸 나는 그때 처음 들었다. 나는 그날 밤 시술소 원장을 찾아가 항의했다. 원장실은 3층 끝에 있었는데, 문을 두드리기까지 계단을 세 번이나 오르내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 아이가 학대당하고 있어요.” 내가 말했다. 원장은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나를 힐끗 보았다. “3황자는 원래 골칫거리예요.” 원장이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팔에 멍이 시퍼렇게 들었는데도요?” 내가 되물었다. “제가 뭘 어쩌겠어요. 저는 3급 마법사예요.” 내가 다그치듯 말했다. “그러니까 조용히 시키는 일만 하란 말이에요.” 원장이 서류를 탁 소리 나게 덮으며 말했다. “황실 사람들 일에 3급이 끼어들어서 좋을 거 하나도 없어요. 아시겠어요?” 항의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원장실을 나오면서 나는 복도 벽을 한 번 세게 짚었다. 벽지가 벗겨진 자리에 손바닥 모양의 얼룩이 남았다. 대신 나는 그날부터 도윤의 방에 작은 결계를 걸어두기 시작했다. 아주 미약한 결계였지만, 누군가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정도는 됐다. 마력을 아낀다고 아껴도 하루에 쓸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결계를 유지하는 대신 다른 훈련에 쓸 마력을 줄여야 했다. “이게 뭐예요?” 도윤이 물었다. “네가 자는 동안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는 거야.” 내가 대답했다. “약속할게. 여기서는 아무도 널 못 건드려.” 도윤은 결계의 경계선을 손끝으로 따라가며 만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막이었지만, 그 손끝에서 희미한 파장이 일었다. “진짜로 아무도 못 들어와요?” 그가 다시 물었다. “내가 매일 다시 걸어줄 거야. 약해지면 바로 다시.” 내가 말했다. 그날 도윤은 처음으로 나에게 안겼다. 작은 몸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등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도윤의 어깨는 옷 속에서도 앙상하게 만져졌다. “선생님은 왜 저한테 잘해주세요?” 그가 물었다. “선생님도 힘든 사람이잖아요. 3급이라고 다들 무시하잖아요.” 나는 그 말에 잠시 놀랐다. 도윤이 내 처지까지 눈치채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접수대에서 다른 마법사들이 나를 부를 때 쓰는 말투나, 서류를 던지듯 건네는 손짓 같은 걸 이 아이가 다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도 사실 고향에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친척 집을 떠돌면서 자랐어.” 내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마법을 배운 것도 그냥 살아남으려고 배운 거야. 그래서 너 같은 애들 보면 그냥 못 지나치겠더라.” 도윤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지하실의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도 그 눈은 유난히 맑았다. “저는 선생님이 최고예요.” 그가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마법사예요.” 나는 그 말에 웃음이 났다. 지하실 벽에 걸린 낡은 램프 불빛이 흔들리며 도윤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지웠다 했다. “나는 3급인걸. 최고는 아니야.” 내가 대답했다. “등급은 상관없어요.” 도윤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제가 커서 최고가 될게요.” 도윤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때는 아무도 선생님을 함부로 못 대하게 할 거예요.” 나는 그 다짐이 그저 어린아이의 순진한 약속처럼 느껴져서 도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래, 기대할게.”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도윤은 그 말에 만족한 듯 내 품에 얼굴을 다시 파묻었다. 나는 도윤이 잠들 때까지 결계 위에 손을 얹고 앉아 있었다. 램프 불빛이 점점 잦아들고, 거칠게 흔들리던 아이의 숨소리도 조금씩 규칙적으로 변했다. 도윤이 잠든 뒤에도 나는 한동안 손을 거두지 않았다. 희미한 막 안쪽에서 검푸른 마력이 천천히 움직였다. 처음 만났던 날처럼 벽을 태우지도, 사슬처럼 몸을 조이지도 않았다. 결계의 표면이 도윤의 숨결을 따라 잔잔하게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그 힘은 그날 처음으로, 아이의 호흡에 맞춰 조용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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