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그로부터 아홉 달 뒤, 이듬해 3월.
도윤은 마력 발작 없이 하룻밤을 온전히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아침, 나는 도윤의 이마에 손을 얹어 체온을 확인했다.
서늘했다.
발작이 있던 밤이면 늘 미열이 돌던 이마였는데, 그날은 그저 평범한 열한 살 아이의 체온이었다.
나는 그 순간 안도했다.
동시에, 뭔가 끝나가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원장은 그날, 도윤을 다시 황궁 본전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통보했다.
집무실 문을 열자마자 원장이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네 임무는 끝났어." 원장이 나에게 말했다.
"이제 저 아이는 정식 황자 교육을 받을 거야. 넌 필요 없어."
나는 그 서류를 받아 들었다.
황궁 인장이 찍힌 이송 명령서였다.
날짜는 사흘 뒤였다.
"발작이 재발하면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건 본전 마법사들이 알아서 할 일이야." 원장이 짧게 대답했다.
더 물을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임시직 마법사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며칠 밤을 뒤척였다.
계약서를 다시 꺼내 읽어봤지만, 원장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계약 기간은 도윤의 발작이 멈출 때까지였고, 그 조건은 이미 충족되었다.
'거의 일 년이었구나.' 나는 속으로 셈했다.
'그동안 매일 밤 저 아이 곁을 지켰는데.'
셋째 날 밤, 짐을 챙기면서도 손이 자꾸 멈췄다.
마지막 날 저녁, 나는 도윤의 방을 찾았다.
방문을 두드리자 도윤이 침대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작은 손에 낡은 그림책을 쥐고 있었지만, 페이지는 넘겨지지 않고 있었다.
"내일 황궁으로 돌아간다며." 내가 말했다.
"네." 도윤이 대답했다.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선생님이랑 이제 못 만나요?"
"모르겠어. 나는 그냥 임시직 마법사였으니까." 내가 솔직하게 말했다.
도윤은 그림책을 덮었다.
"본전에는 마법사 선생님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도윤이 말했다.
"근데 저는 선생님이 좋았어요."
그 말에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침묵했다.
도윤이 갑자기 내 손을 붙잡았다.
작은 손인데도 힘이 셌다.
"약속해주세요." 그가 말했다.
"제가 나중에 찾으러 갈게요.
어디에 있어도, 제가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
나는 그 손을 내려다봤다.
손등에 아직 마력 발작의 흔적인 옅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그 흉터를 볼 때마다, 나는 그 아이가 얼마나 많은 밤을 혼자 버텼는지 떠올렸다.
나는 그 순간, 내 손목에 걸고 있던 작은 은반지를 빼서 그에게 건넸다.
어머니가 남겨준 유일한 유품이었다.
가난한 살림에도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그 반지를 팔지 않았다고 했다.
"이걸 가지고 있어." 내가 말했다.
"이 반지에 내 마력 흔적이 남아 있으니까,
네가 크면, 이걸로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도윤은 그 반지를 받아 꼭 쥐었다.
손가락이 작아서 반지가 헐렁하게 걸렸다.
"고향으로 돌아가실 거예요?" 그가 물었다.
"응. 북쪽 청하촌이라는 데야. 거기서 공방을 하나 차릴까 해." 내가 대답했다.
"작은 마법 공방이야. 물건 고쳐주고, 부적 만들어주고, 그런 거."
도윤은 그 말을 몇 번이나 되뇌듯 중얼거렸다.
"청하촌... 청하촌." 그가 말했다.
"잊지 않을게요."
다음 날 아침, 도윤은 황궁 마차에 실려 떠났다.
마차 문이 닫히기 직전, 도윤이 창문 틈으로 손을 흔들었다.
반지를 낀 손이었다.
창문 너머로 그가 계속 나를 돌아보던 모습이, 마지막 장면으로 남았다.
마차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12년이 지났다.
나는 청하촌에 자리를 잡고 공방을 열었다.
간판도 없이 작은 나무 문에 '마법 잡화 수선'이라고 손으로 써 붙인 정도의 공방이었다.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부적을 사러 오는 촌부들과 도구를 고쳐달라는 사냥꾼들 덕에 근근이 먹고살았다.
도윤이 대현제국의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은 소문으로만 들었다.
장에 나갔다 온 옆집 아주머니가 전해준 이야기였다.
"글쎄, 서자 출신 황자가 황위에 올랐다지 뭐야." 아주머니가 말했다.
어린 서자였던 그가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 반지에 대한 이야기도, 그가 나를 기억할 거라는 기대도,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옅어져 갔다.
공방 뒷방 서랍 속에는 아직도 도윤이 쓰던 그림책이 한 권 있었다.
그날 짐을 싸다 실수로 챙겨 온 것이었는데, 버릴 때를 놓쳐 12년째 그대로였다.
그런데 지금, 한도훈의 손에 손목이 잡힌 이 순간, 나는 그 기운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12년 전 그 아이의 마력과 똑같은 기운이, 점점 더 가까이,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손목을 잡은 한도훈의 손가락 사이로 땀이 배어 나왔다.
"놔... 놔주세요." 내가 다시 손을 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조용히 하라고 했잖아." 한도훈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의 부하들 중 하나가 낄낄거리며 나를 내려다봤다.
"이 촌구석 마법사가 뭘 안다고 그렇게 겁을 먹어?" 부하가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할 힘도 없었다.
그 기운은 이제 문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쾅!
그 순간, 공방의 창문이 통째로 날아갔다.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고, 바닥이 진동하듯 흔들렸다.
낡은 선반 위의 부적 재료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한도훈의 부하들이 놀라 뒤로 물러섰다.
"뭐, 뭐야!" 부하 하나가 소리쳤다.
문 앞에, 검은 제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스물세 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서늘한 눈빛을 지녔고, 손가락에는 은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제복 소매 끝에는 황실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 반지를 보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저건... 내가 준 그 반지야.'
그가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며, 낮게 입을 열었다.
"내 스승님한테서,
손 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