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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사흘은 서아에게 짧았고, 도윤에게는 길었다. 같은 시간이 이렇게 다르게 흐를 수 있다는 것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였다. 서아는 그 사흘을 훈련장에서 보냈다. 새벽 검술 백 회, 낮에는 실전 대련, 밤에는 검로를 되짚는 복기. 12년 쌓아온 습관이 그대로 반복되었을 뿐이었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지만 서아는 개의치 않았다. 검을 뽑고, 내리고, 다시 거두는 동작 하나하나가 몸에 새겨진 지 오래였다. '백 회를 채우지 못하면 하루를 시작할 수 없다.' 그것은 서아의 아버지가 남긴 말이었고, 서아는 그 말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낮에는 대련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상급생이든 하급생이든, 검을 마주 세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상대로 삼았다. "윤서아, 오늘도 세 명째야." 대련을 마친 상대가 헐떡이며 말했다. "더 할 사람 있어?" 서아가 검을 늘어뜨린 채 물었다. 숨소리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 물음에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밤이 되면 서아는 훈련장 한쪽에 앉아 그날의 검로를 되짚었다. 눈을 감고, 손목을 움직이며, 어디서 힘이 새었는지를 하나씩 짚어냈다. 그 복기는 길었다. 짧으면 반 시진, 길면 두 시진을 넘기기도 했다. "오늘도 늦게까지 하네." 하늘이 훈련장 문가에서 말했다. "평소랑 같아." 서아가 검을 거두며 답했다. 이마의 땀이 등불 아래 반짝였다. "긴장 안 돼?" 하늘이 물었다. "긴장할 이유가 없어." 서아가 검집에 검을 꽂았다. "준비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아." "상대가 도윤이잖아." 하늘이 다시 말했다. "그 애,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 "이상해도 상관없어." 서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상한 것과 이기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그 말은 사실이었다. 적어도 그날까지는 사실이었다. 도윤은 그 사흘 동안 방을 벗어나지 않았다. 결투가 두렵기보다는, 결투 후 다시 사람들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냥 지면 안 될까.' 도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면 조용히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방 안에 틀어박힌 사흘 동안, 도윤은 검을 단 한 번도 뽑지 않았다. 검집에 손을 얹었다가도, 이내 손을 떼고 돌아섰다. '검을 뽑으면 그 감각이 다시 올라온다.' 그것이 두려웠다. 검을 쥐는 순간 몸이 스스로 움직인다는 것, 그 사실이 낯설고 불편했다. 문밖에서 몇 번인가 발소리가 들렸다. 동기들이 지나가며 낮게 주고받는 말소리도 섞여 있었다. "저 자식, 방에서 안 나온대." "긴장해서 그런 거 아니야?" "긴장이 아니라 포기한 거겠지." 도윤은 그 말들을 다 들었지만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 대응할 힘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런 말을 하셨다.' 도윤은 문득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검을 쥔 자는 물러설 자리를 스스로 정하지 않는다. 물러설 자리는 상대가 정해준다.' 그 말이 지금 무슨 소용이 있는지 도윤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오래된 문장 하나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가 가라앉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다짐과는 무관하게, 검을 쥐면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전생의 감각은 도윤의 의지와 별개로 살아 있었다. 그 사실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자신의 것이면서도 자신의 것이 아닌 감각,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사흘이 흘렀다. +++ 결투가 열리는 날, 훈련장 관람석은 이미 가득 찼다. 신입생들 사이에서 이 대결은 가장 큰 구경거리였다. 신동과 평민의 대결, 그 구도 자체가 흥미를 끌었다. 이른 아침부터 자리를 맡으려는 신입생들이 몰려들었다. 좋은 자리를 두고 작은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저 애가 이길 수 있을까." 관람석 한쪽에서 누군가 중얼거렸다. "윤서아를 상대로? 말도 안 되지." 다른 목소리가 곧바로 그 말을 눌렀다. "그래도 세 판 연속으로 이겼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건 운이었을 거야. 윤서아는 다르지." 대다수의 예상은 하나로 모아졌다. 도윤이 검을 뽑기도 전에 패배할 것이라는. 관람석 여기저기서 내기 비슷한 말들이 오갔다. 몇 명은 서아가 몇 초 만에 끝낼지를 두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다만 몇몇의 눈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도윤이 걸음을 옮기는 방식, 체중을 싣는 방향, 그 자연스러움을 유심히 살피는 시선이었다. 하늘도 그중 하나였다. 훈련장 초입에서 도윤이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던 하늘의 눈빛이 조금씩 굳어갔다. "저거..." 하늘이 작게 중얼거렸다. "걸음이 이상한데." 옆에 있던 동기가 물었다. "뭐가 이상해?" "모르겠어. 그냥, 처음 보는 걸음이야." 하늘이 답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자신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서아는 결투장 중앙에 먼저 섰다. 검을 두 손으로 곧게 세운 자세, 흔들림 없는 눈빛. 12년의 무게가 그 자세 하나에 담겨 있었다. 서아의 자세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발의 각도, 어깨의 높이, 검을 쥔 손의 힘, 모든 것이 오랜 수련으로 다듬어진 결과였다. 관람석에서 낮은 감탄이 새어나왔다. "저게 12년 배운 검이구나." 누군가가 말했다. 도윤이 반대편에 섰다. 검을 쥔 손은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었고, 시선은 여전히 관람석을 피하고 있었다. 그 대비는 극명했다. 한쪽은 완성된 결의였고, 다른 한쪽은 준비되지 않은 무력함이었다. 누가 보기에도 이 대결의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였다. "긴장돼?" 서아가 먼저 물었다. 조롱은 아니었다.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조금." 도윤이 짧게 답했다. "나는 12년을 이 순간을 위해 살았어." 서아가 검을 고쳐 쥐며 말했다. "너는 뭘 위해 여기 서 있어?" 도윤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답을 찾기도 전에, 목 안쪽의 그 익숙한 걸림이 다시 올라왔다. '뭘 위해서냐고.' 도윤은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되뇌었다. 하지만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검을 쥔 손끝이 조금씩 차가워지는 것만 느껴졌다. 한서은이 결투장 옆에 섰다. 심판을 맡은 그녀의 표정에는 여느 때와 같은 냉정함뿐이었다. 평소 신입생들의 대련을 감독할 때와 다를 바 없는 태도였다. 그녀에게는 이 대결도 수많은 대련 중 하나일 뿐이었다. "양측, 준비되었는가." 그녀가 물었다. 서아가 짧게 답했다. "예." 도윤은 고개만 끄덕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관람석의 웅성거림이 점차 잦아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결투장 중앙으로 모였다. 숨소리마저 아껴가며 지켜보는 침묵, 그 침묵이 결투장 전체를 덮었다. "시작." 한서은의 말이 떨어졌다. 서아의 검이 먼저 움직였다. 쉭- 그 속도는 신입생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관람석 곳곳에서 짧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그 탄성은 끝내 이어지지 못했다. 경기장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무거운 정적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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