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능력을 나눠주는 소년

5화

그 소문이 실체를 드러낸 건 예상보다 빨랐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하와 마주쳤다.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넘어가면서 마을 어귀에 붉은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도하는 그때 여덟 살이었고, 형인 나를 무작정 졸졸 따라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아침에 눈뜨면 형, 밥 먹을 때도 형, 잠들기 전에도 형을 부르는 게 그 애의 하루였다. 그날도 마을 어귀에서 내가 오는 걸 보고 신나게 뛰어오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도하 뒤편에 최도영이 서 있었다. "오, 이하준 동생이네." 도영의 목소리에 웃음이 섞여 있었지만, 그 웃음이 좋은 뜻으로 들리지 않았다. "요즘 형이 마을에서 유명하다며. 애매한 기프트라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농사 박사가 되고, 사제가 갑자기 학자가 되고, 촌장이 갑자기 행정 천재가 되고. 그게 다 우연이라고 믿는 사람이 이 마을에 몇이나 될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도영이 정확히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말투에는 확신이 섞여 있었다. 마을 소문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무섭다. 누구 하나가 이상한 걸 눈치채면, 그 다음엔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무슨 소리야." 나는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모르는 척은." 도영이 도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도하가 몸을 움찔했다. 그 손이 아이 어깨를 짓누르는 걸 보는 순간 속이 뒤틀렸다. "네 동생한테 물어볼까? 형이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는지." "손 치워." 나는 짧고 낮게 말했다. 도영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눈빛에 예전과는 다른 뭔가가 있었다. 골목대장 노릇을 하며 애들 코 묻은 사탕이나 뺏던 시절의 그 눈빛이 아니었다. 뭔가를 계산하는 사람의 눈이었다. "내가 요즘 좀 바쁘거든." 도영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 마을 뜨는 거, 시간문제야. 근데 떠나기 전에 궁금한 게 좀 있어서. 네 능력이 진짜라면, 나한테도 좀 나눠주는 게 어때. 그럼 이 동생, 건드릴 일도 없을 텐데." 협박이었다. 대놓고 하는. 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하는 이미 겁에 질려 있었다. 눈에 눈물이 그려지고 있었다. 여섯 살, 여덟 살, 아홉 살 — 그 애 나이대 아이들이 이런 상황에서 짓는 표정을 나는 알고 있었다. 도망갈 곳도 없고, 형 뒤에 숨는 것도 이제 안 되는 상황에서 짓는, 겁먹은 표정. "형..." 도하가 작게 나를 불렀다. 나는 그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영을 협상 상대로 볼 게 아니었다. 지금 당장 도하를 이 상황에서 빼내야 했다. 계산 같은 건 나중에 해도 된다. "알겠어." 나는 도영을 향해 말했다. "뭘 원해." 도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검사 기프트를 더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어? 그런 거 있다며." 순간 나는 판단해야 했다. 도영에게 스킬을 주는 게 옳은 선택인지. 시스템은 신뢰 관계를 조건으로 걸었는데, 도영과는 신뢰라고 부를 만한 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다. 이 상황에서 억지로 스킬을 주려 하면 발동될지조차 알 수 없었다. [대상: 최도영. 신뢰 관계 미형성. 스킬 부여 불가] 그 문장이 뜨는 순간, 나는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안 되는 거였다. 이 상황에서 굳이 시도할 필요도 없었다. 만약 됐다면 어쩔 뻔했나. 협박에 굴복해서 힘을 내주는 순간, 그 다음엔 더 큰 걸 요구했을 거다. 도영 같은 인간은 한 번 뭔가를 손에 넣으면 절대로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못 해." 나는 도영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런 식으로는 안 돼." 도영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이 꼬맹이가 어떻게 되든 관심 없다는 소리네." 그가 도하의 팔을 세게 잡아당겼다. 도하가 소리를 질렀다. "놔!" 나는 소리쳤다. 그리고 몸이 먼저 움직였다. 달려가서 도영의 손을 쳐냈다. 도영은 예상보다 강한 반발에 살짝 밀렸다가, 곧 표정을 험악하게 바꿨다. 검사 기프트를 가진 애가 힘으로 밀리는 걸 그냥 넘길 리 없었다. 도영의 오른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뭘 차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 동작만으로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너 지금..." 다행히 그때 밭에서 돌아오던 마을 어른 몇이 소란을 듣고 다가왔다. 낫이나 호미를 든 채로, 무슨 일이냐고 묻는 목소리들이 겹쳐 들렸다. 도영은 혀를 차며 손을 놓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도영이 마지막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근데 이거, 끝난 거 아니야."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눈을 떼지 않았다. 마을 어른 하나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충 아이들 장난이었다고 얼버무렸다.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애매한 기프트, 신뢰 관계, 스킬 부여 같은 말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나는 도하를 끌어안았다. 도하는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형, 무서웠어." 도하가 훌쩍이며 말했다. "그 형이 계속 나 따라다니면서 이상한 거 물어봤어. 형한테 뭐 배운 거 있냐고, 형이 뭐 이상한 능력 있냐고..." 나는 도하의 등을 쓸어주며 생각했다. 이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였다. 도영은 이미 내 능력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었고, 그 확신을 이용해 도하를 계속 건드릴 게 뻔했다. 한 번 물었던 개는 다시 문다. 도영 같은 인간은 특히 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도하는 내 손을 꼭 붙잡고 걸었다. 평소보다 세게,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그날 밤, 나는 도하의 방에 들어갔다. 도하는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지만 잠들지 못하고 눈을 뜨고 있었다. 방 안은 어두웠고, 창밖으로 벌레 우는 소리만 낮게 이어졌다. "형." 도하가 나를 보며 작게 불렀다. "나 오늘 그 형 다시 만날까 봐 무서워." 나는 도하의 옆에 앉았다. 침대가 살짝 꺼졌다. 여덟 살짜리 아이에게 이런 두려움을 심어준 게 내 탓 같았다. 내 능력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도영이 도하를 표적으로 삼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 하나 조심스럽지 못했던 대가를 왜 도하가 치르고 있나. 그런 생각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대상: 이도하. 신뢰 관계 형성 확인. 스킬 부여 가능. 추천 스킬: 정신통일] 시스템이 그 문장을 띄웠다. 나는 한동안 그걸 들여다봤다. 정신통일. 하은에게 줬던 그 스킬이 다시 추천됐다. 하지만 나는 망설였다. 도하는 아직 여덟 살이었다. 하은이 그 스킬을 받았을 때보다 어렸고, 정신을 다스리는 능력이 이 나이에 어떤 형태로 발현될지 알 수 없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감정을 억누르는 법을 배우면, 그게 오히려 아이의 성장을 왜곡시킬 수도 있었다. 마음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억지로 눌러 놓으면 어디선가 다른 형태로 터진다. 그래도 지금 당장, 도하에게는 무너지지 않을 힘이 필요했다. 도영이 다시 접근했을 때 겁에 질려 아무것도 못 하는 것보다는, 최소한 스스로를 지킬 정신적 버팀목이 있는 게 나았다. 여섯 시간을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올 문제를 오 분 만에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위험한 선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손을 뻗었다. "도하야."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이 뭔가 줄 수 있는데, 무섭지 않게 도와주는 거야. 받아볼래?" 도하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봤다. 어둠 속에서도 그 눈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형이 준다면, 받을래." 그 말에 망설임이 없었다. 아이는 형을 무조건 믿고 있었다. 그 신뢰가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내가 뭘 줘도, 심지어 그게 독이라도, 도하는 눈을 감고 받을 것 같았다. 그런 믿음을 이용하는 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옳은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는 도하의 손을 잡았다. 작고 따뜻한 손이었다. [스킬 부여: 정신통일 — 대상: 이도하] [결과: 대상의 자질과 상황에 따라 효과가 조정됩니다. 경고: 대상의 연령이 권장 범위 미달입니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고 문구를 본 순간 손을 거두고 싶었지만, 이미 스킬은 발동되고 있었다. 손을 놓으면 오히려 더 위험할 것 같았다. 도하의 몸이 떨렸다. 눈을 감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숨소리가 점점 짧아지다가, 어느 순간 뚝 끊기듯 멈췄다. 몇 초가 지났다. 그 몇 초가 몇 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도하가 눈을 떴다. 표정이 이상하게 차분했다. 여덟 살 아이답지 않은 눈빛이었다. "형." 도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안 무서워." 그 말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나는 도하의 얼굴을 살폈다. 눈빛에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이상한 단단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덟 살 아이가 가질 법한 표정이 아니었다. 마치 훨씬 나이 든 사람이 아이의 얼굴을 빌려 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도하야, 진짜 괜찮아?" 내가 다시 물었다. "괜찮아." 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준 거니까 괜찮아." 그 대답이 마음에 걸렸다. 괜찮다는 판단의 근거가 온전히 나였다. 도하는 스킬을 받고 안정을 찾은 게 아니라, 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로 안정을 흉내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차이가 뭔지, 그때는 정확히 짚어낼 수 없었지만 뭔가 어긋나 있다는 감각만은 분명했다. 그날 밤 나는 도하가 잠든 뒤에도 오래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아이의 숨소리가 고르게 이어졌다. 이제 겁먹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동시에 뭔가 잘못된 걸 건드렸다는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창밖으로 달빛이 방 안을 비스듬히 가르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의 경계가 도하의 얼굴 위를 지나가는 걸 오래 지켜봤다. 다음 날 아침, 도하는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밥을 먹을 때도 조용했고, 어머니가 걱정스레 물어도 짧게 대답만 했다. 응석받이였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평소라면 반찬투정을 하거나, 밥그릇을 다 비우고도 더 달라고 조르던 애였다. 그런데 그날은 숟가락을 몇 번 뜨다가 조용히 내려놓았다. "도하 요즘 왜 이렇게 조용해." 어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어제 무슨 일 있었니?" "그냥, 좀 놀랐나 봐요." 나는 얼버무렸다. 어머니는 더 캐묻지 않았지만, 표정에 걱정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의 눈이 도하와 나 사이를 오가는 게 느껴졌다. 뭔가를 눈치챈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자식이 아픈 걸 못 견디는 부모의 눈빛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날 아침, 밥그릇을 앞에 두고 생각했다. 도하를 지키기 위해 한 선택이 도하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아직 완전히 알 수 없었다. 아버지가 농사에 미친 듯 몰두하게 됐을 때도, 사제가 하루아침에 학자가 됐을 때도, 다들 좋은 쪽으로만 변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도하를 보면서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이 스킬이라는 게, 정말로 사람을 좋은 쪽으로만 바꾸는 걸까. 아니면 그냥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을 지워버리는 걸까. 밥알이 입 안에서 겉돌았다. 목으로 넘기는 게 힘들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마을 어귀에 처음 보는 낯선 남자들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밭일을 나갔던 이웃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와 전한 소식이었다. 도영과 함께 있는 걸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옷차림이 마을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랐고, 허리에 무기를 차고 있었다는 얘기도 돌았다. 낫이나 호미가 아니라, 제대로 만들어진 검이었다고 했다. 소문이었던 도적단이, 이제는 진짜로 마을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순간, 나는 어제 도영이 남긴 마지막 말을 다시 떠올렸다. 끝난 거 아니라고. 그 말이 이렇게 빨리, 이런 형태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도하의 손을 잡고 걸었던 어젯밤의 감각이 아직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그 손을 지키기 위해 뭘 더 해야 하는지, 나는 아직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채였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