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정하윤을 따라 걷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숲을 지나고, 다시 들판이 나왔다.
들판이 끝나자 또 낮은 언덕이 나왔다.
언덕을 넘으니 다시 숲이었다.
다들 지쳐가고 있었다.
말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발소리만 규칙적으로 울렸다.
바스락, 바스락.
강도현은 뒤에서 그 행렬을 훑어봤다.
스무 명 남짓, 다들 걸음이 느려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다리를 절뚝거렸다.
누군가는 아예 뒤처져서 옆 사람 팔을 붙잡고 있었다.
이것도 게임이라면 페이스 조절부터 실패한 거다.
강도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서정은 앞쪽에서 계속 정하윤에게 질문을 던졌다.
쉬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는 것처럼.
길드 등록하면 뭐부터 하는 거예요?
직업 판정을 받으시게 됩니다.
정하윤이 대답했다.
판정은 누가 하는데요?
이서정이 다시 물었다.
시스템이 합니다.
정하윤이 짧게 답했다.
이서정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판정 기준을 미리 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정하윤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등급이 정해지는 방식은요?
경험치는 어떻게 쌓는 거고요?
스킬은 랜덤으로 배정되나요, 아니면 선택할 수 있나요?
정하윤은 하나씩 짧게 답했다.
그때마다 표정 없이, 정해진 답만 하듯이.
이 여자는 여기 와서도 정보를 캐는구나.
강도현은 그 뒷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살아남는 법을 게임 게시판 눈팅하듯 찾고 있네.
나쁜 방식은 아니지.
강도현씨.
정하윤이 갑자기 그를 불렀다.
네?
강도현이 걸음을 멈췄다.
앞줄에 있던 사람들도 덩달아 걸음을 멈췄다.
시선이 몰렸다.
혹시 이런 시스템, 익숙하세요?
정하윤이 물었다.
게임 좀 해봤습니다.
강도현이 짧게 답했다.
정하윤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뭔가 재는 눈빛이었다.
그럼 먼저 등록소로 가시죠.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왜 저부터요?
강도현이 눈을 좁혔다.
적응이 빠른 분이 먼저 가시는 게 낫습니다.
정하윤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유가 그거 하나뿐이겠냐.
강도현이 속으로 되물었다.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근데 지금 물어봐서 나올 대답도 아니고.
이서정이 그 대화를 놓치지 않았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강도현씨, 나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저도 게임 경험 꽤 있는데.
순번이 있어서요.
정하윤이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서정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순번이라니, 웃기는 소리.
방금 정한 순번이잖아요.
이서정이 낮게 되물었다.
정하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이 더 얄궂었다.
답을 안 주는 게 답이라는 뜻처럼.
강도현은 정하윤을 따라 앞서 걸었다.
등 뒤로 이서정의 시선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따갑다.
등판이 다 뜨거울 지경이다.
저 사람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뒤에서 누군가 낮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안 놀라잖아.
다른 목소리가 맞장구쳤다.
몬스터 나오고 시스템 창 뜨고 다 난리였는데
저 남자만 유독 멀쩡했어.
강도현은 못 들은 척했다.
어차피 해명해봤자 안 믿을 거다.
내가 이 바닥 십 년 넘게 판 사람이라고 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놈이 몇이나 되겠어.
의심받는 것보단 낫지.
튀는 것보단 조용히 이용하는 게 나으니까.
삼십 분쯤 더 걷자, 커다란 건물이 나타났다.
낡은 창고 같은 외형이었다.
돌벽에 굵은 나무 기둥, 그 위에 걸린 간판.
길드 등록소, 라고 적혀 있었다.
간판 글씨는 낡아서 반쪼가리만 남아 있었다.
등록소, 그 앞자리는 알아볼 수 없었다.
여기가 등록소입니다.
정하윤이 문을 가리켰다.
문은 두꺼운 나무판이었다.
경첩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렸다.
안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비켜! 비키라고!
뭐지, 저건.
강도현이 미간을 좁혔다.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에요.
정하윤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지금까지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변화가 오히려 더 불안했다.
안쪽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나오고 있었다.
다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한 명은 넘어질 뻔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밀려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괴물이야, 괴물이 나왔어!
누군가 소리치며 지나갔다.
뒤이어 또 다른 사람이 뛰쳐나왔다.
등에 긴 상처가 나 있었다.
피가 옷을 다 적셔놓고 있었다.
강도현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등록소 안쪽, 뭔가 짙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거대하다, 라는 게 첫 느낌이었다.
그림자만 봐도 사람 크기가 아니었다.
이거 들어가도 되는 거예요?
강도현이 정하윤을 돌아보며 물었다.
정하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입술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원래는 이런 일이 없는데요.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분명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이서정도 어느샌가 뒤따라와 있었다.
그녀의 얼굴도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누구도 먼저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문틈 사이로, 무언가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크르르르.
강도현의 등줄기에 서늘한 감각이 스쳤다.
첫 시작부터 이거냐.
씨발, 등록소가 아니라 던전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