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과장님, 여기도 야근이라뇨

5화

여현주는 등록이 끝난 이들을 한쪽 게시판 앞으로 모았다. 첫 임무는 여기서 확인하세요. 게시판에는 여러 개의 게시물이 붙어 있었다. 대부분 초급 던전, 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초급 던전 : 이끼의 미로] [난이도 : 하] [보상 : 화폐 30, 경험치 소] [초급 던전 : 마른 우물] [난이도 : 하] [보상 : 화폐 25, 경험치 소] 강도현은 게시물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다들 비슷한 수준의 임무였다. 차이가 있다면 위치와 보상 액수 정도. 어디부터 갈래요? 김나영이 옆에서 물었다. 가까운 곳부터 가야죠. 강도현이 지도를 가리켰다. 멀리 갈 이유가 없잖아요. 강도현이 덧붙였다. 이서정은 이미 다른 조를 꾸리고 있었다. 나랑 같이 갈 사람 셋만 있으면 되는데. 몇몇이 그녀 쪽으로 몰려갔다. 강도현은 굳이 끼지 않았다. 같이 안 가요? 김나영이 물었다. 거기 낀다고 뭐가 달라지나. 강도현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난 혼자 가도 상관없어요. 강도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기본형 혼자서요? 박준혁이 코웃음을 쳤다. 기본형이 왜요. 강도현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 죽어도 아무도 안 챙겨줄 텐데. 박준혁이 말했다. 뭐, 죽으면 죽는 거고. 강도현이 대충 웃어넘겼다. 박준혁이 뭐라 더 말하려다 관두었다. 저런 놈은 신경 쓸 필요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판정서의 그 문구를 떠올렸다. 전략적 사고 감지, 조건부 활성. 뭔가 발동할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혼자 가는 게 유리하다. 누가 옆에 있으면 계산이 복잡해진다. 이끼의 미로로 향하는 길, 강도현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지도상으로 가장 가까운 던전이었다. 가는 길은 생각보다 짧았다. 십 분 정도 걸었을 뿐인데 벌써 초록빛 입구가 보였다. 입구에 도착하자 낮은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밀려왔다. 숨을 쉴 때마다 코끝이 축축해졌다. 안으로 들어서자, 벽 전체가 초록색 이끼로 덮여 있었다. 바닥은 미끄러웠고, 시야는 좁았다. [초급 던전 진입] [주의 : 미끄러운 지형] 친절하게도 알려주네. 강도현이 중얼거렸다. 강도현은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괜히 서두르다 넘어지면 손해다. 발밑에서 미끌, 하는 감각이 몇 번이나 스쳤다. 그럴 때마다 벽을 짚어 균형을 잡았다. 첫 번째 갈림길에서 두 방향이 나왔다. 하나는 좁고 어두웠고, 하나는 넓고 밝았다. 넓은 쪽이 함정일 확률이 높다. 강도현은 좁은 쪽을 선택했다. 이런 데서 넓고 밝은 길이 그냥 있을 리가 없지. 강도현이 속으로 생각했다. 예상대로였다. 좁은 길 끝에는 작은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숨겨진 보상 상자 발견] 오, 이런 것도 있네. 강도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역시 사람 안 다니는 길에 뭐가 있는 법이지. 강도현이 상자 뚜껑을 열었다. 상자를 열자 낡은 단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손잡이에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챙긴다. 강도현이 단검을 허리춤에 찔러 넣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타다닥. 강도현이 몸을 돌렸다. 작은 슬라임 형태의 몬스터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급 몬스터 : 이끼 슬라임] 이 정도는 문제없다. 강도현이 단검을 고쳐 쥐었다. 슬라임이 좌우로 흔들리며 거리를 좁혀왔다. 움직임이 단순했다. 패턴이 다 보이는데. 강도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슬라임이 튀어 오르는 순간, 강도현은 몸을 낮춰 피했다. 동시에 놈의 약한 부위를 정확히 찔렀다. 푸슉. 슬라임이 그대로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전투 승리] [경험치 획득] 생각보다 쉬운데. 강도현이 단검을 툭툭 털었다. 그 뒤로도 몬스터 몇 마리가 더 나타났지만, 강도현은 매번 지형과 각도를 계산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처리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상황을 미리 읽고 움직였다. 두 번째 슬라임은 좁은 통로에서 만났다. 뒤로 물러날 공간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강도현은 오히려 앞으로 파고들었다. 세 번째는 두 마리가 동시에 나타났다. 한쪽을 먼저 유인해 좁은 틈으로 몰아넣고, 다른 한쪽이 따라오는 틈에 순서대로 처리했다. 전부 계산대로였다. 운이 좋았던 게 아니라, 매번 상황을 미리 그려놓고 움직인 결과였다. [전략적 사고 감지 : 조건 충족] 갑자기 눈앞에 새로운 문구가 떠올랐다. 강도현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뭐야, 이거. 강도현이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글자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떠 있었다. [히든 특성 : 판단자(判斷者) 각성 조건 확인 중...] 판단자? 강도현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이런 단어, 어디서 본 적도 없는데. 강도현이 침을 삼켰다. 기본형이라고 던져놓고 뒤에서 이런 걸 숨겨놓은 건가. 강도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때, 미로 안쪽에서 낮은 진동이 울렸다. 쿠구구구. 바닥이 흔들리고, 벽의 이끼가 일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경고 : 미로 지형 이상 반응 감지] 강도현의 얼굴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이거, 초급 던전 맞아? 발밑의 바닥이 다시 한 번 크게 울렸다. 쿠구구구. 벽을 타고 흐르던 이끼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한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형태가 점점 사람 크기만큼 부풀어 올랐다. 강도현이 뒷걸음질을 쳤다. 등이 차가운 벽에 닿았다. 초급 던전에 이런 게 나올 리가 없는데. 강도현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미확인 개체 접근 중] 새로운 문구가 시야 한쪽에 떠올랐다. 동시에 이끼 덩어리 안쪽에서 붉은 눈 같은 것이 번뜩였다. 강도현의 손이 단검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거 판단자 각성이랑 관계있는 건가. 강도현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대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끼 덩어리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강도현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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