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쿵, 쿵, 쿵.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심장이 그 소리에 맞춰서 쿵쾅쿵쾅 뛰는 것 같았는데, 문제는 이 몸의 심장이 이미 반쯤 멈춰 있어야 정상이라는 거였다.
“성주님, 확인이 필요합니다. 문을 열어주십시오.”
낮고 사무적인 남자 목소리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게 서도현, 청류성 부병교위였다. 목소리만 들어도 딱 느껴지는 타입이 있다. 융통성 제로, 규율 100퍼센트, 딱 그런 부류. 회사로 치면 내부감사팀 팀장쯤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시스템 창에 다시 대고 물었다.
“지금 발동시키면 되는 거지? 진짜지? 나중에 딴말하면 안 된다?”
대답은 없었다. 이 인공지능 같은 시스템은 늘 이런 식이었다. 사람이 절박하게 물어봐도 절대 즉답을 안 해준다. 그냥 창 하단에 [발동] 버튼 같은 게 떴다. 진짜 게임이랑 똑같은 구성이라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
[신학 코멘트라도 좀 남겨주지, 이 답답한 인공지능아.]
마음속으로 욕을 뱉으면서 버튼을 눌렀다. 손가락이 떨렸다. 진짜 이 버튼 하나로 사람이 죽었다가 살았다가 하는 거라면, 최소한 “정말 발동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정도의 확인창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게 UI/UX 설계 실패의 전형적인 예시다.
[검은 죽음의 술법을 발동합니다.]
촤아아악!
몸속의 모든 열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심장이 뛰는 속도가 뚝 떨어지고, 손끝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마치 한겨울 새벽에 이불 밖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 그 감각을, 전신에 300배쯤 증폭해서 느끼는 기분이었다.
[전도서 3:2, 죽을 때가 있고 살 때가 있으며]
죽을 때인지 살 때인지 나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도. 성경 구절 인용해줄 시간에 “곧 있으면 정상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같은 실용적인 정보를 주면 안 되는 걸까.
숨을 완전히 멈췄다. 정확히는 멈춘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뿐인데, 실제로 숨이 안 쉬어지는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진짜로 죽는 줄 알았다. 폐 속에 남은 공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거 무슨 반신욕도 아니고, 반죽음욕이었다.
문이 벌컥 열렸다.
윤소하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이어졌다.
“저, 저기요, 아직 어의도 안 왔는데, 함부로 들어가시면……”
“됐다, 비켜라.”
서도현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발소리가 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저 발소리만으로도 이 인간이 얼마나 급한지, 그리고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들어오는지 느껴졌다. 아마 “저 성주는 이미 죽었을 거다”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오는 거겠지.
나는 그냥 침상에 누운 채로 죽은 척했다. 진짜로 죽었다시피 몸이 굳어 있었으니 연기랄 것도 없었지만. 눈꺼풀 하나도 못 움직이는 상태에서 연기력을 논하는 게 사치스러웠다.
서도현이 내 손목을 잡았다. 차가운 손가락이 맥을 짚는 게 느껴졌다.
느껴졌다는 게 문제였다. 검은 죽음의 술법이 맥박까지 완전히 숨겨주는 건 아니었나 보다. 이게 무슨 반값 세일 상품도 아니고, 결제했으면 풀옵션으로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순간, 시스템 창이 급하게 깜빡였다.
[경고: 맥박 위장 실패 확률 상승. 추가 개입이 필요합니다.]
추가 개입은 또 뭐야. 이거 완전 통신사 요금제 같잖아. 기본요금 내고 나면 자꾸 부가서비스 팔아먹는 거.
[대가: 신체 부담 2배 증가.]
선택지도 없이 그냥 통보였다. 이 시스템, 나한테 협의라는 개념이 없나 보다. 최소한 “동의하십니까?” 버튼 하나 만들어줄 순 없나, 약관도 안 보여주고 결제부터 시키는 게 딱 요즘 유행하는 다크 패턴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마음속으로 “해”라고 외쳤다.
촤르르르륵!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감각이 스쳤다. 이 악물고 참았다. 소리를 내면 그대로 끝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목구멍 안쪽에서 뭔가 비명이 올라오다가 목젖 근처에서 딱 멈춰 섰다. 이 순간만큼은 내 인생 최고의 인내심 발휘였다고 자평한다.
서도현이 손목을 놓았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맥이 거의 없군.”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안도가 아니라 의심이 섞여 있었다.
이 인간, 눈치가 빠른 타입이었다. 딱 촉이 좋은 인간이랑 엮이면 피곤한 이유가 이거다. 뭘 숨겨도 자꾸 파고든다.
“어의를 부르지 않고 검시를 강행하시는 건 규율에 어긋납니다.”
다른 목소리였다. 아마 검시관 중 한 명일 거다. 목소리에 나이가 좀 느껴졌다. 규율, 절차, 이런 단어를 좋아하는 타입 같았다.
“황 부황께서 직접 지시하셨다. 시간이 급하다고.”
서도현이 냉랭하게 대답했다.
황 부황. 황태석.
왜 이렇게 급한 걸까. 성주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왜 그렇게 확인하고 싶어 안달인 걸까. 정말 순수하게 조카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면 최소한 어의를 먼저 불렀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딱 유산 상속 개시 전에 사망신고서 먼저 접수하려는 그림이었다.
[역대 천마계의 계승법: 성주의 사망이 확인되는 순간, 상속 대전이 개시됩니다.]
[상속 대전: 후보자들이 무력과 정치적 지지를 겨루는 계승 절차.]
시스템이 그제야 정보를 흘려줬다. 이 타이밍에 알려주는 게 참 얄궂었다. 지금 알려줄 거면 발동 버튼 누르기 전에 좀 알려주지, 이런 게 딱 “계약서는 결제 완료 후에 보내드립니다” 스타일 아닌가.
그러니까, 이서준이 죽으면 곧바로 이 성의 자리를 두고 다들 칼 뽑아 드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뜻이었다.
황태석은 그 대전을 빨리 시작하고 싶어서 성주의 죽음을 서둘러 확인받으려는 거고.
뻔했다. 진짜 완전 재산 상속 분쟁에서 유서 조작하는 친척 서사랑 똑같잖아. 드라마에서 매번 보던 그 클리셰를, 지금 내가 침상 위에서 죽은 척하며 실시간으로 겪고 있다니 인생이 참 얄궂었다.
그때, 서도현이 다시 손을 뻗었다. 이번엔 목에 손가락을 짚었다.
[경고: 술법 지속 시간 한계 도달까지 47초.]
47초. 그 사이에 이 인간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면 끝장이었다. 목 뒤로 서도현의 손가락 감촉이 느껴질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 인간, 손가락도 차갑네. 사람이 아니라 얼음으로 조각한 조각상 같았다.
윤소하의 목소리가 다시 끼어들었다.
“저, 저기, 성주님 몸이 원래 차가운 체질이셔서요, 어릴 때부터 그러셨어요, 진짜예요!”
필사적으로 뭔가를 지어내는 게 목소리에서부터 티가 났다. 근데 그 절박함이 오히려 신빙성을 만들어냈다. 원래 거짓말은 자신 있게 하는 사람보다 떨리는 목소리로 하는 사람이 더 믿음직스러운 법이었다.
서도현이 잠시 멈칫했다.
“…흠.”
김두식도 거들었다.
“의관님한테 여쭤보시면, 예전 진료 기록에도 다 나와요. 지금 확인하시면 오히려 성주님 존체에 부정한 기운을 더할 수도 있어서……”
부정한 기운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이 애들 임기응변이 상당히 좋았다. 순간 이 상황에서 즉석으로 그런 단어를 뽑아내는 능력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나였으면 그냥 “저기요, 그냥 좀 나가주세요” 하고 끝냈을 텐데.
서도현이 손을 뗐다.
[경고: 20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진짜로 숨을 안 쉬고 있었으니까 당연했다. 폐가 터질 것 같은데, 소리 한 번 잘못 내면 그동안의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되는 거였다.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참아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알겠다. 어의가 올 때까지 대기한다. 아무도 이 방을 나가지 마라.”
발소리가 문 쪽으로 멀어졌다.
[경고: 5초.]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참았던 숨을 폭발적으로 터뜨렸다.
“허어어억!”
술법이 풀리며 몸이 벌떡 튀어 올랐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마치 오랫동안 숨 참고 물속에 있다가 수면 위로 올라온 느낌이었는데, 그 물이 하필 냉동고 안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윤소하와 김두식이 동시에 나에게 달려왔다.
“성주님, 성주님, 살아계시죠? 정말 살아계신 거죠?”
윤소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 살았어.”
숨을 몰아쉬며 겨우 대답했다. 코끝이 살짝 찡했다. 이 애들이 이렇게까지 나를 걱정하는 게, 낯설고도 이상하게 뭉클했다.
농담이다. 사실 그냥 온몸이 아파서 눈물이 났다.
김두식이 물을 떠 와서 내 입가에 대주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 짧은 순간에 얼마나 긴장했던 건지 그 손끝에서 그대로 전해졌다.
“그런데… 성주님, 진짜 큰일 났어요.”
김두식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황 부황께서, 상속 대전을 준비하고 계세요. 성주님이 살아계신 걸 알면, 더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윤소하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사람들, 성주님이 진짜로 죽었다는 게 확인되는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확 몰려들 거예요. 지금은 그냥 시간을 좀 번 것뿐이에요.”
그 말에 시스템 창이 다시 표시를 띄웠다.
[임무 갱신: 생존 → 계승권 확보]
[예상 기한: 상속 대전 개시 전]
계승권 확보라니, 갑자기 임무 스케일이 확 커졌다. 처음엔 그냥 “살아라”였는데, 이제는 “살아서, 이 성까지 지켜라”로 업그레이드된 거였다. 완전 게임 튜토리얼 끝나고 본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일단 살아난 건 좋은데, 이제 이 몸에 담긴 권리까지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힘도 없고 정체도 숨겨야 하는데, 어떻게.
창이 이어서 표시했다.
[급속 수련 프로그램이 준비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이라니, 뭔 헬스장 PT 등록하는 거 같잖아. 3개월 회원권 사놓고 3일 나가고 마는 게 딱 내 스타일이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배짱이 통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근데 이 상황에서 뭔가 배울 수 있다는 게 유일한 희망처럼 느껴졌다.
“…뭘 해야 하는데?”
혼잣말로 물었더니, 창이 답 대신 새로운 문구를 띄웠다.
[대상: 봉인된 금단 마도 수련자, 곽노사.]
[위치: 청류성 지하 뇌옥.]
지하 뇌옥에 갇힌 마도 수련자를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아직 설명도 안 끝났는데 벌써부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지하 뇌옥. 금단. 마도 수련자.
세 단어 조합만으로도 딱 느낌이 왔다. 이거 완전 “초보자에게 갑자기 최종보스급 스승 붙여주는” 그런 전개 아닌가. 근데 이 시스템이 지금까지 보여준 패턴을 생각하면, 이게 진짜로 최선의 선택지일 가능성이 높았다.
윤소하가 내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주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얼굴이 하얘지셨어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일단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미 지하 뇌옥으로 걸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정말 이게 살 길이라면 가야겠지만, 어쩐지 그 길 끝에서 더 큰 뭔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자꾸만 등을 타고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