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지하 뇌옥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윤소하와 김두식이 앞장서서 은밀히 안내했다. 겉으로는 “성주님이 새벽 순찰을 도신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몇 안 되는 야간 경비병들의 눈을 피해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좁고 가팔랐다. 한 걸음씩 내려갈 때마다 발밑에서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자세히 보니 오래전에 죽은 벌레들의 사체였다. 위생 관리가 이 정도로 개판인 건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습기와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벽마다 이끼가 자라 있고, 멀리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뚝, 뚝, 뚝.
마치 누가 메트로놈을 켜놓은 것 같았다. 이런 데서 살면 정신병 안 걸리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임무: 봉인된 금단 마도 수련자 제압]
[보상: 미확정 공법 습득 가능성]
제압이라니. 나 방금까지 죽다 살았는데 이번엔 갑자기 마도 수련자랑 싸우라고? 이거 완전 신입사원 첫날부터 팀장 대신 임원 보고서 쓰라는 수준의 부조리 아닌가.
“성주님, 여긴 함부로 못 들어가는 곳인데……”
윤소하가 불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등불을 든 손이었는데, 불빛이 흔들릴 정도로 긴장한 게 보였다.
“곽노사는, 원래 여기서 나오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선대 성주님께서 겨우 봉인해두신 건데.”
김두식이 낮게 덧붙였다.
“그란디, 왜 갑자기 여길 가시겠다고 하시는겨. 지도 뭔지 몰르는디 무작정 따라가는 거 아니냐 싶은디……”
“다 이유가 있어.”
대충 얼버무렸다. 사실 이유는 시스템이 제멋대로 정한 거고, 나는 그냥 이 시스템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처지였지만, 그런 걸 솔직하게 말할 순 없었다. “아, 실은 제가 이세계 시스템에 낚여서 임무 수행 중입니다”라고 하면 다들 나를 정신병자 취급할 게 뻔했다.
[욥기 41:33, 땅 위에는 그것과 같은 것이 없나니 두려움 없게 지음을 받았음이라]
두려움 없게 지음 받았다는 이 구절이, 오늘만큼 부담스럽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성경은 대체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이런 구절을 띄우는 건지. 마치 시험 전날 “너는 이미 완벽하다”는 격려 문자를 받는 느낌이랄까. 위로가 아니라 압박이었다.
뇌옥 가장 깊은 곳에 이르자, 철문 하나가 붉은 부적으로 뒤덮여 있었다.
부적마다 낡은 필체로 뭔가 적혀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봉인 문구였다. 한자로 빽빽하게 채워진 부적들이 문 전체를 감싸고 있어서, 마치 어느 폐가 대문에 붙어 있던 “철거 예정” 딱지들이 겹겹이 쌓인 모양새였다.
“이거 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혼잣말로 물었더니, 시스템이 곧바로 답했다.
[해제 조건: 천마시제의 혈인을 확인하는 순간, 자동으로 해제됩니다.]
혈인이라니, 그게 뭔데. 설명 좀 자세히 해줘. 나 지금 시험 답안지 받았는데 문제도 안 읽고 답 쓰라는 느낌이라고.
손을 뻗어 부적을 만지자, 부적이 스스로 타올랐다.
화악!
불빛이 문틀을 타고 번지며 문이 스르르 열렸다. 타는 냄새가 훅 끼쳤는데, 이상하게도 종이가 타는 냄새가 아니라 오래된 향 냄새 같았다.
안쪽에서 낮고 거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키킥. 오랜만이구나, 손님.”
어둠 속에서 형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는데, 눈동자가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손톱은 새까맣게 부식된 채 길게 자라 있었고, 몸에서 검은 기운이 안개처럼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첫인상은, 솔직히 말하면, 어느 폐업한 한약방 사장님이 삼십 년 묵은 감초즙에 절어 있다가 튀어나온 느낌이었다. 근데 그 삭힌 감초즙이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종류라는 게 문제였다.
“곽노사.”
이름을 부르자, 노인이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내 이름을 아는군. 성주 어르신께서 직접 오셨나?”
“…확인할 게 있어서.”
대충 둘러댔다. 사실 뭘 확인해야 하는지도 나는 몰랐다. 시스템은 임무만 던져주고 세부 사항은 알려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런 걸 두고 개발자가 튜토리얼도 안 만들고 서비스 오픈한 게임이라고 부르던가.
[욥기 41:1,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낚을 수 있겠느냐]
낚을 수 있냐고 물으면, 지금 이 상황은 완전히 반대다. 낚인 건 나 같은데.
곽노사가 천천히 다가왔다. 걸음마다 바닥이 미세하게 갈라졌다. 발끝이 닿는 자리마다 돌바닥에 실금이 가는 게 보였는데, 저건 대체 무슨 원리인 건지 궁금했지만 지금 물리학 강의 들을 시간은 없었다.
“봉인된 지 삼십 년 만이지. 성주가 죽었다는 소식은 들었다만, 이렇게 산 몸으로 찾아올 줄은 몰랐구나.”
죽었다는 소식이 벌써 여기까지 퍼졌다니, 상황이 더 급박하게 느껴졌다. 뇌옥에 갇혀 있는 사람한테까지 정보가 전달되는 걸 보면 이 성 안 소식 전달 체계는 생각보다 효율적인 모양이었다. 정작 나한테는 설명서 한 장 안 주면서.
“죽었다가 살아났어. 그것보다, 나랑 붙어볼래?”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정확히는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서준의 몸속에 남은 뭔가가, 아니면 시스템이 슬쩍 밀어넣은 반응인지, 손끝이 저절로 앞으로 뻗었다. 마치 몸이 나보다 먼저 상황을 판단하고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실행되는 매크로 같았다.
곽노사가 껄껄 웃었다.
“그 젊은 성주 몸으로 나랑 붙겠다? 재밌구나. 좋다, 그 오만함에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순간, 곽노사의 손톱이 채찍처럼 늘어나며 허공을 갈랐다.
촤아악!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굴렸다. 몸이 생각보다 유연하게 움직였다. 이서준의 몸, 원래 무예 기초는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몸이라도 유용해서.
[임무 진행 중: 곽노사 제압]
[힌트: 심겁 환영에 진입하십시오.]
심겁 환영? 그건 또 뭔데. 지금 설명서 볼 시간도 없다고. 진짜 이 시스템은 사람을 급류에 밀어넣고 나서 수영법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 같았다.
곽노사가 다시 손을 뻗었다. 이번엔 검은 안개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쿠오오오!
피할 곳이 없었다. 안개가 순식간에 방 전체를 덮었다.
숨을 쉬는 순간,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었다.
[심겁 환영에 진입합니다.]
뭐라고?
주변이 통째로 다른 풍경으로 바뀌었다. 끝없이 이어진 광야, 하늘에는 붉은 달이 걸려 있었다. 발밑을 내려다보니 모래도 아니고 흙도 아닌, 뭔가 회색빛 재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곽노사의 젊은 시절 모습이 서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젊고 강인해 보이는 남자가, 어떤 노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공법을 전수받는 장면이었다. 그 노인의 얼굴은 흐릿했지만, 젊은 곽노사의 표정만은 또렷했다. 절실함과 갈망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장면이 빠르게 넘어갔다. 수백, 수천 개의 무공 초식이 눈앞에서 재생됐다. 곽노사가 평생 익힌 모든 것이, 마치 압축 파일을 통째로 풀어놓은 것처럼 눈앞에 쏟아졌다.
[심겁 환영: 대상의 생애에 축적된 공법 정보가 노출되었습니다.]
[흡수 가능합니다.]
와, 이거 완전 상대방 클라우드를 통째로 해킹하는 거잖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아닌가. 아, 여긴 그런 법이 없는 세계였지.
[신혼 흡수: 대상의 정신적 근원 일부를 취합니다.]
신혼이라니, 그건 좀 무섭게 들리는데. 결혼도 안 했는데 뭘 흡수한다는 거야.
[대가: 되돌릴 수 없습니다.]
되돌릴 수 없다는 문구를 보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거 진짜로 이 노인의 뭔가를 통째로 빼앗아버리는 거잖아. 환불도 안 되고 취소도 안 되는 결제 창을 지금 강제로 눌리고 있는 셈이었다.
[욥기 34:14, 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거두는 게 나여도 되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건 좀 인간적으로 죄책감이 드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미 시스템은 물어보지도 않고 진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동의서에 서명하지도 않았는데 자동이체가 실행되는 느낌이었다.
촤르르르륵!
환영 속에서, 곽노사의 무공들이 하나씩 빛의 실이 되어 내 몸으로 흘러들었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수천 가지의 초식, 호흡법, 기운을 다루는 방식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삼십 년치 유튜브 강좌를 배속 재생 없이 원본 속도로 몰아보는 느낌이었다. 뇌가 과부하 걸릴 만도 했다.
“으아아악!”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건 그냥 튜토리얼이 아니라 뇌를 통째로 재부팅하는 수준이었다.
[진행률: 47%…… 89%…… 완료.]
완료라는 글자가 뜨는 순간, 환영이 걷혔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뇌옥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숨을 몰아쉬며 앞을 봤다.
곽노사가 그 자리에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붉은 눈동자에서 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방금까지 그렇게 위압적이던 노인이, 지금은 그냥 뼈만 남은 노인네처럼 보였다.
“……어떻게, 이런…….”
곽노사가 믹서에 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평생의 힘을, 이렇게 순식간에……”
나도 놀랐다. 정확히는 내 몸도 놀란 상태였다. 손끝에서 뭔가 낯선 기운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마치 방금 산 신형 스마트폰에 앱을 백 개 설치해놓은 느낌.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일단 다 담겨 있다는 감각.
[스킬 획득: 다수]
[상세 목록은 추후 확인 가능합니다.]
추후라니. 지금 확인하고 싶은데. 이런 식으로 정보를 아껴서 주면 사람 답답해서 죽는다는 거 시스템은 모르는 건가.
그런데 그 순간, 뇌옥 위쪽 어딘가에서 미세한 기운의 파동이 느껴졌다.
누군가 이 소란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윤소하와 김두식이 겁먹은 얼굴로 나를 붙잡았다.
“성주님, 지금 이 기운, 밖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큰 거예요. 빨리 여길 떠야……”
윤소하의 목소리에는 이제 불안을 넘어 다급함이 섞여 있었다. 손이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들 정도였으니, 상황이 진짜로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김두식도 옆에서 재촉했다.
“맞어유, 성주님. 이 기운이 여까지 새나갔다믄, 필시 누가 눈치채구 왔을 텐디. 여기 계속 있으면 큰일 나겄시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스템 창이 조용히 문장 하나를 띄웠다.
[경고: 외부 관찰자가 이 사건을 감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