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버스가 출발했다.
창밖으로 손을 흔드는 애들 사이에서 나는 아직도 좌석 번호를 들고 서 있었다. 3학년 2반, 이도현, 17번. 종이에는 분명히 내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버스 안에는 내 자리가 없었다.
담임은 인원 체크를 세 번이나 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세 번 다 나를 셌을 리가 없었다. 아마 첫 번째는 숫자만 셌을 거고, 두 번째는 앞자리부터 뒷자리까지 눈으로 훑었을 텐데 내가 앉은 자리가 원래 비어 있는 것처럼 보였을 거고, 세 번째는 그냥 확인하는 시늉이었을 거다. 확인하는 시늉으로 사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확인하는 시늉으로 사람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어, 한 명 빠졌나?"
누군가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손을 들었다. 손을 든 채로 삼 초쯤 서 있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버스 기사님이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제야 손을 내렸다.
버스는 그대로 출발했고 나는 텅 빈 운동장에 남아서 매점 아주머니가 파라솔을 접는 걸 구경했다. 아주머니는 접던 파라솔 기둥을 놓칠 뻔하면서 나를 봤다. 놀란 얼굴이었는데, 그건 내가 신기해서가 아니라 갑자기 사람이 나타난 것처럼 느껴져서였다. 마치 방금까지 아무도 없던 자리에 순간이동으로 뚝 떨어진 사람을 본 것 같은 표정. 그게 늘 있는 반응이라 익숙했다.
"학생, 소풍 안 갔어?"
"갔는데 버스가 먼저 갔어요."
아주머니는 뭐라고 대답할지 잠깐 고민하는 눈치더니 그냥 파라솔을 접었다. 안타까움도 아니고 위로도 아니고, 그냥 다음 화제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무시. 이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대화 주제로 오래 붙잡아둘 만한 게 아니었다.
존재감이 없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후자보다는 전자에 훨씬 가까웠는데, 그렇다고 딱히 나은 것도 아니었다. 선생님들은 출석부에 내 이름을 세 번 이상 다시 확인해야 했고, 반 애들은 조를 짤 때마다 내가 어느 조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급식실 줄에서 새치기를 당하는 건 일상이었다. 새치기라기보다는, 내가 거기 서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것에 가까웠다. 한 번은 식판을 들고 서 있는데 뒤에서 온 애가 내 앞으로 그냥 끼어들었다가, 배식받고 돌아서면서 나랑 정면으로 부딪힌 적도 있었다. 그 애는 "어 죄송, 언제 오셨어요?" 라고 물었다. 언제 왔냐니. 계속 거기 서 있었는데.
의사는 이걸 뭐라고 부를지 몰라 했다. 정신과에서도, 안과에서도, 심지어 한의원에서도 딱히 병명을 붙이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상담 선생님은 "관심을 좀 더 끌어보는 연습"을 하라고 조언했다. 마치 내가 관심을 안 끌려고 일부러 노력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그 조언을 실천하려고 축구부에 들어갔다가 첫날 골키퍼로 배정된 지도 모르고 세 골을 먹혔다. 나중에 코치가 명단을 보고 "너 골키퍼였어?" 라고 물었을 때 나는 진짜로 대답할 말이 없었다. 아무도 나한테 화내지 않았다. 애초에 골키퍼 자리에 사람이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골대 앞에 서 있는 실루엣을 그냥 그림자로 착각한 애들도 있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웃긴 건, 이런 나한테도 장점이 하나 있다는 거였다. 나는 절대 길을 잃지 않았다. 어디든 한 번 가본 곳이라면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었고, 낯선 곳에서도 방향감각이 유독 정확했다. 지하철 환승 통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유일하게 헤매지 않았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아마 존재감이 없는 대신 세상이 나한테 보상으로 쥐여준 게 그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별로 실용적인 초능력은 아니었다. 존재감이 없는데 지도를 잘 읽어봤자 누가 나한테 길을 물어보겠나. 오히려 반대였다. 나는 항상 남들한테 길을 알려주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는 사람이었다.
소풍에서 혼자 남겨진 그날, 나는 학교 뒷산을 두 시간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버스 도로를 따라가는 것보다 산길이 더 빨랐다. 어차피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고 있었으니 급할 건 없었다. 산길 중간쯤 물이 흐르는 계곡을 지날 때 신발이 젖었지만 그마저도 별일 아니었다. 걷는 내내 생각한 건 하나였다. 오늘도 그럴 줄 알았다는 것.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최소한 배신당한 기분은 아니었으니까. 배신을 당하려면 일단 기대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나는 애초에 버스에 내 자리가 있을 거라고 기대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건 배신이 아니라 그냥 통계적으로 예상 가능한 결과의 반복이었다.
집에 오니 휴대폰에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한서연: 야 너 왜 소풍 안 왔어? 아 맞다 오늘 사흘 뒤가 네 생일이잖아. 그날 시간 비워둬. 나 신당 일 다 미루고 나갈게.]
서연이었다. 유일하게 내가 있다는 걸 알아채는 사람.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처음 만난 날, 반 배정을 받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서연이 옆자리에 앉으면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다른 애들은 아예 내가 앉아 있는지도 몰랐는데.
"너 왜 이렇게 옅어?"
그게 서연이 나한테 처음 한 말이었다. 나는 그때 옅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연은 신당집 딸이라 그런지 눈이 좀 남달랐다. 본인 말로는 딱히 무당 기질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지만, 굿을 하거나 부적을 만드는 어머니 옆에서 어릴 때부터 자란 애답게 남들이 못 보는 걸 곧잘 봤다. 옅다는 말은 서연이 나를 처음 봤을 때 느낀 감각을 그대로 옮긴 표현이었다. 종이에 그린 그림에 물을 너무 많이 섞은 것처럼, 나라는 존재가 흐릿하게 번져 있다는 뜻이었다.
그날 이후로 서연은 계속 내 옆에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이제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는데도 연락은 끊기지 않았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알겠어. 기대할게.]
기대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뭘 기대하며 산 적이 별로 없었으니까. 기대는 애초에 기억되고 싶은 사람들이나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번엔 진짜로 기대가 됐다. 열일곱 번째 생일. 누군가 나를 위해 시간을 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날이 특별해질 것 같았다.
나는 답장을 보내고도 한참 동안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뭔가 더 보낼 말이 있을 것 같았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결국 화면을 끄고 가방을 챙겼다.
그게 착각이었다는 건 이틀 뒤에 알게 됐다.
[한서연: 도현아 미안한데 아무래도 그날 못 나갈 거 같아. 신당에 큰 일이 좀 생겨서.]
큰 일. 서연이 그렇게 말할 때는 대체로 진짜로 큰 일이었다. 신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서연이 며칠씩 학교에 못 나오거나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오는 날이 종종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한 번은 팔에 붕대를 감고 온 적도 있었는데, 뭐냐고 물어봐도 "그냥 좀 다쳤어" 라는 말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알겠어. 다음에 봐.]
답장은 짧았다. 짧게 보내는 게 나았다. 안 그러면 뭔가 더 구질구질한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으니까. "괜찮아, 다음에 만나면 되지" 같은 말이나, "너 무슨 일 있는 거야? 걱정되는데" 같은 말들. 그런 말들은 입 밖으로 꺼내기도 전에 자체적으로 검열됐다. 서연한테 걱정을 얹어주는 것도 이상한 짓 같았고, 나 혼자 서운함을 표현하는 것도 우스운 짓 같았다.
방에 누워서 천장을 봤다. 형광등 불빛이 어른거렸다. 벽지 무늬 사이로 작은 얼룩이 보였는데, 언제 생긴 건지 기억도 안 나는 얼룩이었다. 열일곱 살 생일에 혼자 있는 게 특별히 슬픈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열여섯 살, 열다섯 살, 그전에도 다 그랬으니까. 케이크는 편의점에서 조각 케이크 하나 사다 먹는 게 관례처럼 굳어져 있었다.
다만 이번엔 기대라는 걸 한 번 해본 게 문제였다. 기대는 늘 손해였다. 이자도 없이 받아 챙기는 실망만 얹혀 돌아왔다. 그것도 복리로. 기대한 만큼 실망이 정확히 비례해서 돌아오는 게 이상하게 공평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창문 밖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인 줄 알았다. 커튼 사이로 스치는 소리가 몇 번 더 이어졌다. 나뭇가지가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치고는 좀 규칙적이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나는 그냥 이불을 끌어당겼다.
그때, 창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네, 도현아."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창밖에 사람이 서 있었다. 3층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