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던전관리청은 사흘 뒤 김도훈에게 임무를 배정했다.
박서연이 서류를 들고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녀의 걸음걸이가 평소보다 빨랐다.
"저계층 임무예요. 지하 2층 구역 정찰."
"단순 정찰입니까?"
김도훈이 물었다.
"네. 근데... 조건이 좀 붙었어요."
박서연이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서류 모서리를 만지작거렸다.
서류에는 붉은 글씨로 표시된 항목이 있었다.
[임무: 지하 2층 구역 정찰]
[제한: 단독 행동 시 감점, 무장 최소화]
[실패 시 페널티: 등록 자격 재심사]
김도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붉은 글씨 하나하나를 다시 읽었다.
"이거, 사실상 저를 시험하는 겁니까."
박서연은 대답 대신 시선을 피했다.
"저도 정재훈 팀장님 지시라... 죄송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마치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괜찮습니다."
김도훈은 서류를 덮으며 짧게 대답했다.
'시험해보겠다는 거지. 좋아, 응해주지.'
속으로 되뇌며 그는 서류를 가방에 넣었다.
정재훈이 원하는 그림이 뻔히 보였다.
이 정도 시험이라면, 통과 못 할 이유도 없었다.
---
지하 2층 구역 입구.
최도영이 먼저 도착해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던전관리청 소속 현장 직원, 실전 경험이 많은 남자였다.
방탄 조끼 위로 여러 개의 장비를 걸치고, 허리춤에는 화염탄 발사기가 매달려 있었다.
"당신이 그 김도훈 씨입니까."
최도영이 물었다.
시선이 위아래로 훑고 지나갔다.
"네."
"소문 많이 들었습니다. 근데."
최도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규칙은 규칙입니다. 단독 행동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김도훈은 순순히 대답했다.
하지만 최도영은 그 태도가 왠지 불안했다.
너무 순순한 대답이었다.
마치 규칙 따위 애초에 상관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박서연도 정찰조에 동행했다.
셋은 어두운 통로를 따라 내려갔다.
지하 2층은 조명이 거의 없었다.
손전등 불빛만이 좁은 통로를 비췄다.
발밑에서 물기 섞인 흙이 질척였다.
"이 구역, 지난 참사 이후로 아직 완전 조사가 안 된 곳이에요."
박서연이 설명했다.
"몬스터 서식 흔적은 있는데, 개체 수는 파악이 안 됐어요."
"참사요?"
김도훈이 되물었다.
"3년 전에... 조사대 하나가 통째로 실종됐어요. 그 뒤로 다들 이 구역은 꺼려요."
박서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김도훈은 통로 벽면을 훑어봤다.
긁힌 자국이 깊었다.
손가락을 넣어보니 자국의 깊이가 손가락 두 마디는 되었다.
'보통 몬스터가 낸 자국이 아니야.'
최도영도 같은 흔적을 발견했다.
그가 손전등을 들이대며 자국을 더듬었다.
"이거... 크기가 심상치 않은데."
그의 목소리에 긴장이 배어들었다.
"철수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박서연이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통로 안쪽 어둠을 힐끔거렸다.
"정찰이 목적입니다. 조금만 더 봅시다."
최도영이 대답했다.
셋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통로는 점점 좁아졌다.
천장이 낮아지며 머리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똑, 똑.
그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때였다.
통로 저편에서 낮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크르르릉-
세 사람 모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박서연의 손전등 불빛이 흔들렸다.
"저, 저거 뭔가 있어요..."
최도영이 재빨리 단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김도훈은 숨을 죽이고 어둠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 눈이 두 개,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어서 하나, 또 하나.
김도훈은 그 눈들의 위치를 가늠했다.
'높이가... 5미터는 되겠는데.'
지금까지 상대했던 몬스터와는 차원이 달랐다.
박서연이 숨을 삼켰다.
그녀의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모, 모두 뒤로 물러나요!"
최도영이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거대한 형체가 통로 벽을 뚫고 튀어나왔다.
쩌저적!
돌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박서연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무릎이 바닥에 부딪히며 손전등이 손에서 튕겨 나갔다.
"서연 씨!"
최도영이 몸을 던져 박서연을 붙잡았다.
하지만 거대한 몬스터의 꼬리가 이미 그들을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김도훈은 그 궤도를 순간적으로 계산했다.
'맞으면 둘 다 죽는다.'
숨이 턱 막혀왔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발끝으로 바닥을 박차는 순간, 시야가 흔들렸다.
김도훈은 그대로 몸을 던져 꼬리 앞을 가로막았다.
콰아앙!
엄청난 충격이 온몸을 관통했다.
뼈가 통째로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몸이 통로 벽까지 밀려나며 등에 돌조각이 박혔다.
"크윽...!"
신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하지만 발은 밀리지 않았다.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박서연과 최도영은 그 광경을 보고도 믿지 못했다.
"어, 어떻게 저걸 막아..."
최도영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몬스터가 다시 포효했다.
크아아아!
온몸에서 검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비늘 사이로 균열이 생기며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왔다.
그 열기가 통로 전체를 데우기 시작했다.
'이건 지금까지와 다르다.'
김도훈의 눈이 좁아졌다.
'이 정도 몬스터가 저계층에 있을 리가 없어.'
그때 상태창에 문구가 떠올랐다.
[경고: 미확인 개체 감지]
[협회 등급 기준 - 측정 불가]
김도훈은 그 문구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등급 측정도 안 되는 놈이라고?'
이런 문구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몬스터들은 최소한 등급이라도 매겨져 있었다.
측정 불가라는 말은 협회의 데이터베이스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개체라는 뜻이었다.
박서연과 최도영은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은 채였다.
최도영이 박서연을 등 뒤로 밀어붙이며 몸으로 막으려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어 보였다.
몬스터의 시선이 그 둘을 향해 돌아갔다.
붉은 눈동자가 좁혀지며 먹잇감을 정하듯 두 사람을 훑었다.
"안 돼...!"
박서연이 짧게 외쳤다.
최도영이 박서연을 감싸안으며 몸을 굴렸다.
하지만 거리가 부족했다.
몬스터의 앞발이 그대로 그들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바닥이 그 무게에 짓눌려 진동했다.
김도훈은 이미 그 사이로 달려들고 있었다.
숨이 턱 막힌 채로, 손끝에 다시 그 서늘한 감각이 번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몸이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앞발의 그림자가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완전히 드리워지는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