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환생 0세, 폭주 재활

2화

등 뒤에서 밀린 건 분명했다. 그런데 그 손이 사람의 손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취객이 휘청거리다 부딪힌 건지, 그 순간에는 알 도리가 없었다. 밤 11시가 넘은 승강장은 한산했다. 저 끝에 넥타이를 반쯤 풀어헤친 남자 하나가 벤치에 기대 졸고 있었고, 그 옆에 하이힐을 벗어 든 여자가 휴대폰 불빛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을 뿐이다. 그 취객 말고는 딱히 사람이랄 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용의자 풀이 너무 좁다는 거다. 넥타이 남자는 술에 절어 고개도 못 가누고 있었고, 하이힐 여자는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보느라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유령이 밀었다고 하기엔, 나는 아직 그런 소설은 써 본 적이 없었다. 판타지 무협은 써봤어도 오컬트는 내 전문이 아니었다. 그런데 등이 밀렸다. 안전선. 그 노란 선을 나는 발끝으로 넘어서고 있었다. 손목이 뜨거웠다. 팔찌가 다시 그 미세한 진동을 시작한 참이었다. 지이잉- 하고, 뼈 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은 떨림. '이건 또 뭔데.' 이 팔찌, 사실 이 순간 처음 등장한 게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손목 안쪽이 간지럽더니, 어느 순간부턴가 이렇게 제멋대로 지잉거리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볼까 하다가, 알바비도 없는 마당에 병원비까지 나갈 여유가 없어서 그냥 넘겼던 게 화근이었나. 지금 와서 후회해봐야 이미 늦었지만. 터널 저편에서 헤드라이트 두 개가 눈을 부릅뜨듯 켜졌다. 전동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규정 속도라던가 뭐라던가, 그런 걸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 와중에 머릿속에서는 단천검야 347화의 문장이 떠올랐다. 주인공 단천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그 장면. 나는 그걸 쓰면서 '떨어지는 순간의 무력감을 오감으로 묘사하라'는 댓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조회수 열두 명 중 한 명이 남긴 댓글이었다. 지금 알겠다. 그 무력감이라는 게 이런 거였구나. 그때 나는 뭐라고 썼더라. 아마 이렇게 썼을 거다. '바람이 그의 뺨을 스치고, 세상이 느리게 돌아가며, 그의 손끝에서 마지막 힘까지 빠져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완전 헛소리다. 진짜 이 순간은 그런 서정적인 게 아니었다. 그냥, 아무 생각도 안 났다. 다리가 안 움직인다는 것 말고는. '..나 이렇게 죽는 건가.'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누가 밀었는지 확인할 새도 없이, 몸이 앞으로 쏠렸다. 전동차의 경적이 찢어질 듯 울렸다. 빠아아앙-! 그 소리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치고는 너무 통속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죽기 전에 뭐라도 멋진 대사 한 줄쯤 준비해 둘 걸 그랬다. '그 손, 놓아 주시게. 나는 아직 쓸 이야기가 남았소.' 그런 대사를 실제로 내뱉을 틈은 없었다. 세상이 옆으로 기울었다. 생각해보니 억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제 편의점 사장이 잘라놓고 마지막 급여도 안 줬는데. 오늘 아침에 카톡으로 정산해준다고 했으면서. 이대로 죽으면 그 돈은 누가 받나. 어머니한테라도 가려나. 아니, 그전에 나는 왜 지금 이 순간에 밀린 알바비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죽는 순간까지 궁상맞다. 쿵. 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몸이 어딘가에 부딪히는 감각도 잠깐뿐이었다. 아프다는 느낌보다 먼저, 시야가 새하얗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 하얀 빛 한가운데서, 손목의 팔찌가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잉-! 귀가 아니라 뼈로 듣는 소리였다. 은실이 살갗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표면의 문양들이 빛을 내는 게 느껴졌다. 눈을 뜰 수 없는데도 그게 보였다. 흑단목 표면 위로 붉은 실선이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그림이. '..뭐야, 이거.' 그 문양,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썼던 어떤 장면과 비슷했다. 단천검야에서 주인공이 상고시대 유물을 손에 넣는 장면. 그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 기운. 그때 나는 그걸 그냥 상상으로 썼다. 근거도 없이, 그냥 멋있어 보이라고. 그런데 지금 내 손목에서 진짜로 그 비슷한 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거 표절 아니고 예지몽인가. 그런 실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 순간 확실히 알았다. 나는 죽었다. 스물아홉 해를 살고, 3년째 화당 조회수 12를 찍는 웹소설을 연재하다가, 편의점 알바에서 잘린 지 사흘 만에, 지하철에 치여 죽었다. 억울했다. 정말 억울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살았다고. 매일 열두 시간씩 앉아서 글을 썼다. 조회수가 안 나온다고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다음 화, 그다음 화를 썼을 뿐이다. 그런데 그 성실함의 대가가 지하철 사고사라니. 이게 무슨 심리일까.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그런데 억울해할 새도 주지 않고, 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감각이 시작됐다. 마치 거대한 손이 나를 붙잡아 어딘가로 던져 넣는 것 같았다. 시야에 색이 없었다. 위아래도, 앞뒤도 없었다. 그저 팔찌의 진동만이 유일한 좌표였다. 지이이이잉-! 그 진동이 점점 낮아지더니, 마침내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변했다. 두근. 두근. 두근. 그런데 이 심장 박동, 내 것치고는 너무 빠르고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이거 내 심장 맞아?' 뭔가 이상했다. 원래 내 심장은 이렇게 빠르지 않았다. 건강검진 받을 때마다 서맥이라고, 운동 좀 하라는 소리를 들었던 심장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심장은 참새처럼 파닥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시야에 빛이 스며들었다. 흐릿했다. 초점이 맞지 않았다. 눈꺼풀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뜨려는데, 눈이 저절로 감겼다가 다시 떠졌다. 거대한 그림자 두 개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하나는 여자였다. 다른 하나는 남자였다. 그 얼굴이 너무 커서, 마치 거인을 올려다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울먹이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였다. "응애, 하고 울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눈만 껌뻑거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 지금 아기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건 완전히 내가 쓰던 소설의 클리셰 아닌가. 회귀도 아니고, 환생도 아니고, 아기로 태어나는 거라니. 이런 설정, 조회수 12짜리 내 소설에서도 안 썼던 건데. 너무 뻔해서. 그런데 지금 그 뻔한 설정 한가운데 내가 있었다. 손을 뻗어보려 했다. 그런데 내 손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고, 너무 통통했다. 손가락 다섯 개가 있긴 한데 그게 다 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짧고 뭉툭했다. 손톱도 이렇게 작았나. 이 손톱으로 뭘 할 수 있을까. 키보드는커녕 마우스도 못 잡을 손이었다. 입을 열어 뭐라도 말하려 했다. 그 손놀림, 예사롭지 않구려,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 입에서 나온 건 그저, "으..에." 뿐이었다. 한 번 더 시도했다. 이번엔 좀 더 그럴싸한 말을 해보려 했다. 지금 상황이 뭔지 설명해달라고, 여기가 어디냐고, 내가 왜 이렇게 됐냐고.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목구멍에서 나오는 건 옹알이 비슷한 소리뿐이었다. 혀도 내 것 같지 않았다. 입안이 낯설었다. 이빨도 하나 없는 잇몸으로 뭘 어떻게 말하라는 건지. 여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남자는 놀란 눈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걸, 그제서야 실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팔찌, 아까 그렇게 요란하게 울리더니 지금은 어디로 간 거지. 손목을 내려다보려 했지만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몸이었다. 그저 시야 끝자락에서 희미하게 붉은 실선 같은 것이 아직도 살갗 밑에서 어른거리는 걸 느꼈을 뿐이다. 그 실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몸의 부모가 누구인지,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어떤 삶을 다시 살아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나는 죽었고, 다시 태어났고, 이번엔 무슨 이유에서인지 손목에 이상한 팔찌 문양 같은 걸 달고 왔다는 것. 그리고 그 문양은, 아직 완전히 잠들지 않은 채로 내 살갗 밑에서 미세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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