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다음 날 아침, 나는 확신했다.
나비는 절대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다.
밤새 나비는 내 이불 옆에 웅크리고 앉아 나를 지켜봤다. 눈도 안 감고. 자지도 않고. 그냥 가만히, 새까만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고양이가 잠도 안 자나.'
처음엔 그냥 신기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눈빛이 자꾸만 나를 경계하는 듯했다. 마치 어제 목덜미를 붙잡혔던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어제 내가 이 녀석 목덜미를 덥석 잡고 얼굴을 들이밀며 "너 정체가 뭐냐"는 눈빛으로 째려봤으니까. 고양이 입장에서는 갓난아기가 눈빛만으로 취조를 한 셈이었다.
'..고양이가 원한을 품는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손을 뻗었다.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진짜다.
나비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 반응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보통 고양이라면 저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보통 고양이라면 하룻밤 사이에 이런 눈빛으로 사람을 감시하지도 않는다.
"야옹!"
그 소리가 묘하게 사람 말처럼 들렸다. 마치 '저리 가!'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억울했다. 나는 그저 관찰하려던 것뿐인데. 이 세계에 넘어온 뒤로 뭔가 신비로운 존재를 마주칠 때마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게, 어쩌면 이 몸에 새겨진 본능인지도 몰랐다. 전생의 나였다면 이런 상황에서 침착하게 관찰 일지라도 썼겠지만, 지금은 그저 손발이 짧은 아기일 뿐이었다.
서연이 방에 들어오며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도경이가 나비를 참 좋아하나 봐요."
'..좋아하는 게 아니라 확인하고 싶은 겁니다. 저 고양이 정체를요.'
속으로 그렇게 항변했지만, 입 밖으로 나온 건 여전히,
"으에."
뿐이었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언어를 못 쓴다는 게 이렇게 답답할 수가 없다. 스물아홉 평생 쌓아온 논리와 화술이 이 조그만 성대 하나 때문에 전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야구로 치면 백 마일 강속구를 던질 어깨를 가지고 있는데, 팔이 없어서 공을 못 쥐는 꼴이었다.
서연은 그런 내 속도 모르고 나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비야, 우리 도경이랑 친하게 지내야지."
나비는 대답 대신 서연의 손등에 얼굴을 비볐다. 그러고는 다시 나를 한 번 힐끗 보더니, 홱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거 봐라. 사람 차별하네.'
그날 오후, 서연은 소반 위에 놓여 있던 종이 인형들을 가지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손에 든 인형은 총 넷. 사람 모양이 셋, 새 모양이 하나였다.
"도경아, 이거 봐. 엄마가 만든 아이들이야."
서연이 그렇게 말하며 손끝으로 부적을 그었다. 손가락이 허공에 그리는 궤적이 얼마나 정교한지, 마치 붓끝으로 글씨를 쓰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러자 종이 인형들이 스르륵 일어나더니, 내 눈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람 모양의 인형 셋이 팔을 흔들고, 새 모양의 인형 하나가 방 안을 빙글빙글 날아다녔다. 인형들의 움직임에는 어떤 규칙이 있었다. 하나가 굽히면 다른 하나가 펴고, 새는 그 사이를 가르며 원을 그렸다. 마치 누군가 미리 짜놓은 안무를 실행하는 것 같았다.
'..이거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종이 인형들이 부적의 힘으로 살아 움직이는 광경. 이건 한국풍 판타지의 정수 그 자체였다.
전생에 내가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장면이었다. 웹소설 수백 편을 읽으면서, 식신이니 부적이니 하는 설정이 나올 때마다 상상만 하던 그 장면이 지금 내 눈앞에서 실제로 펼쳐지고 있었다. 종이 한 장이 인간의 의지를 담아 스스로 움직인다는 것. 그건 물리 법칙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기적이었고, 동시에 이 세계가 진짜 판타지 세계라는 확실한 증거였다.
식신이 춤을 추는 걸 보는 순간, 손목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팔찌가 다시 진동하고 있었다.
지이이잉-.
그런데 그 진동이 이전과는 좀 달랐다. 뭔가 몸속 깊은 곳에서 함께 울리는 느낌이었다. 팔찌만 우는 게 아니라, 내 뼈 마디마디가 함께 공명하는 듯한 감각.
'..뭐지, 이 느낌.'
가슴이 벅차올랐다.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나는 그게 그냥 감동인 줄로만 알았다.
새 모양 인형이 내 머리 위를 스치듯 지나갈 때는 숨까지 멎는 줄 알았다. 종이 날개가 만들어내는 바람이 뺨을 스쳤다. 진짜였다. 저건 진짜 바람이었다.
'..이게 사기가 아니라니.'
전생에 그렇게 많은 이세계물, 회귀물, 빙의물을 봤어도, 실제로 이런 걸 눈앞에서 마주하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감탄이라는 감정이 이렇게까지 물리적인 통증에 가까울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식신들이 춤을 멈추자, 서연이 나를 안아 올렸다.
"우리 도경이, 눈이 반짝반짝하네."
그 말대로였다. 나는 눈물까지 살짝 고여 있었다. 성인 남자가 종이 인형 춤 하나에 눈물을 글썽였다는 게 부끄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감동의 눈물이었다.
'..창피한 건 아는데, 눈물이 자꾸 나오는 걸 어떡합니까.'
서연은 그런 나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였다.
"우리 도경이는 신기한 걸 참 좋아해. 나중에 커서 술사가 되려나."
'..술사요? 그거 좋죠. 아주 좋습니다.'
속으로 열렬히 동의하면서도, 겉으로는 그저 "응애" 소리만 냈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날 저녁, 무진이 퇴청하고 돌아왔다. 그는 마당에서 목검을 몇 번 휘두르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문지방을 넘는 발소리부터가 달랐다. 무겁고, 정확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오늘 특별대 훈련이 있었소. 좀 늦었소."
무진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그가 나를 안아 올리며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의 손바닥이 내 등을 받치는데, 손 하나가 내 몸통보다 컸다.
"이 녀석, 눈빛이 자꾸 이상하군."
'..이상한 게 아니라 감격한 겁니다.'
나는 속으로 항변했다. 낮에 있었던 식신 사건 때문에 아직도 눈에 총기가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무진 입장에서는 그게 이상하게 보였겠지. 갓난아기가 어른 못지않은 눈빛으로 자길 쳐다보고 있으니.
그런데 그때, 무진이 허리춤에서 목검을 꺼내 한 번 휘둘렀다. 그냥 시범 삼아 보여준 동작이었다.
휘익-!
그 소리와 함께, 목검의 궤적을 따라 희미한 붉은 기운이 스치는 게 보였다.
'..저게 환영염류인가.'
숨이 턱 막혔다. 검기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다니. 그것도 내 새아버지가 그걸 쓰다니.
목검은 그냥 나무 조각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훈련용 목검. 그런데 그 나무 조각을 휘두르는 손목의 움직임 하나로, 허공에 붉은 실선이 남았다. 잔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또렷했고, 그렇다고 실체라고 하기엔 순식간에 흩어졌다.
손목이 다시 뜨거워졌다. 이번엔 진동이 아니라 거의 통증에 가까운 열기였다.
'..잠깐, 이거 왜 이래.'
몸이 저절로 떨리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제멋대로 움찔거렸다. 숨이 가빠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몸속 어딘가에서 뭔가가 반응하고 있었다. 팔찌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몸 자체가 가진 어떤 체질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이게 그냥 감동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설마 지금.'
나는 그 감각을 알고 있었다. 예전에도, 한국풍 판타지 소설을 읽다가 특히 취향에 맞는 장면 — 검객이 등장하거나, 요괴가 나타나거나, 사제 간의 의리가 드러나는 장면을 보면 이상하게 몸이 떨리곤 했었다. 그게 이 정도로 격렬해진 건 처음이었다.
전생에는 그저 소름이 돋는 정도였다. 팔뚝에 닭살이 오소소 돋고,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정도. 그런데 지금은 그 반응이 몇 배로 증폭되어 몸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마치 이 몸이 그 감각을 실체화시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진이 그 모습을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이, 이거 뭐요? 도경이 왜 이러오?"
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묻어났다. 방금 전까지 낮고 단단하던 음성이 흔들리고 있었다.
서연이 황급히 달려왔다.
"어머, 도경아! 왜 그래!"
서연의 손이 내 이마를 짚었다. 차가운 손끝의 감촉이 느껴졌지만, 그마저도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에도 정신 한구석으로는 이 상황이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스물아홉 살 먹은 정신이 아기 몸으로 검기 한 번 보고 경련을 일으키다니.
'..창피하다. 정말 창피하다.'
야구 선수가 상대 투수의 강속구를 보고 배트를 놓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목검 한 번 휘두르는 걸 보고 온몸을 떠는 게 말이 되나. 이건 프로가 할 짓이 아니었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성은 창피함을 느끼는데, 몸은 계속 반응하고 있었다.
몸이 활처럼 휘었다가 풀렸다. 눈앞이 하얗게 번지더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엄마, 아빠, 저 지금 이상한 거 아니에요. 그냥, 그냥 좀 감격해서 그래요.'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에서 나온 건 짧은 신음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방구석에서 나비가 낮게 그르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마치 뭔가를 눈치챈 듯한 소리였다.
나비의 눈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밤새 나를 감시하던 그 새까만 눈동자가, 지금은 등불 같은 푸른빛을 뿜어내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건, 대체.'
의식이 완전히 끊기기 직전, 나는 나비의 눈에서 뭔가 익숙한 문양이 스치는 걸 본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세상이 캄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