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그날 밤 벌어진 소동은, 나중에 서연의 입을 통해 이렇게 정리되었다.
"도경이가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래요. 검기를 보고 감동해서 경련을 일으키는 아기라니, 얼마나 특별해요."
'..특별한 게 아니라 부끄러운 겁니다, 어머니.'
속으로 그렇게 항변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서연은 눈을 반짝이며 나를 이불에 꽁꽁 싸매고는, 옆방에 있던 유모까지 불러다가 "얘 좀 봐, 얼마나 예민한지" 하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유모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그 웃음 속에서 '애가 좀 이상한데요' 하는 속내를 읽어냈다.
그날 밤 경련은 결국 잦아들었고, 나는 기절하듯 잠들었다.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였다.
눈을 뜨자마자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뻐근했다. 갓난아기 몸으로 그렇게 격렬하게 떨어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팔다리를 조금씩 움직여봤다. 삐걱거렸다. 정말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러다 근육통으로 죽는 아기, 최초 기록 세우는 거 아니야.'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머릿속 한쪽에서는 진지하게 어제 일을 되짚고 있었다.
무진의 검기를 본 뒤로, 나는 뭔가 확실히 깨달은 게 있었다. 이 경련이, 단순한 몸의 이상이 아니라는 것.
'..이거 딱 봐도 금단증상이잖아.'
전생에서 나는 한국풍 판타지에 미쳐 있었다. 매일 같은 클리셰를 봐도 질리지 않았고, 검객이 등장하는 장면 하나에 며칠을 곱씹으며 행복해했다. 협객이 강을 건너는 장면 하나에 댓글을 세 페이지씩 썼고, 검기가 갈라지는 묘사 한 줄에 감탄사를 스무 개쯤 붙여가며 친구들한테 링크를 뿌렸다. 그런 자극에 완전히 절어 있던 인간이, 갑자기 갓난아기가 되어 자극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된 거다.
생각해보면 말이 되는 이야기였다. 태어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몸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곤 젖 먹고 자는 것뿐인데, 그 무료한 나날 속에서 갑자기 진짜배기 검기를 눈앞에서 본 거다. 그것도 실전에서, 실물로.
'..몇 달치 금단이 한 번에 터진 거지.'
일종의 금단현상. 그리고 무진의 검기라는, 오랜만에 만난 고순도의 자극에 몸이 과민하게 반응한 거라고, 나는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재활 훈련.
내성을 기르려면, 자극에 다시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자극을 섭취해서 몸이 그것에 무뎌지도록 만드는 것.
야구에서도 그러지 않던가. 부진에 빠진 타자일수록 타석에 더 많이 서야 한다고. 슬럼프에 빠진 투수가 마운드를 피하면 그 순간부터 선수 생명이 끝나는 거다. 도망치면 영원히 못 고친다.
'..그래, 부딪혀야 한다.'
나는 그렇게 결심하고, 다음 기회를 노렸다.
물론 결심만 세운다고 기회가 저절로 오는 건 아니었다. 그날부터 나는 서연이 방으로 들어올 때마다 은근히 눈치를 살폈다. 혹시 오늘도 부적을 챙겨 왔나, 혹시 나비가 꼬리를 흔드나. 그런 걸 갓난아기 눈으로 관찰하고 있자니 스스로도 좀 우스웠다.
'..애가 태어나자마자 이런 걸로 스트레스 받아도 되는 건가.'
이틀 정도는 별일 없이 지나갔다. 서연은 나를 안고 마당을 거닐거나, 유모와 함께 젖을 먹이는 시간을 늘리는 정도였다. 그 사이 나는 몸 상태를 점검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다행히 근육통은 하루 만에 가라앉았다. 갓난아기 몸의 회복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며칠 뒤, 서연이 다시 종이 인형들을 꺼내 들었다.
"도경아, 오늘은 좀 더 재밌는 거 보여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재밌는 거, 라는 말이 이렇게 무섭게 들릴 줄이야.
'..어머니, 그 재밌는 게 저한테는 재활 치료입니다.'
서연이 부적을 여러 장 겹쳐 그으며 주문을 외웠다.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방 안 공기를 미묘하게 흔들었다. 그러자 종이 인형 다섯이 동시에 일어나, 아까보다 훨씬 화려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인형들은 서로 손을 맞잡듯 원을 그리며 돌았다. 종이 옷자락이 팔랑거릴 때마다 잔잔한 바람이 일었다.
동시에 나비도 그 옆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비의 꼬리 끝에서 푸른 불꽃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도깨비불이었다.
'..좋아, 이 정도면.'
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지만, 이번엔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씩 자극에 익숙해지면 되는 거니까.
식신들이 빙글빙글 돌고, 나비의 도깨비불이 방 안을 푸르게 물들였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었다. 손끝이 조금 저릿했지만, 참을 만한 수준이었다. 이 정도 자극이라면, 몇 번만 더 반복하면 완전히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버틸 수 있다. 버틸 수 있어.'
나는 속으로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재활은 원래 이런 식이다. 처음엔 힘들어도, 반복하다 보면 몸이 알아서 적응한다. 타석에 서는 횟수가 쌓이면 두려움도 줄어드는 법이다.
그런데 그 순간, 방문이 벌컥 열렸다.
무진이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뒤로 갑옷 비슷한 걸 걸친 사내 서넛이 함께 들어왔다.
체구가 큰 사내 하나는 어깨에 도끼 비슷한 무기를 걸치고 있었고, 그 옆의 마른 사내는 허리춤에 부적 다발을 잔뜩 매달고 있었다. 나머지 둘은 눈매가 날카로웠는데, 딱 봐도 실전으로 다져진 얼굴들이었다.
"부인, 오늘 특별대 동료들을 좀 데려왔소. 도경이 얼굴이나 보여주려고."
'..잠깐, 이게 무슨 전개야.'
예상치 못한 인파의 등장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재활 훈련 계획에 이런 변수는 없었다. 오늘은 딱 종이 인형과 도깨비불 정도의 강도로 끝낼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실전 부대가 통째로 들이닥친 셈이었다.
그런데 그 당황도 잠시, 특별대 사내 하나가 허리춤의 검을 뽑아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스릉-!
검신이 빛을 받아 번쩍였다.
"이거 보게, 이게 바로 지휘님께서 완성하신 환영염류일세."
그 사내가 검을 휘두르자, 붉은 기운이 잔상처럼 허공에 남았다. 검이 지나간 자리마다 불그스름한 궤적이 남아 잠시 허공에 머물다가 스러졌다. 동시에 옆에 있던 다른 사내가 부적을 던져 작은 화염을 만들어냈다.
화르륵-!
작은 불꽃이 순식간에 피어올랐다가 사그라들었다. 그 옆의 도끼를 든 사내는 질세라 무기를 한 바퀴 돌려 보였고, 쇠가 부딪히는 듯한 낮은 울림이 방 안을 울렸다.
식신의 춤, 나비의 도깨비불, 검기의 잔상, 거기에 낯선 술사의 화염까지.
자극이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몰려들었다.
'..아, 이거 아닌데.'
이건 재활 훈련이 아니라 과부하였다. 조금씩 늘려가야 할 강도를, 누군가 한꺼번에 최대치로 끌어올려버린 셈이었다. 야구로 치면 갓 복귀한 재활 선수한테 다짜고짜 만루 위기 마무리를 맡긴 꼴이었다.
몸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지난번보다 훨씬 격렬했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저릿한 전율이 퍼져나갔다. 시야가 흐려지고, 숨이 가빠졌다. 눈앞의 붉은 잔상과 푸른 불꽃이 뒤섞여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보였다.
"도, 도경이 또 그런다!"
서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진도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특별대 사내들도 검을 거두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방금까지 자기들 실력을 뽐내던 사람들이, 이제는 잔뜩 당황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이거 저희가 뭘 잘못했습니까?"
도끼를 든 사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물었다. 무진이 그를 향해 짧게 손을 저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는 정신 한구석으로 생각했다.
'..실전 데뷔치고는 너무 화려한 거 아니야?'
온 방 안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시선들 앞에서, 몸은 계속 활처럼 휘었다가 풀리기를 반복했다.
누군가는 부채를 부쳐주었고, 누군가는 물수건을 가져오라 소리쳤다. 서연은 나를 품에 꼭 끌어안은 채 등을 쓸어내렸지만, 떨림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절정의 순간, 나비의 눈이 번쩍이며 도깨비불의 색이 순식간에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