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면을 걷는 사냥꾼

1화

금속배트가 아귀의 두개골을 으깼다. 뼈가 아니라 물컹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였다, 물풍선 같은. 피가 아니라 검은 진액이 튀었다. 손목이 찢어질 것 같았다. 어깨뼈가 삐걱거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멈추면 죽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세 달째다. 세 달째 이 짓을 하고 있는데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매번 이렇게 숨이 넘어갈 것 같고, 매번 이렇게 손목이 나갈 것 같다. 아귀는 셋이었다. 아니, 넷이었나. 숫자를 셀 정신이 없었다. 놈들은 사람 형상을 어설프게 흉내 낸 채로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리고 달려들었다, 관절이 반대로 꺾이는 것도 개의치 않고. 그 모습이 처음엔 소름 끼쳤다. 지금은 그냥, 익숙한 혐오감 정도로 남았다. 사람이 적응이란 걸 참 잘한다. 그중 하나가 내 왼쪽 어깨를 물어뜯으려 했다. 몸을 틀었다. 배트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뭔가 부러지는 소리, 그리고 놈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아귀 1마리 처치. DP +9 획득.] 눈앞에 뜬 문구를 읽을 여유도 없었다. 남은 두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었으니까. "오른쪽!" 어깨 위에서 작은 목소리가 날카롭게 튀었다. 돌아볼 새도 없이 몸을 낮췄다. 머리 위로 뭔가 지나갔다, 뜨거웠다. 파직. 짧은 전류음과 함께 뭔가 타는 냄새가 났다. 오른쪽에서 달려들던 놈이 그대로 굳어서 쓰러졌다. "이번엔 안 봐줬다." 인형만 한 크기의 존재가 내 어깨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었다. 반투명한 날개가 파르르 떨렸다. 신관 같은 흰 옷을 입은, 인형처럼 작은 여자애였다. 설아였다. 남은 하나가 바닥에 나뒹구는 동료 시체를 보더니 주춤했다. 그리고 등을 보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뛰지 않았다. 뛸 힘이 없었으니까. 정확히는, 뛸 이유가 없었다. "놔둬. 어차피 DP도 얼마 안 돼." 설아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쫓아가면?" "쫓아가다 넘어져서 발목 나가는 게 너잖아."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저번 주에 그랬다. 나는 배트를 어깨에 걸치고 숨을 몰아쉬었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정장 셔츠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이런 몰골로 회사에 갔다간 부장한테 또 뭔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전투 종료. 총 DP 획득: 34.] 숫자를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헛웃음이었다. "겨우 삼만사천 원이네." 그래. DP 1당 대략 천 원. 이것도 시세가 좋을 때 얘기고, 요즘은 환율이 또 떨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제 커뮤니티 글에서는 DP 시세가 800원까지 떨어질 거라는 예측도 봤다. 그러면 나는 삼만사천 원이 아니라 이만칠천이백 원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배트를 휘두른 셈이 된다. 계산할수록 서글퍼졌다. 여기서부터는 정체를 밝힐 차례다. 박강수, 34세. 낮에는 서울 시내 어느 중견 기업 영업부 대리다. 검은 정장, 넥타이, 사원증.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하고 회식 자리에서 눈치 보는, 그런 흔한 회사원이다. 거래처 담당자 비위 맞추고, 부장 농담에 억지로 웃고, 퇴근길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때우는 그런 인생. 서른넷이면 뭔가 이뤄놨어야 할 나이인데, 통장 잔고는 서른 살 때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밤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서울 도심 곳곳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있다. 지하철 환풍구 뒤, 재개발 예정지의 폐건물, 한강 다리 밑 그늘. 그 균열을 넘으면 '이계'라 불리는 공간이 나온다. 아귀들이 들끓는 곳. 그리고 그 아귀를 잡으면 DP라는 게 나온다. 돈이 된다. 그것뿐이었다. 처음 이 세계에 발을 들였을 때는 몰랐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상사의 잔소리, 실적 압박. 그걸 어디다 풀어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던 어느 날, 우연히 넘어간 균열 너머에서 나는 처음으로 후련함을 느꼈다. 배트를 휘두를 때마다 뭔가 터지고 부서졌다. 그게 좋았다. 부장님 얼굴이 겹쳐 보인다는 얘기는 굳이 안 하겠다. 그날 이후로 매일 밤, 균열을 찾아다녔다. 어떤 날은 아무 소득 없이 돌아왔고, 어떤 날은 오늘처럼 삼만사천 원어치를 벌었다. 많은 날도, 적은 날도 있었지만 그만두지는 않았다. 그만두면 다시 낮의 박강수만 남을 테니까. "또 그 표정이다." 설아가 한숨을 쉬었다. "무슨 표정?" "방금 아귀 머리 부술 때 웃었잖아." "안 웃었어." "웃었어." "……"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사실 웃었다. 부인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안다. 설아는 3개월 전, 이 균열 안쪽 깊은 곳에서 만났다. 정확히는 만났다기보다, 계약을 맺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정신을 차려 보니 손등에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날부터 이 조그만 요정이 내 어깨에 얹혀서 따라다녔다. 처음엔 무서웠다. 손등에 새겨진 문양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응급실에도 가보고 피부과에도 가봤다. 의사는 문신이냐고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결국 답은 균열 안에서 찾았다. 설아가 직접 알려줬다. [계약자: 박강수 / 조력자: 설아] [계약 조건: 상호 협력, DP 수익 배분 7:3] 칠 대 삼. 칠이 나다. 처음엔 그게 억울해서 항의했다가 뇌마법 한 방 맞을 뻔했다. "내가 목숨 걸고 배트를 휘두르는데 왜 네가 삼을 가져가?" "내가 없으면 넌 진작 죽었어." "그건 그렇지만." "그럼 닥치고 칠 대 삼 지켜." 그날 이후로 나는 이 계약에 대해 다시는 항의하지 않기로 했다. 목숨은 소중하니까. "살살 좀 해. 다치겠어." "누가 할 소리야." 설아가 눈을 흘겼다. "아까 그 아귀, 머리 세 번 더 내려쳤어. 죽은 다음에." "확인 사살이야." "확인 사살은 한 번이면 되는 거야." "……" 반박할 말이 없었다. 사실 나도 안다, 좀 심했다는 거. 하지만 어쩌겠는가. 낮에 부장한테 깨진 스트레스가 어디로 가겠는가. 오늘 낮에도 그랬다. 분기 실적 보고 자리에서 부장은 내 자료를 보더니 한숨부터 쉬었다. "박 대리, 이거 숫자가 왜 이래." 숫자는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시장이 만든 건데, 그 말을 하면 또 다른 잔소리가 나올 게 뻔해서 그냥 죄송하다고만 했다. 그 죄송하다는 말을, 오늘 밤 아귀 머리를 부수면서 대신 갚은 셈이다. "인간은 왜 이렇게 폭력적이야?" 설아가 진지하게 물었다. "다는 아니고 나만." "그러니까 문제라는 거야." 그녀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작은 몸으로 한숨 쉬는 게 은근히 귀여웠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말했다간 또 전기가 튈 테니까. 한 번 그런 말을 했다가 감전된 적이 있다. 정확히는 "너 화낼 때도 귀엽다"고 했다가 오른팔 전체가 저릿저릿했었다. 그 뒤로는 절대 그런 말 안 한다. 밤하늘 대신 이계 특유의 붉은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다. 공기는 축축했고, 어딘가 탄내가 섞여 있었다. 균열 밖으로 나가는 길목을 찾아 걸으면서, 나는 오늘 번 DP를 어떻게 환금할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삼만사천 원.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다. 다음 달 카드값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휴대폰 요금, 관리비, 그리고 지난달 무리해서 산 등산화 할부금까지. 숫자를 하나씩 떠올릴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더 많이 벌 방법 없나." 혼잣말이었는데 설아가 대답했다. "있긴 있는데." "뭔데." "안 알려줄 거야." "왜." "너 더 폭력적으로 변할까 봐." "……" 농담이 아닌 눈치였다. 나는 입을 다물고 다시 걸었다. 앞쪽으로 희미하게 빛이 새어드는 균열의 출구가 보였다. 그 빛을 보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설아가 말하는 "더 벌 방법"이 대체 뭘까. 더 깊은 균열로 들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뭔가일까. 물어봐도 대답 안 할 게 뻔해서, 그냥 묻지 않기로 했다. 저 문을 넘으면 다시 회사원 박강수로 돌아간다. 넥타이를 매고, 사원증을 목에 걸고, 부장 눈치를 보는 그 인생으로. 그리고 다시 밤이 오면, 나는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게 반복이었다. 매일 밤 균열을 넘고, 아귀를 잡고, DP를 벌고, 다시 낮의 삶으로 돌아가는 반복. 언제까지 이걸 계속해야 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출구 너머로 발을 내딛는 순간, 설아가 문득 중얼거렸다. "근데 아까 그 배트 스윙, 좀 이상했어." "뭐가." "마지막에 손목 돌리는 거. 그거 원래 안 하던 동작인데." 나는 걸음을 멈췄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마지막 순간, 뭔가에 홀린 듯 손목을 살짝 비틀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스윙에 아귀 두개골이 유독 쉽게 부서졌다. 평소보다 힘도 덜 들었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는 배트가 알아서 움직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연이었을까. 설아를 돌아봤다. 그녀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반투명한 날개가 미세하게 떨렸다, 아까와는 다른 이유로. "너, 표정이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눈치였다. 하지만 더 캐물을 틈도 없이, 균열의 출구가 눈앞에서 빛을 뿜었다. 그날 밤은 그 의문을 안은 채 균열을 넘었다.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