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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관심이라뇨." 내가 되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방금 전까지 골목 어귀에 서 있던 남자가, 어느새 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발소리도 없이. 한도현은 대답 대신 천천히 다가왔다. 지팡이 끝이 바닥에 부딪히며 또각또각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골목이 조용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 심장이 그만큼 뛰고 있어서 그런 건지 구분이 안 갔다. "등급 미상 조력자라니,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그가 말했다. 예스러운 말투였다. 하대도 존대도 아닌, 딱 그 중간의 묘한 격식. 관공서 서류에서나 볼 법한 말투를, 사람 입으로 듣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등급 미상이면 문제 되는 건가요." "문제라기보다는, 흥미로운 것이지요." 한도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다.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뭔가를 감정하는 눈이었다. 골동품 감정사가 도자기 밑바닥을 뒤집어 보는 것 같은. "보통 조력자는 정령, 하급 신, 혹은 죽은 자의 영혼입니다. 그런데 그쪽 조력자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군요." 설아가 내 어깨 위에서 몸을 더 웅크렸다. 작은 몸이 떨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평소라면 나서서 한마디 톡 쏘아붙였을 텐데, 지금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있었다. 그게 더 불안했다. 나는 그녀를 슬쩍 감싸듯 어깨를 움츠렸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뭘 원하시는 겁니까." 직설적으로 물었다. 돌려 말할 여유가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열 가지쯤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지나가고 있었다. 관리국에 끌려가는 설아, 정밀 검사대에 눕혀지는 설아, 그리고 그 옆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서 있는 나. 한도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참 얄미웠다. 이쪽 사정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여유로운 웃음. "거래를 하나 제안하고 싶습니다." "거래요?" "박강수 씨의 조력자를 특별관리부 산하로 등록시켜 주시면, 그 대가로 특급 사냥터 출입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특급 사냥터. 그 이름은 들어본 적 있었다. 일반 균열보다 훨씬 위험하지만, 그만큼 DP 밀도가 높은 곳이라고. 협회 게시판에서 몇 번 스치듯 본 이름이었다. [특급 사냥터 클리어 파티 모집, 최소 각성 3단계 이상] 그런 공고를 보며 나는 늘 스크롤만 내렸다. 내 등급으로는 명함도 못 내미는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지금, 협상 카드로 내 눈앞에 올라와 있었다. 계산이 빠르게 돌아갔다. 특급 사냥터 출입 권한이면, 지금 벌이의 몇 배는 될 것이다. 아니, 몇 배가 아니라 자릿수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좀도둑질하듯 긁어모은 DP가 우스워질 정도로. 하지만. 설아를 관리국 산하에 등록시킨다는 건, 그녀를 그들 손아귀에 넘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등록이라는 말은 참 좋게 포장돼 있지만, 실상은 목줄을 채우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한 번 그들 서류에 이름이 올라가면, 그다음부터는 내 조력자가 아니라 그들의 관리 대상이 되는 거였다. "싫으면?" 내가 되물었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겁먹은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한도현의 미소가 조금 짙어졌다. "싫으면 정밀 검사를 정식 절차대로 진행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그 절차는, 꽤 오래 걸립니다." 협박이었다. 돌려 말했을 뿐. 정밀 검사가 오래 걸린다는 건, 그 사이 설아를 강제로 격리 조사한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아니, 뜻일 수도 있는 게 아니라 거의 확실했다. 관리국 산하 시설에 들어가서, 알 수 없는 기계들에 둘러싸여 며칠이고 몇 주고 갇혀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 상상만으로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조건을 좀 바꾸죠." 내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애써 눌러 담았다. "등록은 안 됩니다. 대신 특급 사냥터 출입 권한만 주십시오. 그리고 정밀 검사는 최대한 미뤄주시고요." 한도현이 잠시 나를 응시했다. 침묵이 길었다. 지팡이 끝이 바닥을 톡, 톡, 두 번 두드렸다. 그 소리마저 신경을 긁었다. "박강수 씨는 협상을 아시는 분이군요." "먹고 살려면 그 정도는 알아야죠." 그가 픽 웃었다. 웃음소리가 짧고 건조했다. 비웃는 건지, 재밌어하는 건지 구분이 안 갔다. "좋습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특급 사냥터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보이십시오. 그러면 검사는 무기한 연기해 드리죠. 성과가 없으면, 원래대로 진행합니다." 결국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압박이 사라진 게 아니라 형태만 바뀐 거였다. 한숨이 나올 뻔한 걸 참았다. 결국 이것도 시험이었다. 등급 미상 조력자를 데리고 있다는 이유로, 나는 계속 뭔가를 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게 최선이었다. 거절하면 설아는 관리국 시설로 끌려가고, 받아들이면 적어도 시간은 벌 수 있었다. 그 시간 안에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지금은 그거면 충분했다. "좋습니다." 내가 손을 내밀었다. 한도현이 그 손을 가볍게 잡았다. 악수치고는 서늘한 감촉이었다. 사람 손이 아니라 얼음을 만지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손을 빨리 빼고 싶었지만, 참았다. 여기서 티를 내면 지는 거였다. "그럼 내일 밤부터 출입 가능하도록 처리해 두겠습니다."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뒤돌아 걸어갔다. 지팡이 소리가 다시 또각또각 울렸다. 몇 걸음 가다가 멈추더니, 돌아보지 않고 한마디 덧붙였다. "참고로, 그쪽 조력자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있습니다. 곧 다시 뵙지요." 그리고 그는 골목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소리도 없이. 방금까지 또각또각 울리던 지팡이 소리마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뚝 끊겼다. 그게 더 소름 끼쳤다. 남겨진 나와 설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골목은 다시 조용해졌다. 가로등 하나가 깜빡거리며 우리 둘을 비췄다. 멀리서 취객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다가, 이내 사라졌다. "괜찮아?" 내가 먼저 물었다. 설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끄덕임이 평소보다 힘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어깨 위에서 방방 뛰며 한마디씩 참견했을 텐데, 지금은 그저 조용히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저 사람, 나에 대해 뭘 알아보겠다는 거지." 혼잣말처럼 그녀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작았다. 평소의 새침한 톤이 아니라, 뭔가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였다. "너 뭐 숨기는 거 있어?" "……없어." "진짜?" "없다니까." 대답이 너무 빨랐다. 뭔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더 캐물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설아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놀리듯 웃으며 넘겼을 텐데,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뭔가 그녀 안에 있는 게, 나한테도 말 못 할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침묵이 대답보다 더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방금 얻은 특급 사냥터 권한을 떠올리며 애써 기분을 전환했다. 생각을 다른 데로 돌려야 했다. 안 그러면 자꾸 설아의 떨리는 어깨만 신경 쓰일 것 같았다. 특급 사냥터라니. 돈 냄새가 났다. 머릿속으로 대충 계산을 해봤다. 지금까지 뛰던 균열 하나에서 나오는 DP가 열이라면, 특급 사냥터에서는 백,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그 정도면 밀린 방세도 갚고, 낡은 방어구도 새로 맞추고, 어쩌면 설아를 위해 뭔가 더 좋은 것도 해줄 수 있을지 몰랐다. "내일부터 대박 나겠다." 내가 중얼거렸다.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냈다. 분위기를 좀 풀어보려고. 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한소리 했을 텐데, 그날은 조용히 어깨 위에 앉아 있기만 했다. "야, 설아. 무슨 대박이 났는데 반응이 이래." "……"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괜찮다니까."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집 앞 골목에 다다를 때까지, 설아는 단 한 번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백 마디는 늘어놨을 텐데. 가로등 불빛 아래서 힐끔 올려다본 그녀의 옆얼굴은,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오래전에 잊고 있던 뭔가를 다시 떠올린 사람처럼. 한도현. 그 이름 석 자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등급 미상 조력자에 대해 알아본다는 말. 그게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내일 밤이면 특급 사냥터에 들어간다. 그전에, 설아에게서 뭔가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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