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면을 걷는 사냥꾼

5화

다음 날 밤, 특급 사냥터로 향하는 균열은 강남 한복판, 재건축 예정인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에 숨어 있었다. 주차장 입구부터 이상했다. 셔터는 반쯤 내려와 있었고, 그 아래로 붉은 빛이 새어 나왔다. 관리국 직원 두 명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서 있었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안내를 맡은 직원이 태블릿을 두드리며 말했다. 목소리가 사무적이었다. 매일 이런 일을 반복하는 사람 특유의 무심함이었다. "참고로 일반 균열보다 아귀 밀도가 다섯 배 이상입니다." "다섯 배요?" 내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네. 대신 DP도 그만큼 나오고요." 직원은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덧붙였다. 사망자 수를 읽는 것처럼 건조한 말투였다. "작년 기준으로 특급 사냥터 진입자 생존율은 68퍼센트입니다. 참고하세요." 68퍼센트. 그 말은 세 명 중 한 명은 안 돌아온다는 뜻이었다. "괜찮아요." 내가 말했다. "제 생존율은 통계에 안 들어가니까." 직원이 처음으로 나를 쳐다봤다. 표정에 옅은 호기심이 스쳤다가 금세 사라졌다. 어차피 하루에도 수십 명씩 들락거리는 곳이었다. 내 허세 따위, 기억에 남을 리 없었다. 다섯 배 위험, 다섯 배 보상. 계산은 이미 끝났다. 돈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삶을 오래 살았다. 이 정도 리스크는 감수할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부터 달랐다. 무겁고, 끈적하고, 붉은 안개가 훨씬 짙었다.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 안쪽이 까끌거렸다. 마치 안개 자체에 미세한 모래알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조심해." 설아가 낮게 속삭였다. 목 뒤에 앉은 그녀의 날개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여긴 진짜 위험한 곳이야. 아귀들 움직임도 일반 균열이랑 달라. 무리 지어서 협공하는 개체들도 있어." "협공?" "응. 저번처럼 한 마리씩 오는 게 아니라, 세 마리가 한 조로 움직이면서 앞뒤에서 물어." 썩 유쾌한 정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귀 무리가 나타났다. 하나, 둘, 셋…… 열 마리가 넘었다. 일반 균열이면 진작 도망쳤을 숫자였다. 붉은 눈알들이 안개 속에서 동시에 번뜩이는 광경은, 솔직히 말해서 오줌을 지릴 뻔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배트를 고쳐 잡았다. 손목을 미리 풀었다. 손가락 마디마디를 꺾자 우두둑 소리가 났다. "해보자." 첫 번째 놈이 달려들었다. 스윙, 손목 꺾기. 딱. 머리가 터졌다. 검은 액체가 안개 속으로 흩어졌다. [아귀 1마리 처치. DP +31 획득.] 31. 일반 균열 아귀보다 두 배 넘게 나왔다. 숫자를 확인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두 번째 놈은 벌써 코앞까지 와 있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연달아 처치했다. [DP +28 획득.] [DP +35 획득.] 숫자가 쌓일수록 흥분이 차올랐다. 어깨가 저려오고 손목이 아팠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통증이 무뎌지고 있었다. 설아도 가만있지 않았다. 뇌마법으로 서너 마리를 동시에 감전시켜 나를 도왔다. 파직, 파직. 전류가 튈 때마다 아귀들이 픽픽 쓰러졌다. 그녀의 작은 몸에서 저런 화력이 나온다는 게 매번 신기했다. "오른쪽!" 설아가 외쳤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몸을 틀고 있었다.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딱. 여섯 번째 놈이 쓰러졌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땀이 눈으로 흘러들어 시야가 흐려졌다. 마지막 한 마리까지 처치했을 때, 나는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배트에 몸을 기대야 했다. [전투 종료. 총 DP 획득: 412.] 숫자를 본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사십일만 이천 원. 한 번의 사냥으로. "미쳤다." 내가 중얼거렸다. 진심이었다. 편의점 야간 알바 한 달 치를, 십 분 만에 벌었다. 설아는 내 어깨 위에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날개를 접었다 폈다 반복하는 게, 뭔가 계산 중이라는 신호였다. "근데 이상해." "뭐가." "DP 배율이 다섯 배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그 이상 나왔어. 특히 네가 손목 꺾은 스윙, 그거 데미지 증폭률이 계산보다 훨씬 높아." "그럼 좋은 거 아니야?" "좋긴 한데……" 설아가 말을 흐렸다. "보통 이런 식으로 성장하는 경우는 없거든. 스킬 하나로 이렇게 급격하게 데미지가 뛰는 건, 뭔가 특이한 케이스야." 특이한 케이스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지갑이 두둑해진다는 사실 앞에서 그 불안은 금세 뒷전으로 밀려났다. 돈이 사람을 이렇게 만든다. 불안보다 잔고가 먼저 보이는 인간으로. "일단 몇 번 더 해보고 판단하자." 내가 말했다. 설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는 여전히 찝찝함이 남아 있었지만, 나를 말릴 명분도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특급 사냥터를 세 번 더 돌았다. 매번 손목 꺾기 스윙을 의식적으로 사용했다. 같은 동작, 같은 각도, 같은 타이밍. 반복할수록 몸에 익어갔다. 결과는 놀라웠다. 첫 번째 사냥: DP 412. 두 번째 사냥: DP 456. 세 번째 사냥: DP 501. 네 번째 사냥: DP 578. 숫자가 매번 늘어났다. 같은 동작을 반복할수록 데미지가 더 커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스윙 한 번마다 배트가 조금씩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는 가벼워야 정상인데, 반대로 느껴졌다. "이거, 스킬이 성장하는 거 아니야?" 내가 물었다. 숨을 고르며 배트 손잡이에 감긴 테이프를 다시 만졌다. 설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보통 스킬 성장은 이렇게 빠르지 않아. 며칠, 몇 주에 걸쳐서 미세하게 오르는 게 정상이야." "근데 나는?" "너는 한 시간 만에 네 번의 사냥으로 데미지가 40퍼센트 가까이 뛰었어." 그녀의 목소리에 경계심이 묻어났다. "이거 위험한 거야?" "모르겠어. 근데 확실한 건, 너 지금 정상적인 성장 곡선을 벗어나고 있다는 거야." 정상이 아니라는 말. 하지만 그게 나쁜 쪽인지 좋은 쪽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잠깐 손목을 내려다봤다. 겉으로는 아무 이상 없었다. 그저 조금 붉게 부어 있을 뿐. 일단은 이 흐름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반복하자." 내가 말했다. "손목 꺾기 스윙, 계속 쓰면서 데이터 모으자고." 설아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너 진짜 돈 앞에서는 물불 안 가리는구나." "먹고 살아야지." "……알았어. 대신 몸 상태 이상하면 바로 말해." "오케이." "진짜야. 손목 감각 이상하다, 어지럽다, 뭐든 느껴지면 바로 말해. 알았지?" "오케이, 오케이."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설아는 그걸로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신신당부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다섯 번째 사냥을 준비하며 배트를 고쳐 잡았을 때, 균열 저편에서 낯선 기척이 느껴졌다. 아귀와는 다른 종류의 기운. 피부에 소름이 돋는, 조금 더 근본적인 종류의 위협감이었다. 설아의 날개가 다시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아까와는 진동의 폭이 달랐다. "저번 그 사람이야." 그녀가 낮게 속삭였다. "한도현?" "아니, 다른 사람. 근데……" 설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 기운, 어디서 느껴본 것 같아." 나는 배트를 고쳐 쥐며 안개 저편을 살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공기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아까까지 느껴지던 아귀 특유의 비린내 대신, 뭔가 더 오래되고 더 무거운 냄새가 났다. 안개 저편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한도현보다 훨씬 크고, 훨씬 위압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실루엣이었다. 키가 컸다. 어깨선이 넓었고, 걸음걸이에서부터 여유가 묻어났다. 쫓기는 사람의 걸음이 아니라, 쫓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설아가 갑자기 내 목덜미에 바짝 달라붙었다. 평소보다 훨씬 세게, 마치 뭔가를 두려워하듯이. 그녀의 작은 손이 내 피부에 닿는 순간, 이상한 감각이 전신으로 퍼졌다. 따뜻하고, 동시에 저릿한. "설아야, 왜 그래." "……잠깐만."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낯선 떨림이었다. "저 기운, 나랑 연결돼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림자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발소리 하나 없이, 안개를 가르며. 나는 배트를 고쳐 잡았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이건 아귀가 아니었다. 아귀보다 훨씬, 훨씬 더 위험한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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