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선생님, 이제 헌터 합니다

2화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천장의 색깔이었다. 하얀색이 아니라 누런빛이 도는, 오래되어 형광 가루가 반쯤 벗겨진 낡은 형광등 불빛이었다. 그 불빛이 유독 눈에 밟혀서 나는 한동안 눈만 깜빡였다. 병원인가. 천장 타일 사이로 물이 샌 흔적처럼 누렇게 얼룩진 자국이 보였고, 그 얼룩의 모양이 이상하게도 사람 얼굴처럼 보여서, 나는 잠깐 그 얼굴과 눈싸움을 하다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팔에 힘이 이상할 정도로 잘 들어갔다. 평소라면, 자다가 몸을 일으킬 때 팔꿈치가 시큰거리고 어깨가 뻐근했을 텐데, 지금은 그냥 침대 매트리스를 짚는 순간 상체가 훅 하고 가볍게 세워졌다. 마치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아니, 정확히는 내가 알던 무게감이 아니었다. 그 낯선 감각이 너무 이상해서 나는 잠시 멍하니 그대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손을 들어 얼굴 앞에 가져왔을 때, 나는 그게 내 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손가락이 두껍고 마디가 굵었으며, 손등엔 힘줄이 도드라져 있었고, 손톱 밑에는 뭔가 거뭇한 게 껴 있었다. 손톱을 이렇게 험하게 쓴 적이 있었나. 아니, 나는 손톱 정리를 이 주에 한 번씩 하는 사람이었다. 매니큐어까진 안 발라도 큐티클은 항상 깔끔하게 밀어놨었다. 그런데 이 손은, 이건 어디 공사장에서 삽질하다 온 사람 손 같았다. "…뭐야, 이거."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어제 교실에서 순간적으로 들었던 그 낮은 목소리, 바로 그것이었다. 목젖이 울리는 느낌부터가 낯설었다. 성대 자체가 다른 사람 것이었으니까. 그제야 나는 몸을 일으켜 병실 안쪽 화장실로 뛰듯이 걸어갔고, 걸음걸이조차 이상했다. 다리가 길어서 보폭이 나도 모르게 커졌고,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감각이 묘하게 무거웠다. 거울 앞에 서서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거울 속에는 서른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짙은 눈썹, 각진 턱선, 키는 백팔십 대는 되어 보였고, 병원 환자복을 입은 어깨는 나 강수아가 평생 가져본 적 없는 넓이였다. 목에는 오래된 흉터 같은 것이 옅게 남아 있었고, 눈매는 뭔가에 지친 듯 처져 있으면서도 눈동자 안쪽에는 이상하게 단단한 게 박혀 있는 느낌이었다. "이게, 무슨…" 말을 끝맺지 못했다. 손으로 얼굴을 만져봤지만 거울 속 남자도 똑같이 얼굴을 만졌고, 그건 분명 내 몸이었다. 콧대를 문질러보고 턱을 만져보고, 심지어 눈을 크게 떠서 눈동자 색깔까지 확인해봤는데도 결과는 똑같았다. 이건 반사가 아니라 반응이었다. 내가 움직이는 대로 저 낯선 얼굴이 움직였다. 그런데 내가 아니었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면서도, 동시에 이상하게 침착한 뭔가가 그 하얀 공백 사이를 파고들어와 있었다. 그건 마치, 패닉에 빠진 나를 뒤에서 붙잡고 "일단 앉아서 생각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간호사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저 강수아예요! 서울중앙중학교 교사, 강수아라고요!" 간호사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뒤로 살짝 물러섰다. 손에 든 차트를 가슴 앞으로 끌어당기듯 안는 그 몸짓에서, 나는 이 사람이 지금 나를 위험 인물로 분류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환자분 성함은 강도현이시고요, 보호자 오시기 전까지 좀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강도현이 아니라 강수아라니까요!" 내가 다시 소리쳤지만, 간호사는 이미 문밖으로 나가버렸고, 나는 병상에 걸터앉아 손을 떨었다. 손이라고 해봐야 강도현이라는 사람의 손이었지만, 그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보면서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건, 이 상황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데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지 않는다는 거였다. 분명 공포스러워야 할 상황이었는데, 몸속 어딘가가 이 상황을 지나칠 정도로 차분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심장 박동수를 확인하려고 손목에 손가락을 대봤는데, 맥박이 평온하다 못해 느긋했다. 마치 누군가 내 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괜찮아, 침착하게 하나씩 정리하면 돼. 그 이질적인 차분함이 오히려 나를 더 무섭게 만들었다. 나 강수아는, 반 학생 하나가 지각만 해도 속으로 온갖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사람이었다. 사고가 났나, 집에 무슨 일이 있나, 밤새 게임하다가 늦잠 잔 건 아닐까. 그런 사람이 자기 몸이 통째로 바뀐 상황에서 이렇게 태연할 수는 없었다. 이건 내 성격이 아니었다. 이 몸에 원래 깔려 있던 무언가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나를 진정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오후, 부모님이 병실에 도착했다. "수아야, 정신이 좀 들어?" 엄마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병상에 앉아 있는 낯선 남자를 보고는 그대로 멈춰 섰다. 엄마의 손에 들려 있던 보온병이 살짝 흔들렸고, 아빠는 그 뒤에서 문틀을 짚고 서서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실례지만 여기 저희 딸이 있어야 하는데요."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고, 나는 그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야." 엄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누구세요?" "나 수아라고, 목소리 들어봐요, 나야." 아빠가 엄마를 붙잡으며 뒷걸음질 쳤고, 나는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증명하고 싶어서 어릴 때 얘기를 꺼냈다. 초등학교 삼학년 때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밑에서 다쳤던 흉터, 고등학교 때 야자 째고 노래방 갔다가 걸려서 혼났던 일, 심지어 지난주에 엄마가 반찬통에 넣어준 멸치볶음 얘기까지.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낯선 남자를 아들처럼 볼 수 없었고, 그건 당연했다. 목소리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고 몸까지 통째로 다른 남자가, 자기 딸만 알 법한 사소한 이야기들을 줄줄 읊어대는 상황이니까. 오히려 그게 더 소름 끼치는 그림이었을 거다. 결국 그날 저녁 병원 측은 경찰에 신고를 했다. 실종된 강수아라는 여성 교사와, 그 자리에 대신 나타난 정체불명의 남자. 행정적으로 이보다 더 골치 아픈 사건은 없었을 것이다. 병원 측 입장에서도, 원래 입원해 있던 강도현이라는 남자 환자가 사라지고, 그 침대에 실종 신고된 여성 교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이 남자가 다시 나타난 셈이니, 서류상으로는 도저히 정리가 안 되는 그림이었다. 담당 의사는 회진 시간에 나를 힐끗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트에 뭔가를 휘갈겨 쓰기만 했다. 경찰서 조사실에 앉아 형사와 마주했을 때도, 나는 이 남자의 몸으로 강수아의 신원을 증명하려 애썼다. 조사실은 좁고 형광등 소리가 계속 미세하게 웅웅거렸다. 책상 하나, 의자 두 개, 그리고 벽에 걸린 낡은 시계. 형사는 내 앞에 앉아 볼펜을 딸깍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제 신분증 번호, 주민등록번호까지 다 말할 수 있어요. 학교 동료들 이름도, 제자들 이름도요." 나는 숨도 안 쉬고 강수아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쏟아냈다. 담임을 맡고 있는 반 번호, 교무실 자리 위치, 옆자리 체육 선생님 이름, 심지어 지난 학기 학부모 상담 때 있었던 사소한 에피소드까지. 형사는 팔짱을 낀 채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 정보는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옵니다, 선생님. 그보다 지문 대조부터 하시죠." 그 말투에 살짝 비웃음이 섞여 있었고, 나는 순간 이 남자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데 그 충동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원래의 강수아라면, 이런 순간에 조용히 눌러 담고 눈물부터 흘렸을 텐데, 지금 이 몸 안의 나는 오히려 형사의 저 여유로운 태도가 거슬려서 손끝이 근질거렸다. 지문을 찍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삼십 분이었는데, 그 삼십 분 동안 나는 이상하게도 초조하지 않았다. 분명 인생 최악의 위기 상황이었는데, 속에서 뭔가가 계속 이렇게 되뇌고 있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다음 수를 준비하면 된다. 그건 강수아, 십오 년 차 중학교 교사의 사고방식이 아니었다. 나는 애초에 위기 상황에서 "다음 수"라는 말을 떠올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시험 문제 채점하다가 학생 하나가 억울하다고 항의하면 그 자리에서 심장이 벌렁거려서 다시 채점 기준표를 뒤적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지문 결과라는 인생을 뒤흔들 수 있는 판정을 기다리면서도, 나는 마치 체스판 위의 다음 수를 고민하는 사람처럼 차분했다. 그리고 지문 결과가 나왔을 때, 형사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형사는 모니터를 몇 번이나 다시 클릭하고, 프린터에서 나온 종이를 손으로 몇 번이나 문질러보고, 심지어 옆자리 동료 형사를 불러와서 화면을 같이 확인했다. 두 사람의 표정이 점점 이상해졌다. 지문은, 등록된 기록이 어디에도 없었다. 전산 오류인가 싶어서 재조회를 걸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강도현이라는 이름으로도, 다른 어떤 이름으로도, 이 지문은 대한민국 어느 데이터베이스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형사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의 짜증과 비웃음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뭔가 다른 것이, 경계와 의심이 뒤섞인 시선이 들어차 있었다. "당신, 대체 누구야." 그 말이 나온 순간, 나는 이 몸의 주인이 도대체 누구였는지, 이 남자가 그동안 무슨 삶을 살았는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리고 그 무지가, 지금까지의 어떤 순간보다도 나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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