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선생님, 이제 헌터 합니다

5화

관악산 부근 게이트는 생각보다 초라했다. 등산로 입구에서 조금 벗어난 공터에 커다란 아치형 균열이 떠 있었는데, 그 안쪽으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흙빛 안개가 낀 동굴 같았다. 주변에는 녹색 펜스가 둘러쳐져 있었고, 펜스 너머로는 관리 초소로 보이는 컨테이너 건물 두 채가 나란히 서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나온 탓인지 공기는 차가웠고, 산 냄새와 흙 비린내가 뒤섞여 코끝을 스쳤다. 게이트는 다른 차원과 이 세계를 연결하는 균열이며, 자연 발생하거나 특정 조건 하에 인위적으로 확장된다. 내부 공간을 던전이라 칭하고, 던전 내부에는 등급에 따라 다양한 몬스터가 서식한다. F등급 던전은 국가 지정 관리 인력이 상시 배치되어 있으며, 신규 탐험자의 견학 및 초급 실전 평가 장소로 활용된다. 매년 봄마다 이런 F등급 게이트에서 신규 응시자 평가가 진행되고, 통과하면 정식 헌터 등록증이 발급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감독관 옆으로 스무 명 남짓한 신규 응시자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 나보다 어린 이십 대였고 하나같이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손에 든 종이컵을 꽉 쥐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다리를 떨며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조금 이질적인 존재였다. 삼십 대 초반에 접어든 아저씨가 이십 대 애들 사이에 껴서 서 있는 모양새라니, 누가 봐도 그림이 어색했다. "강도현 씨, 여기서 대기하시고요, 순서대로 소규모 조 편성해서 들어갈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응시자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섰다. 딱히 누구랑 어울릴 생각도 없었고, 그냥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다가 대충 평가만 통과하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 나를 툭 쳤다. "저기, 처음이세요?" 돌아보니 이십 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눈빛이 유독 날카로웠고 말투에도 거침이 없었다. 어깨에 멘 검집이 꽤나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걸 보면 아마 오늘 처음 이 바닥에 발을 들인 놈은 아닌 듯했다. "…네, 뭐." "묻는 말에나 대답해요. 처음이냐고요." 그 말투에 나는 잠깐 멈칫했다. 아니 묻는 말에 대답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말싸움을 할 필요는 없어서 그냥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뒤로 빠져 계세요. 여기 초짜들이 앞에 서 있으면 방해되니까." 이 새끼가 이런 말을 서슴없이 던지는 걸 보면서, 나는 속으로 처음 보는 사이에 태도가 참 볼만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겉으로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뭐, 어린 놈이 자신감 넘치는 것까지 뭐라 할 건 없지. 다만 저렇게 사람 대놓고 무시하는 태도는 언젠가 한 번쯤 크게 데어봐야 고쳐질 텐데, 라는 생각이 스쳤을 뿐이다. 주변에 있던 다른 응시자들이 그 남자를 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 재수생이래. 작년에 F등급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다던데." "근데 왜 저렇게 당당해?" "몰라, 성격이 원래 저런가 봐." 역시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력보다 자신감이 앞서는 부류. 어디서나 꼭 한 명씩은 있는 그런 부류. 감독관이 클립보드를 들고 조 편성표를 확인하는 사이, 나는 팔짱을 끼고 게이트 쪽을 바라보았다. 흙빛 안개가 낀 균열 안쪽에서 이상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것 같기도 했는데, 딱히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냥 던전이라는 게 다 이런 냄새를 풍기는 건지, 아니면 오늘 유독 심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던전 안쪽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진동이 느껴졌다. 두구구구- 지면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감독관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방금까지 클립보드를 들여다보던 감독관도 고개를 번쩍 들어 게이트 쪽을 쳐다봤고, 다른 감독관 하나는 허리에 찬 무전기를 만지작거리며 뭔가 확인하려는 듯 게이트에 다가섰다. "뭐야, 이거 F등급 던전 아니었어요?" 누군가 소리쳤고, 감독관이 무전기를 붙잡고 다급하게 뭔가를 외쳤다. "게이트 등급 재산정 필요! 내부 몬스터 웨이브 발생 가능성 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던전 안쪽에서 거대한 형체가 튀어나왔다. 캬아아아악- 몸통이 인간의 세 배는 되어 보이는, 흙빛 피부에 붉은 눈을 가진 몬스터였다. 팔뚝만 봐도 사람 몸통보다 두꺼웠고, 움직일 때마다 땅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저게 F등급 던전에서 나온다는 게 말이 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크기와 기세가 압도적이었다. 감독관들이 순식간에 무기를 꺼내들었지만, 그 몬스터는 이미 응시자들이 모여 있는 방향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누군가는 뒤로 넘어졌고, 누군가는 그대로 얼어붙어 도망칠 생각조차 못 했다. "피해! 다들 뒤로 빠져!" 누군가 소리쳤지만, 아까 나에게 뒤로 빠지라고 명령했던 그 날카로운 눈의 남자는 오히려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았다. "저 정도면 저도 처리할 수 있어요." 젊은 놈이 자신감은 있었지만, 몬스터의 속도를 계산에 넣지 못한 게 문제였다. 검을 뽑아든 자세는 그럴싸했다. 아마 어디선가 제대로 배운 자세였을 텐데, 문제는 상대가 자세를 갖출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몬스터의 팔이 휘둘러지는 순간, 남자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고, 나는 그 순간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걸 느꼈다. 생각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다. 머릿속으로 뭔가를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발이 먼저 땅을 박차고 나갔고 손이 먼저 남자의 옷깃을 붙잡아 당겼다. 콰아아앙! 내가 남자를 밀치며 대신 몬스터의 팔을 받아냈는데, 팔뚝으로 그 충격을 그대로 흡수하면서도 나는 뒤로 몇 걸음 밀려나는 정도로 끝났다. 발바닥으로 흙이 갈리는 느낌이 들었고, 팔뚝에는 뻐근한 통증이 남았지만, 뼈가 부러지거나 살이 찢어지는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멀쩡했다.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뭐야." 누군가의 목소리가 떨렸다. 방금까지 나를 초짜라고 뒤로 빠지라던 그 남자는, 자기 발밑에 넘어진 채로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뭐라고 말은 하고 싶은데 말이 안 나오는 얼굴이었다. 몬스터가 다시 팔을 들어 올리는 순간, 나는 손끝에서부터 뭔가 뜨거운 감각이 치솟는 걸 느꼈다. 마치 몸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무언가가, 십오 년 동안 억눌려 있던 무언가가 처음으로 마음껏 풀려나는 느낌이었다. 이게 뭔지, 왜 이제야 느껴지는 건지, 그런 것들을 따질 여유는 없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발을 굴러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었고, 손끝에 맺힌 힘이 그대로 몬스터의 몸통을 관통했다. 푸우욱- 몬스터가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캬아아아아악- 그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채 오 초도 걸리지 않았다. 몬스터의 거대한 몸뚱이가 흙바닥에 쓰러지면서 먼지가 크게 일었고, 그 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은 완전한 침묵이었다. 감독관들도, 응시자들도, 심지어 방금 목숨을 구해준 그 날카로운 눈의 남자까지도, 모두 나를 쳐다보며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누군가는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고, 누군가는 아예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손끝에 남은 몬스터의 흔적을 털어내며, 이 상황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애써 참았다. 십오 년 넘게 평범한 교사로 살아오다가, 이제야 이런 걸 느껴보다니. 인생이라는 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저, 신규 응시생인데요."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까 나를 뒤로 빠지라던 남자도 여전히 바닥에 앉은 채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 얼굴에서 조금 전의 그 오만함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한참의 정적 끝에, 감독관 중 한 명이 무전기를 다시 붙잡았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본부, 여기 F등급 게이트 현장인데, 즉시 상위 등급 평가관 파견 요청합니다. 신규 응시자 중에 특이 개체가 확인됐습니다." 특이 개체라는 말이 왜 나를 지칭하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 말투와 분위기로 봐서는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어쩐지 십오 년 전 첫 발령을 받았던 그날 아침보다 지금이 훨씬 더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때는 그냥 긴장이었는데, 지금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감각이었다. 뭐라고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몸속 어딘가가 계속 웅웅거리는 느낌이랄까. 주변 응시자들이 하나둘 나를 향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 방금 뭐 한 거야…" "각성자야? 근데 왜 지금 나타난 거지?" "저 나이에 각성이라고?" 나이 얘기가 나올 때마다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굳이 반박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리고 저 멀리, 게이트 관리 초소 쪽에서 검은 세단 두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신호를 받고 바로 출발한 것처럼, 도착 시간이 너무 빨랐다. 차량에 새겨진 문양은 헌터청 소속이 아니었다. 나는 그 문양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옆에 서 있던 감독관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리는 걸 보고, 저게 뭔가 심상치 않은 곳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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