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지문이 등록된 적 없는 사람이라는 게 밝혀진 순간부터, 나는 국가정보 시스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형사는 나를 정신병원 응급 이송 대상으로 분류하려 했고,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강력하게 반발했다.
"저 정신병자 아니에요, 잠깐만요."
"본인 스스로 여자 교사라고 주장하는데 몸은 성인 남성이고, 지문 기록도 없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상태로 보이십니까?"
형사의 말이 사실이라서 더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하-. 이 상황을 어떻게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 나조차도 거울을 볼 때마다 속으로 욕이 튀어나오는 판인데.
조사실 형광등은 유난히 밝았고, 그 아래에서 내 손등에 돋은 낯선 힘줄과 굵은 손가락 마디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속이 뒤틀렸다. 손톱 모양까지 다른 이 손으로 지금까지 아이들 생활기록부를 써왔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런데 그때, 조사실 문이 열리고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마흔 대 중반쯤 되어 보였고, 흰 가운은 입지 않았지만 병원 신분증을 목에 걸고 있는, 다소 무뚝뚝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걸음걸이에 서두름이 없었고, 조사실 안의 냉랭한 분위기에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걸 보니, 이런 자리에 처음 온 사람은 아니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윤재호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입니다."
형사에게 명함을 건넨 그는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별다른 감정 없이 물었다.
"본인이 원래는 여성이었다고 주장하시죠?"
"…네."
"그럼 최근에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이 있었습니까? 반복적으로, 장기간."
뭔가 이 사람은 지금 상황을 처음 보는 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편의점 알바생이 손님한테 "포인트 적립하시겠어요?" 물어보는 것 같은, 지겨울 정도로 익숙한 말투였다.
나는 잠깐 그를 빤히 쳐다봤다.
말투는 딱딱했지만 그 안에 이상하게 확신이 배어 있었다. 마치 답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확인 절차만 밟는 사람처럼.
"학생들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가 좀 심했어요. 그런데 그게 왜요?"
"영혼 분화 증상입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데, 그 짧은 한마디에 형사도 나도 동시에 굳어버렸다.
조사실 안의 시계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째깍, 째깍.
"그게 뭔데요?"
"극도의 정신적 압박이 장기간 누적되면, 아주 낮은 확률로 자아가 물리적으로 분리되는 사례가 보고됩니다. 원래의 신체 대신 새로운 신체가 형성되고, 그 신체는 원래 인격이 억눌러왔던 성향을 극단적으로 반영합니다."
윤재호는 마치 감기 증상을 설명하듯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목소리에 억양 하나 없이, 종이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읊는 사람 같았다.
"보통 분화된 신체는 감정 기복이 현저히 낮고 위험 상황에 대한 대담성이 비정상적으로 높습니다. 이 현상은 헌터청 산하 특수의료본부에서 별도로 관리하는 사안이라, 여기서 이야기가 커지면 저희 쪽으로 이관될 겁니다."
헌터청이라는 말이 나오자 형사의 표정이 눈에 띄게 풀렸다. 마치 골치 아픈 짐을 남한테 넘길 수 있게 된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럼 이 사람 신병은 그쪽으로 넘기면 되는 겁니까?"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형사는 안도한 얼굴로 서류를 정리했고, 나는 순식간에 조사실 밖으로 인도되어 윤재호를 따라 걷게 되었다.
복도는 길었다. 형광등이 몇 개씩 깜박였고, 지나가는 경찰들이 나를 흘긋거렸다. 그 시선들 속에서 나는 강수아도 아니고 강도현도 아닌, 그냥 정체불명의 몸뚱이 하나가 되어 걷고 있었다.
"저기요, 헌터청이 뭔데요?"
"몬스터와 던전을 관리하는 국가기관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한 이차원 게이트 관련 업무를 총괄하죠."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설명하는 그 말투에, 나는 순간 이 세상이 내가 알던 세상과 얼마나 달라져 있었는지를 실감했다.
십오 년 동안 교실 안에만 갇혀 있느라 세상 돌아가는 걸 제대로 몰랐던 걸까.
아니, 그런 건 이미 뉴스에서 몇 번 들어봤던 것 같은데, 그게 내 삶과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늘 넘겨왔을 뿐이었다. 아이들 상담일지 쓰고, 학부모 민원 전화 받고, 급식비 미납 학생 조용히 챙기는 게 내 세상의 전부였으니까. 게이트니 몬스터니 하는 건 텔레비전 뉴스 자막으로나 스쳐 지나가는 남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금 그 남의 이야기가 내 몸뚱이를 통째로 삼켜버린 셈이었다.
특수의료본부 상담실에 도착해서, 윤재호는 나를 앉혀놓고 서류 몇 장을 펼쳤다. 상담실은 병원치고 지나치게 삭막했다. 창문도 없었고, 벽에는 무슨 안내문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그냥 책상 하나, 의자 두 개, 그리고 서류철 몇 개가 전부였다.
"영혼 분화 사례는 국내에 등록된 게 열두 건입니다. 그중 원래 신체가 완전히 대체된 사례는 세 건이고요."
"그러면 저는요?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예요?"
목소리가 떨렸다. 나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윤재호는 잠시 침묵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세 건 모두 원래 신체로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새로운 신체에서도 원래 인격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게 공통점이었죠."
"그게 무슨 뜻인데요?"
"당신은 여전히 강수아입니다. 다만 이 몸이 그 강수아를 담는 새로운 그릇이 된 거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울어야 할 것 같은 상황인데도, 뭔가 안쪽에서 이 사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조용히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 차분했다. 마치 내가 아니라 이 몸이 먼저 받아들이고, 나는 그 뒤를 억지로 따라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릇이라니. 무슨 도자기 그릇도 아니고. 근데 딱히 반박할 말도 없었다. 이 몸은 확실히 낯설었고, 이 몸의 감정은 이상할 만큼 잔잔했으니까.
"그럼 이제 저는 뭘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신분을 정리해야 합니다."
윤재호가 서류 한 장을 내 앞으로 밀었다.
"강수아라는 이름으로는 이 신체를 등록할 수 없습니다. 법적으로도, 행정적으로도. 대신 저희 쪽에서 새로운 신원을 발급해드립니다. 새 이름, 새 주민등록번호, 새로운 인생이요."
새로운 인생이라는 말을, 이렇게 서류 한 장 밀어주면서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나는 잠깐 이 남자가 사람 대여섯 명 정도는 이런 식으로 갈아치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서류에 적혀 있는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강도현.
"…이게 제 이름이 되는 거예요?"
"본인이 정한 게 아니라 실무진이 임의로 배정한 이름이지만, 이의 있으면 바꿔드립니다."
왜인지 그 순간 나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냥 그 이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강수아로서의 십오 년이 서류 한 장으로 지워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강수아. 그 이름으로 불렸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첫 발령받은 날 교무실 문 앞에서 떨리던 손, 학부모 상담 때마다 억지로 지어야 했던 웃음, 밤늦게 혼자 앉아 채점하던 시간들. 그 모든 게 저 서류 하나에 밀려나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근데 이상하게 슬프지가 않았다. 그게 더 이상했다.
"그리고 하나 더 알려드릴 게 있습니다."
윤재호가 서류를 정리하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영혼 분화로 태어난 신체는 예외 없이 신체 능력이 일반인의 기준을 크게 벗어납니다. 저희 쪽에서 측정한 데이터로는, 세 건 모두 각성자 등급 최상위권에 해당했습니다."
"…네?"
각성자라는 말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게 정확히 뭘 뜻하는 건지도 모르는 채로, 나는 순간 이 남자가 내 인생에 관한 결정을 자기 손안에서 다 쥐고 있는 것 같다는 불쾌함을 느꼈다.
"각성자가 뭔데요? 그거."
"게이트에서 발생하는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특수 능력을 지닌 사람을 말합니다. 등급은 최하위 F부터 최상위 S까지 총 열 단계로 나뉘고, 등급이 높을수록 헌터청의 관리와 통제도 강해집니다."
"저는요? 저도 그런 등급이 있는 거예요?"
"측정해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지금까지의 사례로 보면 상위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말을 하는 윤재호의 얼굴에는 어떤 흥미도, 걱정도 없었다. 그냥 통계 자료를 읽어주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근데 나는 그 무표정함이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이 사람한테는 나 같은 사례가 그냥 열두 건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게, 그 태연함 안에 다 드러나 있었으니까.
"본인은 원치 않으셔도, 조만간 탐험자 자격 시험 응시 통지가 나갈 겁니다."
"저 그런 거 하고 싶지 않은데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각성 등급이 특정 기준 이상인 경우, 국가 차원에서 관리 대상으로 분류되고 시험 응시가 의무화됩니다. 거부하실 경우 별도의 제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재라는 단어에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강수아로 살아온 십오 년 동안 한 번도 국가한테 관리당한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마치 내 몸 하나가 국가 자산 목록에 등록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순간 병원 형광등 불빛 아래서, 강수아로 살아온 인생과 완전히 다른 방향의 길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걸 느꼈다.
윤재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서류철을 챙겼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고, 며칠 뒤에 시험 관련 통지서가 댁으로 발송될 겁니다."
"저 집이 없는데요. 아니, 있긴 한데 이 몸으로 그 집에 들어갈 수 있나요?"
윤재호는 그 질문에 처음으로 잠깐 멈칫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봤다.
"그건…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죠."
그 말을 남기고 그는 상담실 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혼자 남은 상담실에서, 서류에 적힌 강도현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내려다봤다. 이 낯선 이름과 낯선 몸으로, 앞으로 뭘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무 감도 잡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