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낫끝이 목젖 앞에서 멈춰 있었다.
시간이 늘어진 것처럼 모든 게 느렸다.
강도현의 눈앞에 뜬 문자가 계속 늘어났다.
【 위기 상황이 감지되었습니다. 】
【 무료 체험판 '전술 시스템'을 즉시 활성화합니다. 】
【 남은 시간: 0.4초 】
"이 미친-"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몸이 움직였다.
생각보다 먼저 왼발이 뒤로 빠졌다.
부러진 갈퀴 자루가 손안에서 뒤집혔다.
뾰족한 쪽이 위를 향했다.
서걱.
낫을 쥔 팔목이 갈퀴 자루에 걸려 옆으로 튕겼다.
형체의 균형이 무너졌다.
그 틈에 강도현의 다리가 형체의 무릎 뒤를 걷어찼다.
퍽.
형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강도현은 부러진 갈퀴 끝으로 뒤통수를 내리찍었다.
우드득.
검은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썩은 물웅덩이 냄새와 비슷했다.
형체가 그대로 흩어져 재가 되었다.
【 첫 처치 완료. 】
【 스탯 포인트 3 지급. 】
【 스킬 슬롯이 개방되었습니다. 】
강도현은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살이 앉아 있었다.
오십이 년 몸이었다.
관절이 아파야 했다.
아침마다 일어날 때 무릎에서 나던 그 소리가 나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뭐야.'
허리를 숙였다가 폈다.
삐걱거림이 없었다.
숨도 가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남은 형체들이 다시 몰려왔다.
하나, 둘, 셋.
낫을 든 형체들이 정원 담을 넘어 들어왔다.
발소리가 없었다.
그냥 스르륵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강도현은 몸을 낮췄다.
무릎이 예전처럼 삐걱대지 않았다.
허리를 트는 각도가 몸에 새겨진 그대로 정확히 나왔다.
삼십 년 넘게 몸으로 익힌 자세였다.
다만 반응 속도가, 판단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시야의 배속을 늦춰놓은 것 같았다.
첫 번째 낫이 어깨를 노렸다.
강도현은 몸을 반쯤 틀어 흘렸다.
낫날이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천 조각이 뜯겨 나갔다.
두 번째 형체의 팔을 부러진 자루로 후려쳤다.
뻐걱.
뼈 부러지는 소리였다.
형체가 팔을 늘어뜨린 채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통증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그 텅 빈 두 눈이 그대로 강도현을 향해 있었다.
세 번째가 등 뒤에서 덤벼들었다.
【 위험 감지. 스킬 '예감'이 발동됩니다. 】
등 뒤가 서늘해졌다.
목덜미 잔털이 곤두섰다.
강도현은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며 발을 걸었다.
형체가 앞으로 넘어지며 담벼락에 머리를 박았다.
콰직.
담벼락 벽돌 조각이 부서져 흩어졌다.
형체는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잠시 뒤 검은 재로 흩어졌다.
강도현은 부러진 갈퀴 자루를 고쳐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그런데 손끝은 떨리지 않았다.
숫자를 세는 버릇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넷, 다섯, 여섯.
낫을 든 형체가 계속 담을 넘어왔다.
정원 크기는 그대로인데 적은 계속 늘어나는 것 같았다.
일곱 번째 형체가 왼쪽에서 낫을 휘둘렀다.
강도현은 자루를 세워 막았다.
깡.
손목이 저릴 정도로 충격이 왔다.
낫과 자루가 부딪히며 불꽃 비슷한 파편이 튀었다.
그 틈에 여덟 번째가 오른쪽에서 다리를 노렸다.
강도현은 뒤로 한 발 빠지며 자루 끝으로 정강이를 후려쳤다.
퍽.
형체가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그대로 다시 일어서려 했다.
강도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목덜미를 내리찍었다.
서걱.
목이 반쯤 갈라지며 검은 액체가 뿜어졌다.
형체는 그대로 재가 되어 흩어졌다.
숨이 가빠졌다.
하지만 다리는 여전히 서 있었다.
근육이 당장이라도 경련을 일으킬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몸이 왜 이래.'
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아홉 번째, 열 번째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강도현은 몸을 회전시키며 자루를 크게 휘둘렀다.
우드득.
한쪽 형체의 옆구리가 갈라졌다.
다른 쪽은 팔로 자루를 막았다가 그대로 부러졌다.
뻐걱.
두 형체가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강도현은 지체 없이 자루 끝을 내리찍었다.
퍽. 퍽.
둘 다 재가 되어 흩어졌다.
정원은 이제 검은 재와 붉은 균열로 가득했다.
바닥에 눌어붙은 재가 신발 밑창에 들러붙었다.
강도현은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봤다.
정원 곳곳에 남은 균열이 옅은 빛을 뿜고 있었다.
그 빛이 마치 상처처럼 벌어져 있었다.
【 웨이브 클리어. 】
【 하위 개체 처치 12. 】
【 남은 시간 동안 상위 개체가 접근 중입니다. 】
"상위?"
그가 되묻는 순간 정원 한가운데 균열이 갈라지며 더 큰 균열이 열렸다.
쩌적, 쩌적.
지면이 갈라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검은 균열 속에서 뭔가 걸어 나왔다.
키가 삼 미터가 넘었다.
뼈로 이루어진 왕관을 쓰고 있었다.
왕관 틈새로 검은 안개가 새어 나왔다.
텅 빈 눈구멍에서 초록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이 정원 전체를 물들일 것처럼 넓게 퍼졌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지면이 얼어붙었다.
서걱, 서걱.
발밑 흙이 갈라지는 소리가 정원을 울렸다.
서리가 낀 것처럼 흙 표면이 하얗게 뒤덮였다.
【 던전 최심층 봉인 개체 '사령왕'이 강림했습니다. 】
강도현의 손끝이 떨렸다.
갈퀴 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바닥 안쪽이 뻐근했다.
'이건 상대가 아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다리가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삼십 년 넘게 훈련된 몸은 도망을 몰랐다.
발바닥이 땅에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공기가 차가웠다.
사령왕이 걸어오는 방향에서 냉기가 밀려왔다.
갑자기 겨울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았다.
사령왕이 고개를 들었다.
초록빛 눈구멍이 강도현을 정확히 겨냥했다.
그 시선이 몸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갈비뼈 안쪽이 눌리는 느낌이었다.
"...씨발."
낮은 웃음소리가 정원을 채웠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땅속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았다.
뼈로 된 손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손가락 마디마다 붙은 서리가 부스러져 흩날렸다.
강도현은 갈퀴 자루를 고쳐 쥐었다.
남은 힘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근육이 아직 떨리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더 불안했다.
사령왕의 손이 완전히 펴졌다.
손톱 끝에서 초록빛이 번뜩였다.
그 손이 강도현을 향해 그대로 뻗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