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여섯 살에 내려놓은 이름

1화

눈을 떴을 때, 천장은 낡은 나무 서까래였다. 갈라진 틈새로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냄새부터 낯설었다. 젖은 흙과 마른 풀, 그리고 오래된 목재가 뒤섞인 냄새였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여기는 어디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팔이 너무 짧았고, 손가락은 가늘었다. 힘을 주는 방식조차 낯설었다. 마치 남의 몸을 빌려 입은 옷처럼 헐렁하고 어색했다. 그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작은 손이었다. 아이의 손이었다. 손톱 밑에 낀 흙까지도 낯설게 느껴졌다. 기억은 선명했다. 열여덟 해를 살았고, 병으로 죽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병실 천장의 얼룩을 세고 있었던 기억이 또렷했다. 숫자를 세는 것만이 그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그다음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몸은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의 것이었다. '죽었는데, 살아 있다.'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면, 살아야 했다. 그것이 전생에서 배운 유일한 법칙이었다. 주변엔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열 명 남짓 누워 있었다. 낡은 담요는 여러 번 기운 자국이 있었고, 벽은 갈라져서 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회색 지붕들이 즉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보육원이었다. 아이들 몇몇이 뒤척이며 잠꼬대를 했다. 누군가는 배고프다고 중얼거렸고, 누군가는 이름 모를 사람을 부르며 흐느꼈다. 그 소리들이 이 공간의 성격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거울 조각으로 얼굴을 비춰본 건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낡은 세숫대 옆에 버려진 조각이었는데, 금이 가 있었지만 형체는 알아볼 수 있었다. 백발이었다. 눈처럼 흰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늘어져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드문 색이라는 걸, 그는 다른 아이들의 수군거림을 통해 알았다. "저 애 머리 좀 봐." 한 아이가 소곤거렸다. "재수 없대. 마녀 머리라잖아." 다른 아이가 맞받았다. "만지면 옮는다고 하던데." 세 번째 아이가 덧붙였다. 근거 없는 말이었지만, 아이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는 눈치였다. 아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름은 원장이 붙여준 것이었다. 아린. 그 이름을 받아들이는 데도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어차피 전생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 보육원의 하루는 단조로웠다. 새벽에 청소를 하고, 낮에는 원장이 나눠주는 딱딱한 빵을 씹었다. 빵은 언제나 겉면이 갈라져 있었고, 씹으면 모래알 같은 것이 씹혔다. 밤에는 다른 아이들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아린은 그 사이 마력이라는 것의 존재를 알았다. 원장이 문 앞에 걸어둔 등불이 스스로 빛을 내는 걸 보고서였다. 불꽃이 없는데도 등불 안쪽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심지가 없었다. '마법이 실존하는 세계.' 그는 그 사실을 침착하게 받아들였다. 전생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부정할 이유는 없었다. 물리 법칙이 다른 세계라면, 그 법칙을 배우는 것이 먼저였다. 밤마다 몰래 손끝에 힘을 모으는 연습을 했다. 다른 아이들이 깊이 잠든 걸 확인한 뒤였다. 처음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손끝이 뜨거워지는 느낌뿐이었다. '집중이 부족한가.' 그는 방법을 바꿔보았다. 숨을 고르고, 아랫배에서부터 무언가를 끌어올리는 상상을 했다. 병실에서 죽어가던 순간에도 그는 끝까지 침착했던 사람이었다. 그 침착함이 이 낯선 시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열흘째 되는 밤, 손끝에서 작은 빛이 일었다. 반짝- 그 빛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지만, 아린은 알았다. 자신에게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확신은 결과의 크기가 아니라 발생의 여부에서 온다는 걸,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다음 날 밤에도, 그다음 날 밤에도 같은 시도를 반복했다. 빛은 조금씩 오래 머물렀다. 원장은 종종 아이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팔릴 걱정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 그 목소리엔 다정함이 전혀 없었다. 아이들을 상품처럼 취급하는 말투였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아린은 금방 이해했다. 이곳은 아이를 보호하는 곳이 아니라, 값나가는 아이를 골라내는 곳이었다. 원장이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조차, 상품의 상태를 확인하는 손길에 가까웠다. 아린은 그 모든 걸 지켜보면서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판단은 조용히 하는 게 낫다.' 전생에서 얻은 또 다른 습관이었다. +++ 마차 소리가 들린 건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바퀴가 자갈길을 밟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원장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들떠 있었다. "강 가문에서 오셨습니다! 다들 인사드려!" 아이들이 우르르 마당으로 몰려나갔다. 서로 밀치며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린도 뒤따라 나갔다. 급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는 가장 뒤에 섰다. 마차에서 내린 건 젊은 남자와 여자였다. 남자는 30대 중반쯤 되어 보였고, 체격이 단단했다. 몸에 밴 절제된 움직임이, 그가 육체노동을 오래 해온 사람임을 알려주었다. 걸음걸이 하나에도 낭비가 없었다. 여자는 그보다 조금 어렸고, 눈매가 차분했다. 아이들을 둘러보는 시선에 서두름이 없었다. "강태준 님이십니다. 청명 왕국에서 이름 높은 던전 탐험가시지요." 원장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목소리가 한 톤 더 높아져 있었다. "부인이신 윤서연 님도 함께 오셨습니다."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던전 탐험가라는 단어는 이 세계에서 부와 명예의 대명사였다. 아이들 중 몇몇은 벌써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강태준의 시선이 아이들을 훑었다. 무언가를 재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다 아린에게서 멈췄다. "저 아이는." 그가 낮게 물었다. "아, 아린이라는 아이입니다. 머리색이 좀 특이하지요." 원장이 서둘러 대답했다. 목소리에 약간의 조심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흠이 될까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백발은... 이 지역에선 흔치 않은 색이라, 다들 조금 꺼려서요." 원장이 덧붙였다. 마치 미리 변명을 하려는 태도였다. 윤서연이 다가와 아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시선의 높이를 맞추는 행동이었다. 다른 아이들에겐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을, 아린은 놓치지 않았다. "이름이 아린이니." 그녀가 물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네." 아린은 짧게 답했다. 윤서연의 눈이 잠시 아린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눈빛이었다. 그러곤 옆에 선 남편을 돌아보았다. "이 아이가 좋겠어요." 강태준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동의였지만, 그 안에 반박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선택받았다.' 아린은 그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기쁘다는 감정보다는, 다른 계산이 먼저 움직였다. 이 가문에 들어가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지에 대한 계산이었다. 전생에서 배운 습관이었다. 병실에 누워 있던 열여덟 해 동안, 그는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먼저 상상하는 사람이었다. '던전 탐험가라면, 위험한 직업이다. 하지만 그만큼의 대가도 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정리했다. 감정보다 정보가 먼저였다. 원장이 서류를 내밀며 웃었다. "경사입니다, 경사예요. 이런 아이한테 이런 기회가 오다니." 그 말투엔 진심 어린 축하보다는, 성가신 짐을 던 홀가분함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서류를 내미는 손이 평소보다 빨랐다. 아린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짐이었구나.' 그는 그렇게 정리하며 마차에 올랐다.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등 뒤로 따라붙었다. 몇몇은 부러움을, 몇몇은 안도를 담은 눈빛이었다. 마차가 출발하자, 창밖으로 보육원의 담벼락이 점점 멀어졌다. 낡은 지붕도, 갈라진 벽도, 자신을 마녀라 부르던 아이들의 목소리도 함께 멀어져 갔다. 아린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마차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반복되었고, 그 소리를 들으며 아린은 두 손을 무릎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 손끝에서 다시 그 작은 빛이 일어날 수 있을지, 그것이 지금 그가 가진 유일한 궁금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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