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윤하늘." 이름이 저절로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정작 그녀는 나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당연했다. 그녀에게는 지금이 나와 처음 마주하는 순간이었을 테니까. '10년 전에는 내가 대학 붙으면 술 사주겠다더니.' 나는 속으로 실없는 생각을 흘리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던가. 아니, 갈라지지 않았을 거다. 십 년을 죽었다 살아난 놈이 이 정도 재회로 흔들릴 리 없지 않은가.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었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저려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하늘은 도끼를 벽에 걸어둔 채 팔짱을 끼고서 나를 훑어보았다. 유튜브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다부진 체격이었다. 화면 속에서는 늘 카메라 각도 덕에 아담해 보였는데, 실물로 보니 어깨선이 딱 벌어져 있었고 팔뚝에는 도끼를 오래 다룬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굳은살 같은 흔적이 보였다. 저 몸으로 방송에서는 늘 애교 섞인 표정만 짓던가. 방송용 얼굴과 실제 얼굴이 저렇게 다를 수 있나 싶어 잠깐 딴생각으로 샜다.
"협회에서 특이 케이스라고 해서 왔어요. 저도 얼떨결에 불려 왔고요." 그녀의 말투는 방송에서 보던 것처럼 가볍고 발랄했는데, 그 톤 속에 은근한 관찰의 날이 섞여 있었다. 시선이 내 얼굴에서 시작해 어깨, 손, 발끝까지 훑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마치 물건 감정하듯이. "근데 방금 심사 데이터 봤는데, 이거 조작 아니에요? 신입인데 마력 출력이 기존 S급 평균치를 넘던데요."
나는 그 말에 잠시 대답을 고르다가, 짐짓 어깨를 으쓱하며 여유롭게 웃었다. "운이 좋았나 보죠." 사실 운이 아니라 십 년 치 경험이 몸에 새겨져 있어서 그런 거지만, 그걸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 그냥 웃어넘기는 수밖에. 하늘은 그 대답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눈매가 매서웠다. 방송에서는 늘 웃는 표정만 보여줬으니 이런 눈빛은 처음 보는 셈이었는데, 이게 원래 얼굴이었구나 싶었다. 이내 포기한 표정으로 소파에 걸터앉으며 말을 돌렸다. "협회 시스템 설명이나 해드릴게요. 어차피 저 여기 파견 나온 이유가 그거니까." 그녀는 태블릿을 꺼내 화면을 넘기며 설명을 시작했다.
화면에는 던전 등급표가 색깔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E급은 회색, D급은 초록, C급은 파랑, B급은 보라, A급은 주황, S급은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그 색채 배열이 묘하게 위험도의 시각화라는 느낌을 줬다. "던전 등급은 E부터 S까지 있고, 등급이 높을수록 보상도 커요. 협회는 발생한 게이트를 봉인하는 대신, 등록된 헌터 팀에 공략권을 경매로 판매해요. 방송 중계권까지 포함해서."
나는 그 말을 곱씹다가 미간을 좁혔다. "경매로 판매한다고요? 위험도가 아니라 시청률로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뜻입니까?" 질문을 던지면서도 속으로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어느 세계든 시스템이 무너지는 이유는 결국 하나로 귀결되니까. 사람들이 위기를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수익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하늘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무심하게 답했다. "뭐, 협회 입장에서는 사업이니까요. 위험한 게이트일수록 광고 단가가 높거든요. 시청자들이 그런 걸 좋아하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태블릿 화면 속 붉은 등급 항목을 손끝으로 살짝 문지르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그 손짓에서 미묘한 불편함이 읽혔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아스텔라가 무너지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거였다. 균열의 위험을 관리가 아니라 이용의 대상으로 삼았던 오만함. 그때도 귀족들은 균열 등급을 놓고 도박판을 벌였고, 그 도박판 위에서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던가. '여기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군.' 나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다시 물었다. "그럼 위험도 측정은 정확합니까? 등급 오판으로 사고 난 적은 없어요?"
하늘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방금까지의 가벼운 톤이 걷히고, 잠깐이지만 얼굴에 그늘이 스쳤다. 그녀는 곧 태블릿을 덮으며 낮게 답했다. "작년에 부산에서 C급으로 판정된 게이트가 실제로는 A급 이상이었던 사고가 있었어요. 팀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죠."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방금까지의 발랄함이 완전히 걷혀 있었다. 나는 그 침묵의 무게를 느끼며 더 묻지 않기로 했다. 이 여자도 나름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모양이었다.
"그 팀에 아는 사람 있었습니까?" 묻고 나서야 이게 예의에 맞지 않는 질문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온 뒤였다. 하늘은 잠시 나를 빤히 보다가 픽 웃었다. 웃음에 힘이 없었다. "왜요, 위로해주려고요? 처음 본 사람한테?" "그냥 궁금해서요." "…선배 하나 있었어요. 됐죠?" 더 이상 캐묻지 말라는 신호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접었다.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협회 직원이 면담실로 들어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직원의 걸음걸이는 각이 잡혀 있었고, 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강도현 씨의 등급은 임시 A로 책정되었습니다. 다만 데이터 이상치가 많아 추가 현장 검증이 필요합니다." 직원은 이어서 하늘을 향해 말했다. "윤하늘 헌터께서 동행 검증을 맡아 주시기로 협회와 합의되었습니다."
하늘은 그 말에 눈썹을 찡그리며 반문했다. "제가요? 저 다음 주에 촬영 스케줄 있는데."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었지만, 직원은 그 감정의 파동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사람처럼 다음 문장을 이어갔다. "협회 상부의 결정입니다." "그러니까 왜 저냐고요. 다른 A급 헌터들도 있잖아요." "윤하늘 헌터의 스케줄이 이번 주 내로 가장 여유롭다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그건 제 매니저가 협회에 잘못 보고한 거고요." "협회 기록상으로는 여유롭습니다."
나는 그 사무적인 말투를 들으며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이 사람들은 어디서나 저런 말투를 배우나 보군.' 감정을 완전히 거세한 문장을 저렇게 태연하게 반복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하늘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포기한 표정으로 서류에 서명을 했다. 서명하는 손끝이 살짝 신경질적으로 움직였다.
결국 우리는 함께 강남 게이트 현장 검증을 위해 이동하게 되었다. 협회 차량은 검은색 세단이었는데, 창문에 필름이 두껍게 씌워져 있어 밖에서는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방송용 헌터라 사생활 보호도 이렇게 하는 건가.' 뒷좌석에 나란히 앉으니 하늘의 체취가 은근하게 느껴졌다. 화약 냄새 같은 것과 옅은 향수 냄새가 섞여 있었는데, 도끼를 다루는 헌터한테서 그런 향이 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차량에 올라 창밖을 바라보며 하늘은 투덜거렸다. "아니 진짜, 이럴 거면 촬영 스케줄 왜 잡아놓은 거야. 협회는 항상 이런 식이라니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문득 내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근데 강도현 씨는 원래 뭐 하던 사람이에요? 이력서 보니까 백수던데." "그냥 백수였습니다." "백수가 어떻게 마력 출력이 S급 평균을 넘어요." "타고난 재능이 아니겠습니까." 뻔뻔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하늘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투덜거림 속에서도 나는 그녀가 게이트 사고를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창밖을 보는 눈빛이 아까 부산 사고를 이야기할 때와 똑같았다. '10년 전에도 이런 성격이었던가.' 옆자리에 앉은 그녀를 곁눈질하며 생각하는데, 갑자기 차량 계기판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삐- 삐- 삐-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웠고, 운전석의 협회 직원이 다급하게 무전을 켰다.
"강남 게이트, 등급 오판정 확인. 현재 위험도 급상승 중." 직원의 목소리는 평소의 사무적인 톤을 유지하려 애쓰는 듯했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창 밖으로 지평선을 가르는 균열의 빛이 번쩍였다. 눈부신 자색 빛이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갈랐고, 그 빛의 크기만으로도 이게 예삿일이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하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방금까지의 투덜거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잘 훈련된 헌터의 얼굴이 들어차 있었다. "이거 뭐야, 등급이 또 잘못됐다는 거야?" 그녀가 벽에 걸어두었던 도끼를 이미 손에 쥐고 있었는데, 그게 언제 움직였는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속도에 내심 놀라며 애써 태연한 척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균열의 빛, 낯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익숙한 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