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A-1조.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소문으로만 알던 조합이었다. 학교 게시판에 배정표가 붙던 날, 다들 그 조 이름을 보고 한 번씩 술렁였다. 나는 그 술렁임의 이유를 몰랐다. 직접 마주하니 소문보다 더 화려했다. 소문이라는 게 보통은 과장되기 마련인데, 이번엔 반대였다.
차은호. 스킬은 용사. 파티의 리더였다. 키가 크고, 웃는 인상이 좋았고, 학교 안에서 걸어 다니면 늘 시선이 따라붙었다. 성적도 좋고, 스킬도 좋고, 성격까지 좋다는 게 소문의 요지였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소문이 오히려 축소돼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애들마다 인사를 건넸고, 은호는 그 인사를 하나도 빠짐없이 받아줬다. 이름을 다 기억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래도 웃어줬다. 그게 가식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할 자료가 부족했다.
윤서아. 성녀. 은호와 같은 파티에 배정되어 늘 붙어 다녔다. 청초한 인상, 조용한 목소리, 누가 봐도 완벽한 여주인공감. 다만 그 인상 뒤에 뭐가 있는지는, 이때까지 아무도 정확히 몰랐다. 서아는 훈련장에 들어올 때부터 나를 한 번 쳐다봤다. 그 시선이 길지는 않았다. 짧고, 정확했고, 뭔가를 재는 듯한 눈빛이었다.
박강수. 중기사. 덩치가 크고 말수가 적었다. 파티의 탱커였고, 몸으로 앞을 막는 역할에 충실했다. 팔뚝이 내 허벅지만 했다. 방패를 등에 짊어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이 확실했다.
정민재. 닌자. 늘 조용히 구석에 있었고, 허리에 군도 하나를 차고 있었다. 학교 규정상 무기 소지가 허가된 사람은 몇 없었는데, 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민재였다. 훈련장 조명이 어두워서인지, 민재가 서 있는 자리는 유독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한이든. 현자. 이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목소리도 낮고, 표정도 잘 안 드러나고,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파악이 안 됐다. 이든은 훈련장에 들어와서 자리에 앉더니 책을 펼쳤다. 실습 시작 전까지 그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섯 명, 그리고 나. 여섯 명이 학교 지하 훈련장에 모였을 때, 다들 나를 한 번씩 훑어봤다.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은 대체로 하나였다. 왜 여기 있냐는 것.
"연금술사라고?"
강수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션 서포터로 왔습니다."
"...그렇구나."
그게 대화의 끝이었다. 실망도, 반감도 아닌, 그냥 무관심. 어쩌면 그게 가장 서러운 반응이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깨달았다. 반감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거다. 반감엔 대답할 말이 있으니까. 무관심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민재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든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서아는 그 짧은 눈빛 한 번으로 판단을 끝낸 것 같았다.
은호만 유일하게 나에게 웃으며 다가왔다.
"잘 왔어. 앞으로 잘 부탁해."
그 인사가 진심인지, 그냥 리더로서 하는 형식적인 말인지 구분이 안 됐다. 다만 그 웃음이 가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포션 얼마나 만들 수 있어?"
"필요한 만큼요."
은호가 웃었다.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뒤에서 강수가 작게 코웃음을 쳤다. 필요한 만큼이라는 말이 허풍처럼 들렸겠지. 그때는 나도 그게 허풍인지 아닌지 확신이 없었다.
─────
30층 던전은 서울 지하 깊은 곳에 있었다. 지하철로도 안 가는 층, 별도의 게이트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구역. 게이트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좁은 승강기 안에 여섯 명이 껴서 서 있는데, 다들 각자의 생각에 빠진 표정이었다. 나는 가방 속 포션 병 개수를 속으로 세고 있었다.
실습은 1층부터 시작했다. 초심자용 층이라고 해도, 나오는 몬스터가 사람 하나쯤 순삭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학교에서 굳이 지하 30층까지 내려와 실습을 시키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 못 버티면, 나중에 진짜 던전 필드에 나가서도 못 버틴다는 논리였다.
1층은 무난했다. 슬라임 몇 마리, 고블린 몇 마리. 은호가 검을 한 번 휘두르면 그걸로 끝이었다. 서아는 굳이 힐을 쓸 필요도 없었고, 강수는 몸풀기도 안 됐다는 표정이었다. 이든은 마법 한 번 쓰지도 않고 뒷짐을 진 채 걸었다. 민재는 아예 무기를 뽑지도 않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조용히 포션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층이었다. 슬라임 잡는 데 해독제가 필요할 리 없었고, 고블린 상대로 회복 포션을 쓸 일도 없었다. 나는 그냥 뒤에서 따라 걸으며, 이 파티에 낀 목적이 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답은 안 나왔다.
2층도 비슷했다. 몬스터 등급이 조금 올라갔지만, 이 다섯 명한테는 여전히 시시한 수준이었다. 강수가 처음으로 방패를 제대로 써봤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마저도 심드렁했다.
"이 정도면 실습 안 해도 되는 거 아니야?"
강수가 중얼거렸다. 은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규정이니까 어쩔 수 없지."
문제는 3층에서 벌어졌다.
갑자기 벽이 흔들렸다. 진동이 발밑까지 전해졌다. 던전 실습 기록에는 없던 몬스터였다. 크기가 사람 셋을 합친 것보다 컸고, 등급도 초심자용 몬스터와는 확실히 달랐다. 학교 시스템 오류였는지, 던전 자체의 변수였는지는 나중에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벽을 뚫고 튀어나온 그 몬스터는, 피부가 검은 비늘로 덮여 있었고, 팔이 네 개였다.
"이거, 뭔가 이상해."
민재가 먼저 알아챘다. 그때는 이미 몬스터가 강수를 향해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강수는 방패로 막았지만, 충격으로 뒤로 몇 미터를 밀려났다. 등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훈련장, 아니 던전 안에 울렸다. 은호가 바로 앞으로 나서 검을 휘둘렀지만, 몬스터의 가죽은 예상보다 단단했다. 검이 튕겨나가는 소리가 났다. 서아가 힐을 걸었고, 이든이 뭔가 마법을 준비했다. 다들 각자 할 일을 했다.
나는 그 순간에도 뒤에서 가방만 만지고 있었다.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몬스터 등급표에도 없는 놈이었으니까.
문제는 강수가 입은 상처였다.
중독 계열 상태이상. 서아의 힐로는 회복이 안 되는 종류였다. 강수의 팔이 검게 변해가는 걸 보면서, 다들 순간 멈췄다. 이런 상태이상까지는 학교 실습에서 다뤄본 적이 없었으니까.
"뭐야, 이거 왜 안 사라져?"
서아가 힐을 한 번 더 걸었다. 팔의 검은 기운은 오히려 더 짙어졌다. 서아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독이야."
이든이 짧게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지만, 그 안에 긴장이 섞여 있었다.
"해독제 있는 사람?"
은호가 다급하게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학교 지급 물품에 해독제는 없었다. 애초에 이 실습에서 그런 상태이상이 나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 순간, 나는 이미 가방에서 병 하나를 꺼내고 있었다.
"이거 마셔요."
강수가 반사적으로 물었다. "뭔데?"
"해독제. 지금 마셔야 돼요."
강수는 잠깐 나를 쳐다봤다. 그 눈빛엔 의심이 섞여 있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팔의 검은 기운이 어깨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병을 받아 그대로 들이켰다.
검게 물들던 팔이 서서히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이게 뭐야."
"제가 만든 겁니다."
강수의 표정이 처음으로 바뀌었다. 무관심에서 뭔가 다른 걸로.
몬스터는 여전히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은호가 다시 앞으로 나섰고, 이번엔 이든이 옆에서 마법을 날렸다. 빛이 몬스터의 눈을 정확히 때렸다. 몬스터가 잠깐 시야를 잃은 틈에, 은호의 검이 몬스터의 목을 갈랐다.
몬스터는 결국 은호와 이든의 협공으로 처리됐다. 쓰러진 몬스터가 바닥에서 검은 재로 흩어지는 걸 보면서, 다들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다.
위기가 지나가고, 다들 숨을 몰아쉬는 사이, 은호가 나를 돌아봤다.
"그거 어떻게 만든 거야?"
"학교에서 배운 거요. 조금 더 손을 본 거고요."
조금, 이라는 말은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니었다. 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해독제 제조법과 내가 만든 것 사이엔 상당한 격차가 있었으니까. 학교에서 가르치는 레시피대로 만들면 이런 급의 중독은 잡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고마워."
강수가 말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보고 하는 말이었다.
"별말씀을요."
민재가 나를 잠깐 쳐다봤다. 그 눈빛엔 뭔가 다른 게 담겨 있었지만, 그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아도 나를 다시 한 번 쳐다봤다. 이번엔 아까와는 다른 눈빛이었다. 뭘 재는 게 아니라, 뭔가를 새로 판단하는 눈빛.
이든만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다만 책을 다시 펼치기 전에, 나를 향해 딱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이든이 나에게 처음으로 보인 반응이었다.
실습은 그날 그렇게 끝났다. 학교 측에 몬스터 오류 보고가 올라갔고, 다음 날 담당 교수가 사과 공지를 냈다. 던전 실습 기록에 없던 등급의 몬스터가 나온 이유는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다더라,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알게 됐다. 이 파티에 낀 게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걸. 그리고 이 다섯 명 각각이, 겉보기와는 다른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것도. 다만 그 정체가 뭔지는, 아직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은호가 나를 따라와 옆에 섰다.
"내일도 같이 갈 거지?"
"조에 배정된 거니까, 저 마음대로 안 가고 싶다고 안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은호가 뭔가 더 말하려다 말고, 그냥 웃었다.
"오늘 고마웠어. 진짜로."
그 말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는 그걸로 됐다는 듯 먼저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이 조에 낀 게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확신. 그 확신의 근거는 아직 하나도 없었지만, 그날 밤 나는 그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 채 잠들었다.
다음 날, 훈련장 게시판에 새로운 공지가 붙었다. A-1조 실습 일정이 앞당겨졌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공지 밑에, 작은 글씨로 적힌 한 줄이 있었다.
'4층부터는 통제 불가 구역으로 전환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