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그 서포터, 던전 캐리 중

4화

포션 제조는 원래 정확한 계량이 생명이다. 그런데 그날 나는, 정확히 실수를 했다. 학교 실습이 끝나고 파티 전용 연습실이 배정됐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지하 3층, 창문도 없고 냄새도 이상한 방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에 다들 은근히 들떠 있었다. A-1조는 이제 매주 세 번씩, 방과 후에 따로 모여 던전 공략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 첫 모임 날, 나는 다들 보는 앞에서 새로운 포션을 시연하기로 했다. 사실 자원한 건 아니었다. 재현이 먼저 물었다. "도윤아, 너 요즘 뭐 만든다고 하지 않았어?" "아, 그게..." "보여줘 봐. 궁금하잖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파티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서포터가 뭔가를 보여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건, 그 자체로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이번엔 뭐야?" 은호가 물었다. 나는 조금 뻐기며 대답했다. "방어력 강화 포션이요. 30분 동안 방어력이 20퍼센트 올라가요." 민재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런 게 있어?" "제가 개발한 거예요." 나은이 옆에서 손뼉을 짝짝 쳤다. "오, 우리 서포터님 대단한데?" 이든은 팔짱을 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이든 나름의 관심 표현이라는 걸, 나는 그때 이미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말은 자신 있게 했지만, 사실 그날 아침까지도 배합 비율을 몇 번이나 바꿔야 했다. 재료 하나를 넣는 순서가 문제였는데, 그걸 완전히 확신하지 못한 채로 시연을 밀어붙인 거였다. 마법약초 가루를 먼저 넣고 정령석 조각을 나중에 넣어야 하는지, 아니면 순서를 반대로 해야 하는지, 참고서에는 명확히 나와 있지 않았다. 나는 그냥 감으로 결정했다. 그 감이, 틀렸다. 시약병 속 액체가 은은한 푸른빛을 내며 완성됐을 때만 해도 나는 자신만만했다. 색도 예뻤고, 냄새도 은근히 상쾌했다. 실습 교재에서 본 완성품과 거의 똑같아 보였다. "이거 마시면 되는 거지?" 강수가 병을 받아 들며 물었다. 강수는 우리 파티의 탱커였다. 덩치가 크고 목소리도 우렁찬 편이라, 뭘 해도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타입이었다. 그런 강수가 자원해서 먼저 마셔보겠다고 나선 것도, 지금 생각하면 순전히 나에 대한 호의였다. "네, 그거예요." 강수가 병을 들어 시원하게 들이켰다. 목젖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다 마신 뒤 병을 내려놓고, 강수는 자기 몸을 한번 훑어봤다. "오, 뭔가 몸이 좀 가벼운 느낌인데?" "그렇죠? 방어력이 올라가면 그런 느낌이 들어요." 결과는 처참했다. 포션을 마신 강수의 방어력이 올라가긴 했다. 문제는 딱 3초 동안이었다는 거다. 3초 후, 강수의 피부가 갑자기 형광 초록빛으로 변했다. "...이게 뭐야?" 강수가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목소리에 당황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처음엔 손끝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손목, 팔, 목, 얼굴까지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마치 누군가 형광펜으로 강수의 몸 전체를 색칠해버린 것 같았다. 어두운 지하 연습실에서 강수의 피부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서아가 웃음을 참는 표정으로 힐을 걸어봤지만, 색은 바뀌지 않았다. 재현이 자기가 아는 해제 마법을 몇 개 시도해봤지만, 그것도 소용없었다. 이든이 뭔가 마법 진단을 돌렸는데, 결과는 이랬다. "...아무 이상 없어. 그냥 색만 변했어." "그냥 색만?" "응. 다른 스탯 이상은 없어. 방어력도, 체력도, 다 정상이야. 그냥 피부색만 저래." "그냥, 이라니. 사람이 저렇게 됐는데." 민재가 미간을 찌푸리며 강수를 쳐다봤다. 강수는 여전히 자기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다들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그 정적이 너무 무서워서 뭐라도 말하려고 입을 뗐는데, 그 정적을 깬 건 나도 재현도 나은도 아닌, 은호였다. "...강수야, 너 지금 완전 형광봉이야." 그 말 한마디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강수 본인도 결국 웃었다. 처음엔 억지로 웃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로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민재까지 웃는 얼굴을 처음 봤다. 그것도 아주 크게, 소리까지 내면서. "야, 진짜 형광봉이네. 축제 때 파는 그거." "흔들면 더 밝아지는 거 아니야?" 나은이 강수의 팔을 툭 쳤다. 강수는 웃으면서도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야, 흔들지 마. 나 사람이야." "사람 형광봉이잖아." 이든까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표정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게 보였다. 그게 이든이 웃는 방식이라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된다. 나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채로, 다급하게 원상복구 방법을 찾아 뛰어다녔다. 마법약학 참고서를 뒤지고, 학교 조교에게 급하게 메시지를 보내고, 서아에게 정화 계열 힐을 더 세게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와중에도 다들 강수 주위를 빙빙 돌면서 사진을 찍겠다, 별명을 지어주겠다, 하면서 소란을 피웠다. "도윤아, 괜찮아. 어차피 티 안 나." 강수가 형광 초록빛 얼굴로 나를 보며 웃었다. 티가 안 난다는 말이 제일 안 티가 나는 상황이었는데도, 나는 그 말이 고마웠다. 결국 색은 한 시간쯤 지나서야 원래대로 돌아왔다. 강수는 그동안 형광 초록색 얼굴로 훈련을 계속해야 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팔이 초록빛으로 번쩍거렸고, 다들 그걸 볼 때마다 또 웃음이 터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훈련이 훈련이 아니라 그냥 웃음거리 관찰 시간이 돼버렸다. "괜찮아. 다음에 또 시도해봐." 훈련이 끝나고, 강수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나는 그 말에 조금 놀랐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미안해요. 진짜 미안해요." "괜찮다니까. 재밌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다 같이 웃은 것 같아." 강수의 목소리에는 정말로 서운함이 없었다. 오히려 즐거웠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게 더 미안하면서도, 동시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날의 해프닝은 파티 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농담거리가 됐다. 강수는 그 뒤로 종종 "형광봉"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본인도 그걸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은호가 강수를 부를 때 "야 형광봉" 하고 부르면, 강수도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지경까지 갔다. 그 사소한 실수가 오히려 파티와 나 사이의 거리를 조금 더 좁혀줬다는 걸, 그때는 정확히 몰랐다. 실패가 늘 관계를 망치는 건 아니다. 어떤 실패는, 오히려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어버리기도 한다. ───── 집에 돌아온 날 밤, 나는 예상치 못한 통보를 받았다. 저녁 식사 자리, 반찬이라고 해봐야 김치와 나물 몇 가지, 국 한 그릇이 전부인 조촐한 상이었다. 아버지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학교에서 연락 왔더라. 너 파티 재배정 됐다고." 나는 순간 긴장했다. 그 통보가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 감이 안 왔다. 이 집에서 나에 대한 소식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쪼든 항상 불편한 공기를 만들었다. "A-1조라던데, 그게 뭐야?" "...엘리트 파티예요." 아버지의 표정에 처음으로 흥미가 스쳤다. 아주 짧게. "엘리트? 거기서 넌 뭘 하는데?" "서포터요. 포션 제조." 그 흥미는 그 대답과 함께 사라졌다. 마치 스위치를 끈 것처럼, 순식간에. "그럼 그냥 짐이라는 거네." 지호가 옆에서 킥킥거렸다. 지호는 나보다 여덟 살 어린 동생이었는데, 아버지 앞에서만 유독 저렇게 신이 났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국그릇을 내려다보며 숟가락만 움직였다. 이 집에서 침묵은 곧 동의였다. 아버지는 다시 젓가락을 들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번 학기 던전 공략, 30층까지 성공하면 학비 대준다고 했지. 그건 파티 전체가 통과해야 하는 거지?" "네." "그럼 넌 그 팀에 그냥 얹혀가는 거네. 짐 좀 되지 말고." "...노력할게요." "노력이 아니라 결과가 필요한 거야. 세상은 노력한다고 알아주지 않아." 아버지 특유의 말투였다. 위로처럼 시작해서 결국은 채찍으로 끝나는.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삼켰다. 반박해봐야 저녁 식사 시간이 길어질 뿐이라는 걸, 나는 이미 오래전에 학습했다. 지호가 물었다. "형, 근데 그 파티에 예쁜 애들 있어?" "...그런 거 아니야." "에이, 뻔하지. 엘리트 파티면 다 잘생기고 예쁘고 그런 애들만 모아놓은 거잖아." "그냥 각자 역할이 있는 거야." "형은 짐 역할이고?" "지호야." 어머니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딱 그 한마디였다. 지호는 입을 삐죽였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짐이 되지 말라는 말은, 사실상 아무 도움도 안 되니 방해나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삼켰다. 밥그릇을 비우고, 설거지를 하고,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날 밤 방에 돌아와서, 나는 다시 마법백을 꺼냈다. 낡고 해진 가방이었지만, 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아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이 가방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하나씩 꺼내 정리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가방이 진짜 뭔지, 언제쯤 밝혀야 할까. 만약 지금 밝힌다면, 아버지의 저 표정이 어떻게 바뀔까. 짐이라고 불리던 내가, 사실은 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무슨 말을 할까. 그런 상상을 잠깐 해봤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아직 그날은 오지 않았다. 다만 30층 던전이라는 조건이 걸린 이상, 그 시한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었다. 학기가 끝나기 전까지, 파티가 30층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조건. 그 압박이 파티 전체에도 슬슬 드리우기 시작한다는 걸, 그날 나는 아직 몰랐다. 가방을 정리하다가, 문득 낮에 강수가 웃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괜찮아, 다음에 또 시도해봐. 그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 집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말이었다. 나는 가방 속 깊은 곳, 아무도 모르는 그 물건을 잠깐 만져보고는, 다시 천천히 원래 자리에 넣었다. 그리고 불을 끄고 누웠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때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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