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후견인님, 오늘도 들켰네요

5화

"저거 위원회 차야." 소라가 낮게 중얼거렸다. 창밖으로 검은 세단 세 대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게 보였다. 번호판도 없고, 로고도 없는데 그냥 봐도 관공서 차라는 느낌이 나는 그 특유의 재수 없는 각도. "어떻게 벌써 여길—" "몰라. 그건 나중에 따지고,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해." 소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 팔을 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아니, 이 사람 원래 손이 이렇게 차가웠나.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카페 문이 벌컥 열렸다. 딸랑. 문에 달린 종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귀에 박혔다. 정성민이었다. "이준혁 씨, 여기 계셨군요." 그가 카페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검은 정장, 반듯하게 넘긴 머리, 표정은 여전히 사무적이었다. 마치 배달 온 택배기사가 물건 확인하듯 나를 훑어보는 눈빛. "강소라 씨도 함께 계시네요." 소라의 눈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나는 옆에서 그 눈빛의 온도가 바뀌는 걸 느꼈다. 방금까지 나를 붙잡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저를 아세요?" "자료로는요." 정성민이 짧게 웃었다. 웃는 게 아니라 입꼬리만 움직인 거였다. "조직명 '해안'. 위원회 등록번호는 없죠. 아마 등록할 생각도 없으실 테고." ···'해안'이라는 게 소라가 속한 조직 이름인가. 처음 듣는 단어인데 뭔가 무거운 무게가 느껴졌다. 파도 소리도 안 들리는데 왜 이렇게 서늘한 이름이지. "저희는 이준혁 씨를 데리러 온 게 아닙니다." 정성민이 나를 향해 말했다. 목소리 톤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마치 배달지 확인하는 톤으로. "다인 씨를 데리러 왔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났다. "뭐라고요? 다인은 지금 집에—" 그 순간 휴대폰이 진동했다.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진동이 심장 박동보다 크게 느껴졌다. 저택 관리인의 문자였다. [준혁 도련님, 지금 저택에 낯선 사람들이 와서 다인 아가씨를 데려가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손끝이 차가워졌다.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글자가 바뀌기라도 할 것처럼. "뭐야, 이건—" 정성민이 내 표정을 보고 미묘하게 웃었다. 그게 제일 짜증났다. 이런 상황에서 웃는 인간이라니. "저희 요원들이 갔을 겁니다. 다인 씨의 안전을 위한 조치입니다." "안전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그냥 데려가는 거잖아요!" 목소리가 커졌다. 카페 안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봤지만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소라가 정성민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구두 뒷굽이 바닥을 찍는 소리가 유난히 딱딱하게 울렸다. "당신들이 먼저 움직였네. 그쪽 규칙 어긴 거 아니야?" "규칙은 저희가 정합니다." 정성민이 담담하게 답했다. 담담한 걸 넘어서 아예 무감각해 보였다. "당신들 조직에는 그럴 권한이 없죠." 공기가 팽팽해졌다.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이 카페 안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다른 손님들이 눈치를 채고 하나둘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커피잔을 그대로 두고 가방만 챙겨 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계산도 안 하고 뒷문으로 슬쩍 빠지는 커플도 있었다. 아, 저 사람들 계산 안 하고 갔는데. 나는 이 순간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둘 다 그만해요!" 내가 소리쳤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다인이 위험할 수도 있는데—"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밖에서 굉음이 울렸다. 콰앙! 건물이 살짝 흔들렸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컵이 흔들리면서 남아있던 커피가 조금 넘쳤다. 창밖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저택이 있는 방향이었다. "저, 저거 우리 집 방향인데—"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겠는데 입은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정성민의 표정이 처음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지금까지 보여준 사무적인 얼굴이 한순간에 벗겨졌다. 그 밑에 있는 건 순수한 당혹감이었다. "···예상과 다릅니다." "뭐가 예상과 달라요! 저희 집이 불타고 있는데!" 목이 찢어질 것 같았다. 이 인간은 지금 이 상황에서도 '예상과 다르다'는 말을 하고 있어. 마치 배송 예정일이 하루 늦어졌다는 듣는 것처럼 태연하게. 소라가 내 손목을 잡았다. 아까보다 훨씬 강한 힘이었다. "이준혁, 지금 당장 가야 해." "차는—" "내 오토바이 밖에 있어. 타." 정성민이 뭔가 말하려 했지만, 무전기가 울리며 그의 주의를 끌었다. 삐이익. [정 팀장님, 상황 보고합니다. 저택에 제3세력 침입, 다인 아가씨 신병 확인 불가—] "신병 확인 불가라니, 그게 무슨—" 나는 더 듣지 않고 소라를 따라 카페 밖으로 뛰었다. 문을 밀고 나가는 순간 종소리가 다시 울렸다. 딸랑. 이 카페 종소리, 오늘 유난히 잘 들린다. 오토바이에 올라타자마자 소라가 시동을 걸었다. 부아앙! 헬멧도 없었다. 소라의 등에 매달리듯 팔을 감았다. 등이 딱딱했다. 근육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의 경직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다인이 없어졌다고?" 뒤에서 내가 소리쳤다. 바람 소리 때문에 목소리가 잘 안 들릴까 봐 더 크게 질러야 했다. "없어진 게 아니라 확인이 안 된 거야. 다를 수도 있어." 소라가 대답했다. 목소리에 확신이 없었다. 그 흔들림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이 사람이 확신 없이 말하는 걸 처음 들었다. 오토바이가 도로를 질주했다. 신호를 무시하고, 골목을 가로지르며. 몇 번이나 다른 차와 부딪힐 뻔했다. 경적 소리가 뒤에서 연달아 울렸지만 소라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저택이 가까워질수록 연기가 짙어졌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타는 냄새, 그 안에 뭔가 화학적인 냄새도 섞여 있었다. 나무가 타는 냄새가 아니었다. 그리고 저택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숨이 막혔다. 대문이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철제 대문이 마치 종이처럼 구부러진 채 마당 한쪽에 널브러져 있었다. 마당 곳곳에 쓰러진 사람들, 검은 세단들이 뒤집혀 있었다. 유리창이 다 깨진 세단 한 대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불길이 서재 창문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저 방, 아버지가 좋아하던 서재였는데. 그리고 그 한가운데, 다인이 서 있었다. 다인의 주변으로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과 유리 파편이 허공에 멈춘 채 떠 있었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파편 하나가 다인의 어깨 옆에서 미세하게 진동하듯 흔들리다가 다시 멈췄다. 가슴께의 은빛 쇠사슬은 절반 정도 풀려 있었고, 그 사이로 뭔가 눈부신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빛이 마당의 연기와 섞여 이상한 색으로 번지고 있었다. 다인의 눈동자가 평소와 달랐다. 검은 눈동자 대신, 마치 활자가 흐르는 것 같은 이상한 문양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 눈동자 안에서 계속 흘러갔다. "다인아!" 목이 터질 것처럼 소리쳤다. 오토바이에서 내리다시피 뛰어내렸다. 무릎이 살짝 꺾였지만 신경 쓸 정신도 없었다. 내가 소리치자, 다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처음 보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 낯선 온도였다. "···준혁 씨." 다인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울렸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것처럼. 마치 방 안에서 마이크가 서로 울려 되먹임되는 소리 같았다. "조금, 늦으셨습니다." 그 순간 다인의 발밑에서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균열이 마당을 가로지르며 내 발 쪽으로 뻗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소라가 내 팔을 붙잡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거,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데."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눈앞의 광경이, 내가 알던 다인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까.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소리도 다인의 목소리만큼 크게 들리지 않았다. 땅의 균열이 조금씩, 조금씩 더 넓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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