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여덟 살, 금단을 넘었다

1화

강씨 세가(姜氏 世家)의 뒷산, 천양각(天陽閣)으로 오르는 돌계단은 백여 년의 세월 동안 이끼가 두껍게 앉아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미끄럽기 짝이 없어 어른들조차 발걸음을 조심하는 곳이었으나, 그 돌계단을 매일 오르내리는 여덟 살배기 소년의 발걸음만큼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강태호(姜太昊). 강윤재(姜允宰)의 하나뿐인 아들이자, 강씨 세가가 삼십 년 만에 배출한 기재(奇才)라 불리는 소년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아직 토납(吐納)의 기초조차 더듬거릴 나이에, 태호는 이미 단동경(丹動境)의 벽을 두 해 앞서 넘어섰으니, 세가 어른들 사이에서는 그를 두고 '하늘이 강씨 가문에 내린 마지막 기회'라 수군거리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태호는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으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여덟 살 아이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침착함이었다. 오늘, 태호는 다시 한번 그 돌계단을 올랐다. 그러나 오늘의 걸음은 여느 날과 달랐다. 발끝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숨소리는 평소보다 거칠었다. 품속에는 숙부 강효(姜孝)에게서 받은 낡은 죽간(竹簡)이 있었다. 겉면은 좀이 슬어 군데군데 삭아 있었고, 묶은 끈은 몇 번이나 다시 엮은 흔적이 역력했다. 숙부는 그것을 건네며 말했었다. "이건 사문에서도 함부로 꺼내 보지 않는 물건이다. 네게 주는 것이 아니라, 잠시 맡기는 것뿐이니 명심하거라." 태호는 그 말속에 숨은 뜻을 알지 못했다. 다만 죽간을 품에 안았을 때 손끝에 닿던 그 서늘한 감촉만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죽간에는 금단(金丹)의 경계를 넘는 법에 대한 위험천만한 구절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금단은 스승 없이 홀로 넘을 수 없다.' 세가의 오랜 금언이었으나, 태호는 그 금언을 어기려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어젯밤 우연히 엿들은 대화 때문이었다. 서재의 문틈으로 흘러나오던 불빛은 여느 때보다 낮았고, 목소리 또한 낮았다. 태호는 그저 물이라도 마시려 지나가던 참이었으나,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 섰다. 아버지 강윤재의 목소리였다. "이대로 가면 창고의 곡식도 두 달을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아버님." 이어지는 것은 할아버지, 즉 세가의 가주인 강씨 노인의 목소리였다. "무맹(武盟)의 비무 대회가 코앞이다. 거기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외부의 지원은 더더욱 요원해질 것이야." "태호가 아직 어립니다. 그 아이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짐을 지우고 싶지 않다고 해서, 지지 않을 수 있는 짐이더냐." 말끝이 흐려지고,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태호는 그 침묵을 문 너머에서 고스란히 들으며,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발끝이 차가워지고, 손끝이 저릿했다. '아버지가 저렇게 힘겨워하시는데.' 소년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세가의 창고가 비어간다는 것, 외부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무게가 결국 자신의 어깨 위로 옮겨오리라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여덟 살 소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결론은 단순하고도 무모했다—또래보다 이르게, 남들보다 빠르게, 금단을 이루어내는 것. 그리하여 무맹의 비무 대회에서 세가의 이름을 드높이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어깨에 실린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것. 그날 밤, 태호는 잠들지 못했다. 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이며, 죽간에 적힌 구절들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금단을 이루는 자는 열에 아홉이 실패하고, 그 실패의 끝에는 주화입마(走火入魔)가 있다.'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졌으나, 소년은 그 서늘함을 애써 외면했다. 천양각 삼 층 아래, 태호가 늘 수련하던 공터에 이르러 소년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초겨울의 찬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며 스산한 소리를 냈고, 앙상한 가지 끝에 매달린 마지막 잎사귀 하나가 파르르 떨리다 이내 떨어져 내렸다. 그 잎사귀가 땅에 닿기도 전에, 소년의 이마에는 벌써부터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금단은 위험하다. 자칫하면 주화입마에 빠져 폐인이 될 수도 있다.' 숙부의 경고가 귓가에 맴돌았다. 실제로 세가에는 그런 이가 있었다. 방계의 어느 어른으로, 젊은 시절 성급하게 벽을 넘으려다 진기가 역류하여 반신불수가 된 이였다. 그 어른을 볼 때마다 아이들은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었다—'저리 되고 싶지 않으면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고. 태호 또한 그 말을 수없이 들으며 자랐다. 그러나 지금, 그 정도를 걷기에는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다. 태호는 눈을 질끈 감고 단전(丹田)에 의식을 집중했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호흡이 거듭될수록 마음속의 잡념들이 하나둘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목소리도, 할아버지의 한숨도, 방계 어른의 굳은 얼굴도 모두 저 멀리 물러났다. 남은 것은 오직 자신의 숨소리와, 그 숨소리를 따라 흐르는 진기(眞氣)의 미약한 파동뿐이었다. 그렇게 반 시진(半時辰)이 흘렀다. 몸속을 휘도는 진기가 조금씩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고, 마치 용암처럼 단전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미한 온기였던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화롯불처럼 달아올랐다. 태호는 그 뜨거움을 참아내며, 진기를 조금씩 압축해 나갔다. 마치 무른 진흙을 손으로 뭉쳐 단단한 덩어리로 빚어내듯, 흩어져 있던 기운을 하나로 모아갔다. 손끝이 떨렸고,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관자놀이에서도 땀방울이 맺혀 뺨을 타고 흘러내렸으나, 소년의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허벅지 위에서 꽉 쥔 채, 태호는 그 뜨거움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면.' 압축된 진기가 단전 안에서 점점 더 작고 단단한 형태로 뭉쳐지는 것이 느껴졌다. 죽간에 적힌 구절 그대로였다. '진기를 좁쌀만 한 크기로 압축하되, 그 밀도는 무쇠보다 단단해야 한다.' 태호는 그 문장을 떠올리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진기의 덩어리를 조여갔다. 그러나 금단의 벽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압축된 진기가 어느 한계에 다다른 순간, 마치 둑이 터지듯 역류하기 시작했다. 태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뜨거웠던 단전이 이번에는 얼음처럼 차가워지는가 싶더니, 곧이어 다시 불에 덴 듯한 격통이 몰아쳤다. 혈맥이 터져나갈 듯한 격통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쿵……!" 신음이 새어 나왔다. 태호는 두 손으로 배를 움켜쥐었으나, 그것으로 통증이 가라앉을 리 없었다. 마치 수백 개의 바늘이 혈맥을 따라 온몸을 찔러대는 듯한 감각이었다. '이대로는……' 소년은 이를 악물었다. 물러설 수는 없었다. 여기서 멈추면 다음이 없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 진기를 풀어버린다면, 오늘 밤 이 자리에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이 그저 고통뿐일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이만큼의 각오를 낼 수 있을지, 태호는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옷이 흠뻑 젖어 등에 달라붙었고, 숨은 턱까지 차올라 헐떡였다. 그럼에도 소년은 눈을 감은 채 단전 속의 소용돌이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단전 깊숙한 곳에서, 태호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이한 감각이 스며들었다. 마치 실오라기 같은, 그러나 분명한 형체를 지닌 무언가가 진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스르르 파고드는 느낌.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었다. 통증이 극에 달하면 헛것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감각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 실 같은 무언가는 진기의 흐름을 따라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스며들고 있었다. 태호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번쩍 떴다. 정적. 주변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했다. 바람 소리도, 나뭇가지가 스치는 소리도, 심지어 자신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심장 박동만이 고막을 두드렸다. 쿵, 쿵, 쿵—마치 북소리처럼 크고 선명하게. 단전 안에서 무언가 검은 실처럼 가늘고 길게 이어진 것이 진기의 흐름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것이, 마치 눈을 감고도 보이는 것처럼 선명하게 감지되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압축된 진기의 표면을 어루만지듯 스치고 지나갔다. 태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이것은 흡수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이게 뭐지.' 죽간에는 이런 것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금단의 위험에 대해서는 수십 줄에 걸쳐 경고하고 있었으나, 이런 검은 실 같은 존재에 대해서는 단 한 글자도 적혀 있지 않았다. 태호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숙부님도 모르시는 것일까. 아니면……' 생각을 이어갈 겨를도 없이, 검은 실은 이미 진기의 중심부를 향해 파고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압축된 진기는 한계에 다다라 있었고, 지금 멈춘다면 몸속에서 진기가 폭주하여 단전이 산산조각 날 것이 자명했다. 태호의 눈앞에 두 개의 길이 펼쳐졌다. 하나는 검은 실을 밀어내고 진기의 폭주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길, 다른 하나는 그 검은 실을 진기와 함께 끌어안고 금단을 완성시키는 길. 전자는 죽음이었고, 후자는 미지(未知)였다.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태호에게는 마치 몇 시진처럼 길게 느껴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뜨거워진 피가 관자놀이에서 요동쳤다.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가.' 세가를 위해서, 아버지를 위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세가도 아버지도 머릿속에서 희미해지고,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소년을 지배했다. 소년의 숨이 가빠졌다. 손끝이 떨렸다. 그리고—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