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여덟 살, 금단을 넘었다

3화

강태호가 여덟 살의 나이로 금단을 이루었다는 소문은 강씨 세가의 담장을 넘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하녀들의 입방아에서 시작된 이야기였으나,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그것은 세가 전체를 뒤흔드는 격랑이 되어 있었다. "여덟 살에 금단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나이 든 원로 하나가 그리 말하며 고개를 저었고, 곁에 있던 다른 원로는 팔짱을 낀 채 냉소를 흘렸다. "필시 누군가의 허풍이겠지. 세가의 위세가 예전만 못하니, 이런 낭설까지 도는 게로군." 세가의 어른들은 저마다 반신반의하며 수군거렸으나, 직접 태호의 단전을 진맥한 노의원의 확언 앞에서는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노의원은 대청에 들어서기 전,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삼십 년간 무수한 아이들의 단전을 짚어보았으나,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강도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가주님, 소인이 평생 의술을 익혀오며 이런 진맥은 처음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흥분과 경외가 뒤섞여 있었다. "삼십 년 만의 기재입니다." 그 말이 대청의 정적을 가르고 울려 퍼졌을 때, 가주의 얼굴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감정의 파문이 일었다. 강도천은 대청 상석에 앉은 채, 손자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짚어 물었다. "홀로 돌파했다는 것이 확실한가."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노의원을 향했다. "그렇습니다, 가주님. 사부의 개입이나 영단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력으로 이룬 것이라 하옵니다." 노의원이 재차 확언하자, 강도천의 눈빛이 형형해졌다. 그는 잠시 침묵한 뒤, 나직이 중얼거렸다. "하늘이 우리 세가를 버리지 않았구나." 그 말에는 단순한 감격 이상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강씨 세가는 지난 몇 해간 창고의 곡식이 두 달을 버티지 못할 만큼 궁핍해져 있었고, 무맹의 비무 대회에서마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문파의 위신이 나날이 깎여가던 참이었다. 인근의 신흥 세력들은 이제 강씨 세가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은근한 도발과 무례를 서슴지 않았다. 창고를 지키는 늙은 관리인은 매달 곡식을 세며 한숨을 내쉬었고, 세가의 무사들은 녹슨 병기를 벼릴 자금조차 넉넉지 않아 하나둘 다른 문파로 떠나가던 시절이었다. 강도천은 그런 세가의 몰락을 밤마다 지켜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세가에, 여덟 살에 금단을 이룬 아이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정녕 하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강도천은 나직이 되뇌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늙은 두 눈에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강도천에게 있어 태호는 더 이상 단순한 손자가 아니었다. 그는 세가의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아줄 열쇠였고, 무너져가는 담장을 다시 세울 기둥이었다. "태호를 천양각으로 보내라." 강도천의 명이 떨어졌다. 대청에 모인 원로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효에게 무술 지도를 맡기고,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라. 세가의 창고가 비어도, 그 아이에게 들어가는 것만큼은 아끼지 않을 것이다." 강도천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없었다. 강윤재는 아들의 앞날이 갑작스레 정해지는 것에 내심 걱정이 앞섰으나, 아버지의 결정에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날 밤, 그는 아들의 방을 찾았다. 방문을 열자 태호는 이미 자리에 누워 있었으나, 잠들지 않은 채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강윤재는 등불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아들의 곁에 앉았다. "괜찮겠느냐, 태호야." 그의 물음에는 걱정과 미안함이 함께 담겨 있었다. 여덟 살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을 지게 된 것은 아닌지, 그는 몇 번이고 자문했다. 태호는 잠시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등불 아래 흔들리는 아버지의 눈동자에는 걱정과 애정이 뒤섞여 있었다. 태호는 그 눈빛을 오래도록 마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아버지." 그 대답은 짧았으나, 흔들림이 없었다. 강윤재는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여덟 살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기엔 지나치게 담담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각오를 다져온 사람처럼, 태호의 목소리에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무게가 배어 있었다. 강윤재는 그런 아들의 어깨를 한번 쓸어주고는, 말없이 방을 나섰다. 문밖에서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밤이었다. 다음 날부터 태호는 강효의 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새벽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시각, 태호는 잠에서 깨어나 홀로 옷을 갈아입고 천양각 뒤편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에는 이미 강효가 검을 어깨에 걸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강효는 강씨 세가의 무술 총교관이자 태호의 숙부로, 대단사(大丹師) 전기 경지에 오른 강자였다. 그는 태호를 연무장 중앙으로 불러 세운 뒤, 매섭게 눈을 빛내며 물었다. "금단을 이루었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다." 강효의 목소리는 새벽 공기처럼 차가웠다. "무공이란 것은 진기를 운용하는 그릇을 갖추는 것에 불과하니, 그 그릇에 어떤 물을 담을지는 이제부터 정해야 할 일이다." 그는 태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검을 쥐겠느냐, 권을 쓰겠느냐, 아니면 다른 길을 걷겠느냐." 태호는 잠시 고민했다. 연무장 한쪽에 걸려 있는 병기들—검, 도, 창, 곤—을 하나씩 눈으로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오래 머문 곳은 결국 낡은 목검 한 자루였다. "검을 배우고 싶습니다, 숙부님." "이유는." 강효가 재차 물었다. "빠르고, 정직하니까요." 태호의 대답은 간결했으나 그 안에는 나름의 확신이 담겨 있었다. 강효는 그 대답에 미간을 살짝 좁혔다가, 이내 옅은 웃음을 지었다. "틀린 답은 아니구나." 그는 목검 한 자루를 태호에게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허나 각오해야 할 것이다. 검이란 것은 배우기 쉬워도 익히기 어려운 무기이니, 앞으로의 수련은 결코 편치 않을 것이다." 태호는 목검을 두 손으로 받아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부터 태호는 매일 새벽 천양각 연무장으로 나가 강효에게서 검술의 기초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초 보법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강효는 태호에게 반복해서 같은 동작을 시켰고,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매섭게 지적했다. "발이 늦다. 다시." "허리가 흔들린다. 다시." 태호는 그때마다 이를 악물고 다시 동작을 취했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 목검을 쥔 손끝까지 적셨으나, 태호는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효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여덟 살짜리가 이 정도의 인내심을 갖다니.' 그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으나, 조카의 자질에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무렵, 태호의 곁에는 늘 작은 그림자 하나가 따라붙었다. 강효의 딸이자 태호의 숙부 집 조카인 강서아였다. 여섯 살 남짓 되는 이 작은 소녀는 태호가 연무장에 나올 때마다 담장 밑에 숨어 지켜보다가, 이내 참지 못하고 뛰쳐나와 옆에 쪼그려 앉곤 했다. 처음에는 아버지 강효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다가왔으나, 며칠이 지나자 아예 대놓고 연무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태호의 수련을 구경했다. "태호 오라버니, 그거 또 하는 거야?" 서아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녀의 작은 손에는 언제나 태호에게 주려고 몰래 챙겨온 주전부리가 들려 있었다. "응. 검을 배우는 중이야." 태호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답했다. "나도 배우고 싶어!" 서아가 두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앙증맞은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강효조차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감추었다. 태호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서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서아도 나중에 자질이 좋으면 배울 수 있을 거야." "정말?" 서아의 눈이 더욱 커졌다. "정말." 태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아는 만족스러운 듯 배시시 웃으며 태호 곁에 더 가까이 붙어 앉았다. 서아는 세가 내에서 태호 다음으로 뛰어난 수련 자질을 지닌 아이로 은근히 주목받고 있었으나, 아직 어린 탓에 정식 수련을 시작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서아는 태호를 유독 잘 따랐고, 태호 역시 그런 서아를 귀찮아하기보다는 살갑게 대해주었다. 수련이 끝나면 태호는 종종 서아와 함께 연무장 구석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곤 했는데, 그 짧은 시간이 태호에게는 하루 중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세가의 모든 이가 태호의 성취를 반긴 것은 아니었다. 연무장 한쪽 구석, 태호와 강효의 수련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한 소년이 있었다. 열네 살의 강태영. 태호의 사촌형이자 큰아버지 강윤석의 아들로,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세가 내에서 가장 촉망받는 기재로 손꼽히던 인물이었다. 단동(丹動) 후기 경지에 오른 그의 실력은 결코 얕잡아 볼 것이 아니었으나, 여덟 살에 금단을 이룬 사촌 동생의 등장 앞에서는 그 빛이 순식간에 바래고 말았다. 태영은 그날도 담장 너머로 태호의 수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목검을 휘두르는 여덟 살 아이의 자세는 아직 어설펐으나, 그 눈빛만큼은 결코 아이답지 않았다. 태영은 그 눈빛을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뜨겁게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흥." 태영은 팔짱을 낀 채 코웃음을 쳤다. 곁에 서 있던 시종이 조심스레 물었다. "공자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걱정은 무슨." 태영이 차갑게 대답했다. "그저, 세가 어른들이 저 어린놈 하나에 너무 목을 매는 게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다." 그의 목소리에는 냉소가 짙게 배어 있었으나, 그 밑바닥에는 감추기 힘든 초조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십사 년을 세가 최고의 기재로 살아온 자신이, 이제는 여덟 살짜리에게 밀려 이인자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태영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시종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하오나 공자님, 소인이 듣기로는 강태호 공자님의 자질이 실로 하늘이 내린 것이라 하던데요." "그만해라." 태영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끊겼다. 시종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태영은 그대로 몸을 돌려 담장을 벗어났으나, 그의 발걸음은 무겁고 불안정했다. 그날 저녁, 태영은 아버지 강윤석의 처소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강윤석은 서책을 읽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냐." "아버지, 저도 대단사 경지에 오를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태영의 목소리에는 억눌린 조급함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강윤석은 아들의 얼굴에 어린 조급함을 읽어내고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서책을 덮고 아들을 마주 보았다. "조급해하지 마라, 태영아. 무공이란 것은 나이가 아니라 근기(根基)로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태호는……" "태호는 태호고, 너는 너다." 강윤석의 말에는 위로의 뜻이 담겨 있었으나, 그 이면에는 강윤석 자신도 아우 강윤재의 아들이 갑작스레 세가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것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형제간의 권력 구도는 언제나 미묘한 균형 위에 서 있었고, 태호의 등장은 그 균형을 크게 흔들어 놓고 있었다. 강윤석은 아들에게는 조급해하지 말라 일렀으나, 정작 그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알 수 없는 불안이 스며들고 있었다. "아버지도 결국은 저 아이가 세가의 중심이 될까 걱정하시는 것이지요." 태영이 낮게 중얼거렸다. 강윤석은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대답이었다. "두고 보아라." 태영은 그날 밤, 홀로 검을 쥐고 수련장에 남아 중얼거렸다. 달빛이 그의 검신 위로 차갑게 흘러내렸다. "내가 반드시 다시 세가 제일의 기재라는 이름을 되찾을 것이다." 그의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밤의 정적을 갈랐다. 챙-! 검이 허공을 베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태영은 숨이 거칠어질 때까지 검을 휘둘렀으나, 그 검격 속에는 순수한 정진의 의지보다, 질시와 조급함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그는 몇 번이고 검을 내려치다가, 결국 지쳐 검을 땅에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달을 가리며 지나갔고, 태영의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리고 며칠 뒤, 세가의 문지기를 통해 심상치 않은 소문 하나가 흘러들어 왔다. 인근 이씨 가문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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