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던전 입구는 예전 지하철 공사장처럼 생긴 철제 펜스로 둘러싸여 있었다. 녹슨 철망 사이로 붉은 경고등이 깜빡이고, 그 아래로 "출입금지"라는 글자가 반쯤 벗겨진 채 매달려 있었다. 본좌는 그 광경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참으로 허접한 결계로다. 저런 쇠막대기 몇 개로 마경의 입구를 막겠다는 것인가.'
정인호가 위조 통행패를 흔들어 보이자, 경비원이 하품을 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경비원의 눈빛에는 귀찮음만이 가득했으니, 그의 손짓 하나에는 세상만사에 무심한 자의 여유가 서려 있었다.
"실종자 발견 지점까지 안내해줄 사람 붙였어. 조심해."
정인호는 그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뒷모습조차 여유로운 것이, 마치 시장에 심부름 보내고 돌아서는 이의 태도였다. 본좌는 던전 입구 앞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던전이라는 이름은 참으로 낯간지러운 것이었으나, 그 실체는 결국 지하로 뚫린 마경*이니, 본좌에게는 낯선 곳이 아니었다.
*마경: 마귀의 지경, 즉 위험한 지역을 뜻하는 옛말
전생에 본좌가 밟았던 마경들은 하나같이 산 채로 삼킬 듯한 기세를 뿜어냈으나, 이 시대의 던전이라는 것은 겉보기엔 그저 공사장 잔해처럼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하나 그 초라함 속에 숨겨진 흉험함을 본좌는 이미 몸으로 겪어 알고 있었으니,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는 법이었다.
동행한 안내자는 스무 살 남짓한 청년으로, 협회 소속이라며 명찰을 흔들었다. 명찰에는 사진과 함께 이름이 박혀 있었는데, 사진 속 얼굴이 지금보다 훨씬 통통해 보이는 것이 우스웠다.
"이쪽 A-7구역이고요, 실종자 마지막 신호가 여기서 끊겼어요."
"신호라 함은 무엇을 이르는가."
"통신기요. 던전 배신 촬영할 때 다들 목에 걸고 다니거든요."
"통신기라... 필경 전서구를 대신하는 물건이렷다."
"네? 전서구요? 그게 뭔데요?"
"아니, 신경 쓰지 말지어다."
안내자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앞장서 걸었다. 본좌는 그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지혜에 무지하도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다.'
본좌는 벽에 걸린 낡은 카메라 삼각대를 발견했다. 그 옆으로 작은 조명 기구와, 끊어진 케이블 다발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조명 기구는 마치 작은 태양처럼 둥근 모양이었는데, 지금은 그 빛을 잃고 검게 그을려 있었다.
"이는 방송을 위한 도구들이렷다."
"네, 최준혁 형이 여기서 라이브 켜고 있었대요. 던전 배신 시즌3 특집이었어요."
"던전 배신이라... 필경 배신이라는 글자를 쓰는 것을 보아하니, 무언가를 배반하는 행위렷다."
"아뇨, 배신이 아니라 '배신(拜身)'이 아니고, 그냥 방송 제목이 그래요. 던전 안에서 하룻밤 버티는 컨셉이에요."
"허어, 하룻밤을 버틴다 하였느니라. 그것이 무슨 대단한 도전이라 할 수 있으리오."
"그게, 형 말투가 좀... 아무튼 그런 컨셉이에요."
본좌는 삼각대를 들어 살펴보았다. 다리 하나가 부러져 있었고, 렌즈에는 검은 얼룩이 말라붙어 있었다. 본좌는 코를 킁킁거렸다. 그 냄새는 필경 짐승의 것이 아니었다.
'이는 사람의 피로다.'
본좌는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낮은 급의 마경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피가 이토록 넓게 튄 흔적은 흔치 않은 것이었다. 삼각대 다리에 묻은 검붉은 자국은 이미 말라 굳은 지 오래였으나, 그 형태만으로도 당시의 참혹함이 짐작되었다.
"저... 형, 왜 그래요?"
"아니, 별것 아니로다. 계속 가보자꾸나."
안내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앞장섰다.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으나, 본좌의 눈은 사방을 훑고 있었다. 통로를 따라 걷는 동안, 벽면 곳곳에 긁힌 흔적이 보였다. 사람의 손톱 자국이라기엔 지나치게 깊고 길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의 발톱이 벽을 할퀴고 지나간 듯한 흔적이었으되, 그 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뒤엉켜 있어 발톱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흔적처럼도 보였다.
[알림: 미확인 개체의 잔여 기운이 감지되었습니다.]
[알림: 위험 등급 산정 불가. 주의를 요합니다.]
본좌는 그 알림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등급을 산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 시스템이라는 요망한 존재조차 이 놈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참으로 방자한 요물이로다. 감히 하늘의 눈까지 피해간단 말인가.'
본좌는 걸음을 늦추며 벽면의 흔적을 손끝으로 쓸어보았다. 차갑고 거친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이는 단순한 짐승의 소행이 아니라, 무언가 지능을 가진 존재의 흔적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통로 끝에 이르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본좌가 다가가 주워보니, 목걸이형 통신기였다. 액정 화면엔 여전히 붉은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줄이 끊어진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는데, 그 끊어진 자국이 날카롭게 잘려 있어 마치 무언가에 의해 억지로 뜯겨나간 듯한 모양이었다.
"이게 최준혁 형 거예요! 아직 배터리가 살아있네."
안내자가 급히 다가와 화면을 눌렀다. 저장된 마지막 영상이 재생되었다.
화면 속 최준혁은 카메라를 향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여러분, 오늘도 시청자 여러분과 함께! 던전 배신, 시작해볼까요?"
그 뒤로 동료 두 명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한 명은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렸고, 다른 한 명은 헬멧을 벗어 인사하듯 흔들었다. 화면 속 세 사람의 표정은 여느 방송인들처럼 밝고 활기찼으니, 그 누구도 곧 닥칠 참사를 예감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영상이 삼 분쯤 지났을 때, 갑작스레 화면이 흔들리며 최준혁의 웃음이 사라졌다.
"뭐야, 저거 뭐야—"
동료들의 비명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 유리 깨지는 듯한 파열음, 그리고 짐승의 것도 아니요 인간의 것도 아닌 기묘한 울음소리가 순식간에 화면을 채웠다.
영상은 거기서 끊겼다. 마지막 프레임에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의 형체가 스쳐 지나가는 듯한 흐릿한 그림자만 남아 있었다.
본좌는 그 그림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사람의 형체도 아니요, 흔히 아는 요물의 형체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그림자 자체가 스스로 움직이는 듯한 형태였다.
"형, 이거 협회에도 보고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저 그림자 좀 무섭잖아요."
"이미 청명회에는 전달될 것이니라. 하나..."
본좌는 말을 멈추었다. 무언가 등 뒤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기척 때문이었다. 이는 필경 짐승의 것도, 인간의 것도 아니었다. 살갗을 타고 스며드는 서늘한 감각이, 마치 누군가 목덜미에 얼음 조각을 갖다 댄 듯한 오싹함을 안겨주었다.
'이 기운, 낮에도 살아 숨쉬는 놈이라 함이 사실이었구나.'
본좌는 조용히 안내자에게 손짓하여 뒤로 물러서게 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통로 저편, 어둠이 유독 짙게 뭉쳐 있는 지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본좌가 홀로 가리라."
"네? 혼자 가면 위험한데..."
"물러서라 하였느니라."
본좌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안내자는 그 기세에 놀라 순순히 뒤로 물러섰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것이 어둠 속에서도 뚜렷이 보였다.
통로 저편, 어둠이 유독 짙게 뭉쳐 있는 지점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어둠 그 자체가 살을 붙이고 뼈를 세우는 듯한 광경이었으니, 본좌는 그 순간 전신의 감각이 일제히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