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명퇴 위기의 퇴마사

4화

마경(魔境)의 어둠이 채 형체를 갖추기도 전, 본좌의 통신기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삑- 삑- 삐빅- "이도현, 상황 보고해." 강서연의 목소리였다. 본좌는 급히 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무언가 있느니라. 아직 정체는 모르나 필경 심상찮은 놈이로다." "뭐가 있는데?" "어둠이 스스로 뭉쳐 형체를 이루는 요물이니라. 참으로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도다." 잠시 통신 너머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강서연이 아닌 다른 목소리였다. "어둠이 뭉쳐요? 야, 이 형 뭐야, 판타지 소설 써?" 본좌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 목소리의 주인은 필경 구조대 소속인 듯했다. "뉘시오." "구조대 소속 팀장인데요, 형은 뭔데 이 채널을 쓰세요? 저희 라이브 방송 중이거든요?" 방송이라는 말에 본좌는 통로 안쪽을 힐끗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십여 미터 뒤편에서 화려한 조명을 매단 촬영 장비를 든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헬멧에는 작은 카메라가 달려 있었고, 가슴팍에는 커다랗게 협회 로고와 함께 '던전세이버즈'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이는 필경 무림맹에 소속된 유랑 예인 집단이로다. 어찌 이런 마경까지 흥을 돋우러 왔단 말인가.' 그중 선두에 선 남자가 본좌를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어, 저기요! 여기 통제구역인데요,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본좌는 청명회 소속으로 정식 의뢰를 받고 진입한 것이니라." "청명회요? 그거 아직도 있어요?" 그의 말에 뒤따르던 팀원들이 낄낄거렸다. 본좌의 뒤통수가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참으로 굴욕적인 일이었다. "청명회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퇴마 조직이니라. 함부로 폄훼하지 말지어다." "아니 형, 무슨 무협 영화 찍어요? 우리 지금 라이브인데 이거 편집 못 해요." 촬영 감독인 듯한 여자가 카메라를 그대로 본좌에게 들이댔다. "안녕하세요, 채팅창! 오늘 특이한 분 만났네요, 청명회라고 자기소개 하셨는데 여러분 아세요?" 채팅창이라는 것이 실시간으로 웃음 이모티콘을 쏟아내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본좌는 그 소리를 들으며 뒤통수뿐 아니라 목덜미까지 화끈거림을 느꼈다. "저 도현 님, 팬이에요! 청명회 짤 만들어도 되나요?" 채팅창의 문구를 감독이 그대로 읽어주었다. 팀원들이 다시 한 번 폭소를 터뜨렸다. '이는 참으로 무례한 자들이로다. 어찌 사명을 수행하는 자를 놀림거리로 삼는단 말인가. 본좌가 살던 시절이었다면 이런 자들은 필경 곤장 서른 대로 다스렸을 것이거늘.' "본좌를 놀리는 것은 그만두고, 이곳에 얽힌 실종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가." "실종 사건이면 최준혁 형 얘긴가? 우리도 그거 때문에 온 거예요. 협회에서 특별 촬영 허가받고." "허가라 함은, 사람이 사라진 자리를 방송거리로 만들 셈이란 말인가." "그럼요, 실화 기반 콘텐츠가 조회수 잘 나오거든요. 도현 형도 나중에 얼굴 모자이크 처리해드릴게요." 본좌는 말문이 막혔다. 이 세상은 참으로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이 사라졌다는 비극조차 시청률을 위한 소재로 전락한 것이었다. '참으로 한탄스럽도다. 옛적에는 실종자를 찾기 위해 온 마을이 향을 피우고 곡을 하였거늘, 이제는 카메라를 들고 웃음을 파는구나.' 그때 팀장이 본좌의 접이식 목검을 발견하고 흥미로운 듯 물었다. "저건 뭐예요? 목검? 이걸로 뭐 하시게요, 방망이질이라도 하시게?" "이는 본좌의 검이니, 감히 얕보지 말지어다." "아 나 진짜 못 참겠다. 야, 이거 편집 포인트다." 촬영팀 전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가 통로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본좌는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으나, 이는 서러움이 아니라 필경 이 마경의 습한 공기 때문이리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래, 습기 탓이로다. 본좌가 이런 미물들의 조롱에 흔들릴 리 없느니라.' 그 와중에도 통신기 너머에서는 강서연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이어졌다. "야, 이도현. 뭔 소리야, 뭐 하는 사람들이야? 야, 대답 안 해?" "별일 아니니라. 잠시 소란이 있었을 뿐이다." "소란이 아니라 지금 화면에 방송사고 뜬 거 안 보이니? 너 지금 실시간으로 웃음거리 되고 있다고." '화면이라니, 필경 이 통신기 너머 강서연도 저 방송이라는 것을 보고 있는 모양이로다. 참으로 정보의 흐름이 요망한 세상이로다.' 본좌가 이 생각에 골몰하는 사이, 촬영 감독의 카메라는 계속해서 본좌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채팅창에서 이분 진지한 표정이 더 웃기다고 하시네요, 여러분 좋아요 눌러주세요." [알림: 대중의 조롱을 견뎌내었습니다. 선행 공덕이 소폭 지급됩니다.] '이런 굴욕 속에서도 공덕이 쌓인다니, 참으로 각박한 세상이로다. 본좌의 인내가 곳간의 재물로 환산된단 말인가.' 그 순간, 팀장이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이 본좌의 뒤편, 아까 그 짙은 그림자가 뭉쳐 있던 지점으로 향해 있었다. "저... 저거 뭐야." 웃음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카메라 조명이 흔들리며 통로 안쪽을 비추었다. 그림자는 이제 완전한 형체를 갖추고 있었다—사람의 것도, 짐승의 것도 아닌, 길게 늘어진 팔다리를 가진 무언가가 벽을 타고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었다. 촬영팀 중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 "저거 도망가야 돼요! 저거 뭔데!" 카메라를 든 감독의 손이 심하게 떨리며 화면이 흔들렸다. 채팅창 소리가 다시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으나, 이번에는 웃음 이모티콘이 아니라 물음표와 경악의 문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저거 CG 아니에요? 진짜예요? 형 이거 대박인데 무섭다." 'CG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필경 저들이 아직도 저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모양이로다.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로다.' 본좌는 그 순간 목검을 고쳐 잡았다. 접이식 목검이 손안에서 스르륵 펴지며 진짜 검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는 청명회가 본좌에게 지급한 유일한 무구였다. 칼날에 마경 특유의 습한 기운이 서리며 은은한 빛을 발했다. "모두 물러서라. 이제부터는 본좌의 몫이니라." 팀장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요, 저거 진짜 위험한 거예요? 저희 그냥 구경만 하려고 왔는데."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 필경 사람을 삼킨 원흉일 것이니라. 뒤로 물러나 있으라." 그림자가 낮게 울리는 소리를 냈다. 마치 수십 명이 동시에 신음하는 듯한, 참으로 불쾌한 소리였다. 벽을 타고 흐르던 그것의 길게 늘어진 팔이 순식간에 촬영팀 쪽으로 뻗어 나갔다. "으악!" 카메라를 든 감독이 뒤로 넘어지며 조명이 바닥에 떨어졌다. 통로 전체가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다가, 그림자 자신이 뿜어내는 흐릿한 광채로 다시 밝아졌다. 그리고 그 형체가 순식간에 본좌를 향해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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