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귀농한 이세계 지주

3화

창호지 틈으로 본 것은 개였다. 다만 눈이 노랗게 빛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였다. 이 산골 집에 온 지 사흘째, 아직 시차 적응도 안 됐는데 이 시간에 눈이 떠진 것부터가 이상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숨을 죽이고 그것을 지켜봤다. 늙은 진돗개처럼 보였다. 털은 누렇게 바랬고 한쪽 다리를 살짝 저는 걸음걸이였다. 개는 개집 앞에 앉아 마당 구석, 대나무숲이 시작되는 지점을 노려보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십 분이 넘도록 같은 자세였다. 나는 그 인내심에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개가 저렇게 오래 한곳만 보고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 지점의 공기가 이상했다. 달빛이 유독 그 부분만 굴절되는 것처럼 흐릿했다. 마치 누군가 그 자리에만 유리를 세워놓은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비볐다. 잠이 덜 깨서 그런가 싶었지만 두 번 세 번 봐도 똑같았다. 이럴 때 정상적인 선택은 다시 눕는 거다. 알고 있다. 그런데 몸이 이미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문을 살짝 열고 마루로 나갔다. 나무 마루가 삐걱, 발밑에서 소리를 냈다. 개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컹." 짧게 한 번 짖고는 다시 그쪽을 봤다. 나를 경계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저길 좀 보라는, 그런 느낌이었다. 말이 되나 싶었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 대나무 잎이 흔들렸다. 사삭, 사사삭. 그 소리만 유독 크게 들렸다. 나는 조심스레 마당으로 내려섰다. 흙바닥이 맨발에 차가웠다. 신발을 신을 정신도 없었다는 게 나중에야 우습게 느껴졌지만, 그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대나무숲 앞에 서자, 흐릿하던 공기가 눈앞에서 실제로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마치 물속에서 유리창을 보는 것 같았다. 손을 뻗어보고 싶은 마음과 뻗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이런 걸 두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나.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나. 나는 고양이가 아니고 사람이니까 괜찮을 거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나를 다독였다. 결국 뻗었다. 손끝이 그 일그러진 공기에 닿는 순간, 손가락 끝이 저편으로 살짝 빨려 들어갔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이상한 감각이었다. 물도 아니고 공기도 아닌, 그 중간쯤의 어떤 것. 나는 놀라서 손을 뒤로 뺐다. 뭔가 튀어나왔다. 작은 것이었다. 손바닥 두 개를 합친 크기, 토끼 같은 몸에 이파리 같은 귀를 가진 존재였다. 눈은 새까맣고 커다랬다. 그것이 내 발목을 붙잡고 파르르 떨었다.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참았다. 밤이었고, 산이었고, 소리를 지른다고 누가 와줄 리 없었다. 이 동네 이웃집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이라는 걸 낮에 확인했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그것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작은 것은 내 목소리에 반응하듯 떨림이 조금 줄었다. 발목을 감싼 힘도 부드러워졌다. 나는 이게 무는 건지 안기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일단 물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놀랬냐."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 익숙한 억양. 나는 몸을 돌렸다. 마루 끝에 누군가 서 있었다. 흐릿한 형체였지만, 그 실루엣은 분명 알아볼 수 있었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아니, 늦게 뛴 게 아니라 잠깐 멈췄다가 다시 뛴 것 같았다. "할아버지..." 목소리가 갈라졌다. 김만수, 할아버지였다. 3년 전 돌아가셨다는 그 사람이 마루에 서서 팔짱을 끼고 나를 보고 있었다. 살아있을 때와 똑같은 낡은 등산 조끼를 입고 있었다. 등산 조끼 오른쪽 주머니가 늘 처져 있던 것도 그대로였다. 담배 라이터를 넣고 다녀서 그랬다던 그 주머니. "그거 함부로 만지면 안 돼." 할아버지가 발목에 붙은 작은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놀랬을 거다, 걔도." "할아버지가... 왜 여기 계세요." 나는 말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손도 떨렸다. 나는 그걸 감추려고 발목의 작은 것을 괜히 한 번 더 쓰다듬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여기 있는 게 문제지." 할아버지가 마당으로 내려왔다.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았다. 흙 위를 걸어도 발밑이 눌리지 않았다. 그게 제일 이상했다. 사람이라면 저럴 수가 없었다. "이 땅, 함부로 넘겨줄 데가 없어서 너한테 갔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저 지금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거 맞아요. 유령이랑 얘기하고 있잖아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위기 상황에서만 튀어나오는 반말, 이럴 때는 존댓말을 챙길 여유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도망은 안 가네." "도망갈 데가 있어야죠." 할아버지 말에 따르면, 이 산은 오래전부터 저쪽 세계와 이어지는 틈이 있는 땅이었다. 대나무숲 앞의 그 일그러진 공기가 바로 그 틈, 게이트였다. 할아버지가 평생 그 틈을 지키며 살았고, 죽은 뒤에도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이 땅에 붙어 있는 거라고 했다. "게이트라니, 그거 게임 용어 아니에요." 나는 실없이 물었다. 뭐라도 물어야 이 상황이 조금이라도 현실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요즘 애들이 그렇게 부르더라. 옛날엔 그냥 구멍이라고 했다. 구멍보다는 게이트가 좀 있어 보이긴 하지." 할아버지가 대나무숲을 턱으로 가리켰다. "낮에는 잠잠하다. 밤엔 저렇게 열려. 정확히는 항상 있는데, 밤에 눈에 보일 뿐이야." "저건 뭔데요." 나는 아직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작은 것을 가리켰다. "산의 조각. 여기 말로는 정기 같은 거지. 해코지 안 해. 오히려 사람을 잘 따르는 편이야." 할아버지가 손끝으로 그것의 귀를 슥 문지르자 그것이 파르르 몸을 떨며 좋아했다. 죽은 사람 손끝이 산 것을 만지는데,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좋아하는 걸 보니 뭔가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저 안쪽에, 사람을 안 좋아하는 것들도 있다는 거다." "안 좋아하는 것들이면..." "몬스터. 요즘 젊은 애들 말로는 그렇게 부르지." 할아버지가 씩 웃었다. 죽은 사람 웃음이 이렇게 태연할 수 있나 싶었다. "낮에는 게이트가 잠잠하다. 밤에는 좀 활발해져. 그니까 밤에 여기 함부로 오지 마라. 지금처럼." "저는 그냥 소리가 나서..." "저 개가 불러서 온 거지." 할아버지가 개집 쪽을 가리켰다. 늙은 진돗개가 여전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 녀석, 원래 내가 키우던 놈인데. 이제는 좀... 다른 게 좀 섞여 있다." "다른 게요?" "물어보면 걔가 알려줄 거다. 지금은 됐고." 할아버지가 하늘을 봤다. 달이 구름에 걸려 있었다. "규칙만 알아둬. 낮에는 게이트 근처 와도 괜찮다. 밤에는 대나무숲 넘어가지 마라. 저 작은 것들이 도와달라고 해도 밤엔 응하지 마라. 니 힘으로 아직 안 돼." 나는 그 말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이 상황 자체가 너무 비현실적이라 오히려 그런 반응이 나온 것 같았다. "힘이라니, 저는 F등급이에요. 스킬도 없어요." 나는 씁쓸하게 말했다. 오랜 습관처럼 나온 말이었다. 각성 테스트를 받은 이후로 몇 년째 하던 자기소개나 마찬가지였다. F등급, 무쓸모 스킬 하나. 그게 내 전부였다. "그럼 등록금은 어떻게 냈냐." 할아버지가 물었다. 갑작스러운 현실적인 질문에 나는 잠깐 말이 막혔다. "대출요." "갚았냐." "아니요. 아직도 갚고 있어요." 이 대화가 왜 갑자기 대출 이야기로 흘러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죽은 할아버지랑 마당에서 학자금 대출 얘기를 하는 게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게 더 이상했다. 할아버지가 나를 빤히 봤다. 그 표정에 처음으로 무언가 서린 듯했다. 서글픔인지 확신인지 알 수 없었다. "영지경영, 그거 무쓸모 스킬 아니야. 조건이 있는 스킬일 뿐이지." 할아버지가 말했다. "이 땅에 서 있으면서도 그걸 모른다는 게 신기하다." "조건이라니, 무슨 조건요."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몇 년 동안 아무도 나에게 그 스킬이 뭔가 쓸 데가 있다는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길드에서도, 각성자 상담소에서도, 하나같이 어깨를 두드리며 안타깝다는 표정만 지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발목에 붙은 작은 것이 갑자기 몸을 떨더니 대나무숲 쪽으로 후다닥 돌아가는 걸 봤다. 나는 그 뒷모습을 눈으로 쫓다가,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좀 전까지 나를 좋아라 따르던 것이 저렇게 갑자기 도망치듯 사라지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개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 손등을 핥았다. 따뜻하고 축축한 감각이었다. 유령이 아닌, 살아있는 감각이었다. 그 온기가 오히려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더 비현실적으로 만들었다. "이름이 뭐예요, 얘." 나는 개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화제를 돌리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조건이 뭔지 대답을 안 해주니, 나도 다른 걸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호랑이. 내가 지어줬다."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작명 실력은 없었지." "진돗갠데 호랑이요." "이름 크게 지어야 오래 산다고 그러더라, 옛날 사람들이. 그래서 그렇게 지었다." 할아버지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는 그 밤, 호랑이 옆에 앉아 대나무숲을 오래 바라봤다. 흐릿한 공기 너머로 뭔가 큰 그림자가 잠깐 스쳤다가 사라졌다. 순간적이었지만 분명히 봤다. 사람보다 훨씬 큰, 형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것이었다. 할아버지도 그걸 봤는지, 표정이 살짝 굳었다. 나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죽은 사람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게, 그리고 그게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무서운 신호라는 게 동시에 느껴졌다. "뭐였어요, 방금."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들어가자." 할아버지가 대신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순순히 따랐다. 밤은 아직 시작이었다. 그리고 방금 본 그림자가, 대나무숲 저편에서 아직 우리 쪽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