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부장님, 저 능력 생겼어요

5화

"아가씨 예쁘네." 그 남자의 눈빛이 서연의 몸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훑었다. 마치 물건을 감정하는 눈빛이었다. 서연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피했다. 그녀의 손이 무릎 위에서 살짝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손을 봤다. 떨리는 손을 보는데 왜 내 가슴이 먼저 조여드는 걸까. 박태준 부장이 웃으며 술을 따랐다. 웃음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이 친구는 우리 팀 막내야. 인사해, 서연 씨." "안녕하세요." 서연이 작게 인사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어허, 목소리가 그게 뭐야. 좀 크게 해봐." 낯선 남자가 웃었다. 옆에 있던 다른 남자도 같이 웃었다. 그 웃음이 유독 거칠고 상스러웠다. 마치 사냥감을 앞에 둔 하이에나 무리 같은 웃음소리였다. 나는 슬쩍 부장을 봤다. "부장님, 이분들 거래처... 맞나요?" "어, 뭐, 비슷한 관계지." 비슷한 관계라니. 대답이 모호했다. 뭔가 숨기는 게 있는 눈치였다. 부장의 눈동자가 슬쩍 흔들리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무슨 관계인데 저렇게 말을 흐릴까. 거래처면 거래처고 아니면 아니라고 하지, 저 '비슷한'이라는 단어 속에 뭐가 숨어 있는 걸까. 술이 몇 잔 더 돌았다. 남자들의 말투는 점점 거칠어졌다. 존댓말이 사라지고 반말이 늘었다. 웃음소리도 점점 커졌다. 식당 안 공기가 서서히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중 가장 나이 든 남자, 팔뚝에 문신이 슬쩍 보이는 그가 서연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매를 걷어 올린 팔뚝에 검은 문신이 얼핏 보였다. 무슨 그림인지는 정확히 안 보였지만, 딱 봐도 곱게 새긴 문신은 아니었다. "아가씨, 술 한잔 따라줘 봐." "저... 괜찮으시면 제가 따라드릴게요." 내가 대신 병을 들었다. 남자가 눈을 흘겼다. "넌 뭔데 끼어들어?" "같은 팀이라..." "같은 팀이면 뭐, 여자 따라주는 것까지 니가 하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박태준 부장이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에이, 형님. 그냥 분위기 좋게 갑시다." "형님?" 그 호칭에 나는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부장이 저 남자를 형님이라고 부른다고? 거래처 관계라면서 형님이라니. 이건 상하 관계나 갑을 관계에서 쓰는 호칭이 아니었다. 뭔가 더 오래되고 끈질긴 관계에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서연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눈이 커졌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이 자리, 뭔가 잘못됐다는 걸. 남자는 다시 서연에게 손을 뻗었다. 서연의 어깨를 잡으려는 손이었다. 굵고 마디진 손가락이었다. "이리 와 앉아봐. 옆에 앉아서 얘기 좀 하자니까." "저는 좀..." 서연이 몸을 움츠렸다. 어깨가 잔뜩 굳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와 남자 사이에 손을 밀어 넣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이게 맞는 건지, 아닌지 판단할 시간도 없었다. "저기요." "뭐야, 너?" "동료가 불편해하시는데, 좀 그러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말은 끝까지 뱉었다. 식당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젓가락 소리도, 잔 부딪히는 소리도 멈췄다. 박태준 부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민호 씨, 지금 뭐 하는 거야." 부장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섞여 있었다. "부장님,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야, 이 새끼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격이 나보다 훨씬 컸다. 어깨가 문짝만 했다.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사나워졌다. 눈동자 안에 살기 같은 게 서렸다. "너 지금 나한테 이래도 되는 위치인지 알아?" "...무슨 위치요?" "몰라도 돼. 그냥 앉아서 술이나 마셔." 그가 내 어깨를 세게 밀었다. 나는 뒤로 밀려나며 의자에 부딪혔다. 등이 얼얼했다. 뻐근한 통증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민호 씨!" 서연이 놀라서 일어났다. 부장이 황급히 남자를 말렸다. "형님, 형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신입이라 아직 뭘 몰라서 그런 거니까." "신입이든 아니든, 예의가 없네." 남자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코웃음을 쳤다. 그의 눈빛이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다. 위협적인 눈빛이었다. 사냥감을 놓치고 아쉬워하는 맹수의 눈빛 같았다. 부장이 나를 향해 눈짓했다. 조용히 있으라는 뜻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참는 게 맞나. 참는 게 맞을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서연을 데리고 나가야 하는 걸까. 머릿속에서 질문만 계속 맴돌았고, 답은 나오지 않았다. 서연이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어깨 부딪혔잖아요." "별거 아니에요." 사실 어깨가 얼얼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통증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저 남자들의 눈빛이었다. 그때, 부장이 잠깐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비웠다. 나는 그 틈을 타 서연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 사람들, 뭔가 이상해요."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부장님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거 보셨죠?" "네. 저 남자, 그냥 거래처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서연이 목소리를 낮췄다. 주변을 살피며 입을 손으로 가렸다. "제가 예전에 들은 얘기가 있는데... 부장님이 예전에 무슨 사업 하다가 빚 때문에 이상한 사람들이랑 엮였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진짜요?" "확실친 않아요. 그냥 소문이라..." 소문이라도, 이 상황이 그 소문을 뒷받침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그 남자를 봤다. 팔뚝의 문신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뭔가 조직적인 느낌이 강했다. 술자리 하나가 이렇게 살벌할 수 있나. 그냥 회식이면 이 정도로 등에서 식은땀이 나지 않을 텐데. 부장이 돌아왔다. 그는 다시 웃으며 술잔을 채웠다. "자, 자, 분위기 다시 좋게 갑시다." 하지만 분위기는 절대 좋아지지 않았다. 남자는 여전히 서연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고, 그 눈빛에는 계속 뭔가 노리는 듯한 기색이 있었다. 술잔을 든 손이 서연의 어깨 쪽을 자꾸 넘겨다보고 있었다. "아까 그 새끼, 이름이 뭐라 그랬지?" 남자가 옆 사람에게 물었다. "정민호래요, 형님." "정민호... 기억해두자." 그 한마디가 유독 서늘하게 들렸다. 마치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암시처럼. 이름 하나가 저 입에서 나온 순간, 나는 이제 내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 이름이 저 남자 머릿속에 새겨졌다. 좋은 의미로 새겨졌을 리 없었다. 서연이 내 팔을 살짝 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우리 빨리 여기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고 싶은데, 부장님이 있어서..." "이건 그냥 회식이 아니에요, 민호 씨." 그녀의 목소리에 진짜 불안이 섞여 있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건 그냥 회식이 아니었다. 남자가 다시 술을 들이켜며 낮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방 안 전체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술잔을 내려놓는 소리마저 위협적으로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몸속에서 아까와 같은 뜨거운 감각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억누르려 했지만, 도무지 통제가 되지 않았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게 아니라, 뭔가가 뱃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아까 그 남자가 내 어깨를 밀쳤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그때는 그냥 화가 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이건 화가 아니었다. 뭔가 더 근본적인, 몸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각이었다. 나는 손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렇게라도 이 감각을 억눌러야 했다. 지금, 여기서, 이 사람들 앞에서, 절대로 터져 나오면 안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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