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다음 날 아침 여섯 시.
사무실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형광등 불빛 아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건조하게 울렸다.
김도윤은 커피 한 잔도 마시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어제 처리하지 못한 서류가 그대로 쌓여 있었다.
박태수의 얼굴은 하루 전보다 더 창백해 있었다.
눈 밑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입술 색조차 평소보다 흐렸다.
"태수야, 괜찮아?"
"괜찮아. 그냥 좀 피곤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우스를 잡은 손가락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김도윤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요즘 계속 저래. 벌써 몇 주째지?'
하지만 물어봐도 대답은 항상 같았다.
그냥 피곤해서, 라는 말뿐이었다.
오전 회의가 끝나자 박기석이 새로운 업무를 던졌다.
"이거 이번 주 안에 마감이니까 다들 야근 각오해."
서류를 책상마다 하나씩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사무실 안에는 낮은 한숨 소리만 새어 나왔다.
박태수가 서류를 집어 드는 손이 살짝 흔들렸다.
"팀장님, 저 이번 주에 조금..."
말을 꺼내려던 순간 박기석이 먼저 등을 돌렸다.
"할 말 있으면 마감 끝나고 해."
박태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서류를 끌어당겨 자리로 돌아갔다.
오후가 되자 사무실 안 공기가 무거워졌다.
에어컨은 켜져 있었지만 열기는 그대로였다.
창문 밖으로 뿌연 매미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박태수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셔츠 등판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태수야, 물 좀 마셔."
김도윤이 컵을 건넸다.
"응..."
박태수의 대답은 힘없이 갈라져 나왔다.
컵을 받는 손끝이 살짝 어긋나 물이 흔들렸다.
그 순간이었다.
쿵.
박태수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의자에서 미끄러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책상 위 서류 몇 장이 함께 바닥으로 흩어졌다.
"태수야!"
김도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려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사무실 안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누구도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 어떡해..."
누군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다들 자리에 앉은 채 눈만 돌리고 있었다.
김도윤은 박태수 곁에 무릎을 꿇었다.
바닥이 무릎에 차갑게 닿는 느낌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의식이 없었다.
숨은 얕고 불규칙했다.
입술이 조금씩 파랗게 변해가는 것 같았다.
"태수야, 정신 차려! 태수야!"
어깨를 흔들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119, 119 좀 불러주세요!"
김도윤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갈랐다.
박기석이 그제야 다가왔다.
느릿한 걸음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말투에는 다급함보다 짜증이 더 실려 있었다.
"박태수 씨 쓰러졌습니다. 지금 바로 구급차 불러야 합니다."
"...일단 좀 쉬게 놔두면 되는 거 아니야?"
김도윤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지?'
귀를 의심했다.
"부장님, 지금 사람이 의식이 없습니다."
"알았으니까 네가 처리해. 나 회의 있어."
박기석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발소리가 회의실 쪽으로 멀어졌다.
손끝이 떨려왔다.
분노인지 두려움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숨을 크게 삼켰다.
김도윤은 직접 119에 전화를 걸었다.
손이 떨려 번호를 두 번이나 잘못 눌렀다.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의식이 없습니다. 주소는..."
떨리는 목소리로 주소를 불러주는 동안에도 박태수의 손을 놓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박태수의 손을 붙잡았다.
차갑게 식어가는 손끝이 느껴졌다.
'죽으면 안 돼.'
숨이 턱 막혀왔다.
주변 시선이 느껴졌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누군가 핸드폰으로 이 상황을 찍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확인할 여유조차 없었다.
구급차가 오기까지 십오 분이 걸렸다.
그 십오 분이 한 시간처럼 길었다.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마침내 복도 저편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뛰어왔다.
"환자 어디 있습니까!"
"여기, 여기입니다!"
대원들이 박태수를 들것에 실었다.
"과로로 인한 실신인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정밀검사 받아야 해요."
대원 한 명이 혈압을 재며 낮게 중얼거렸다.
"혈압이 너무 낮은데."
김도윤은 함께 병원으로 가려 했다.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하지만 대원 한 명이 막았다.
"보호자 아니시면 여기서 대기하셔야 합니다."
단호한 말투였다.
"그럼 연락처라도..."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들것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구급차가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김도윤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점점 멀어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업무가 이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박태수의 빈 자리를 아무 말 없이 정리하고 있었다.
컵과 메모지가 서랍 속으로 치워지는 모습이 낯설게 보였다.
박기석이 회의를 마치고 돌아와 물었다.
"어떻게 됐어?"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래, 잘했네."
그 이상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시 서류를 뒤적이며 자기 자리로 돌아갈 뿐이었다.
그날 밤, 김도윤은 홀로 잔업을 마무리했다.
박태수의 몫까지 더해진 서류 더미가 책상 위에 쌓여 있었다.
숫자를 확인하고 도장을 찍는 손이 자꾸만 느려졌다.
시계는 벌써 밤 열한 시를 넘기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김도윤 혼자뿐이었다.
건물 안은 조용했다.
비상등만 깜빡이는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에도 힘이 없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이 갑자기 열리며 안에서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김도윤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뭐, 뭐지?'
그림자는 사람의 형태가 아니었다.
검은 안개처럼 뭉쳐 있다가 순식간에 그를 향해 덮쳤다.
숨이 턱 막혀왔다.
피할 겨를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