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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쿠구구— 검은 그림자가 김도윤의 몸을 완전히 감쌌다. 시야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발밑에서부터 냉기가 스멀스멀 올라와 다리를 타고 허리까지 번졌다. '이대로 죽는 건가.'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 손끝에서 이상한 열기가 느껴졌다.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다. 죽음 직전에 몸이 마지막으로 발버둥 치는 감각인가 싶었다. 그런데 열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 끝에서 손목으로, 손목에서 팔뚝으로 서서히 번져 올라왔다. 그때였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저절로 켜졌다. 애니홀릭 앱이 자동으로 실행되며 화면이 붉게 빛났다. 빛은 그림자 안에서도 또렷하게 보였다. 마치 어둠을 뚫고 나오는 유일한 빛줄기처럼. [경고: 비정상 접속 감지.] [대상: 김도윤.] [매칭 캐릭터: 홍설아.] [강제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건조한 문구가 화면을 채웠다. 김도윤은 그 문구를 읽을 정신조차 없었다. '뭔 소리야, 이게...' 문장을 끝까지 곱씹을 여유조차 없었다. 정신은 이미 반쯔 나가 있었고, 몸은 그림자에 짓눌려 감각이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화면에서 붉은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빛은 그의 몸을 통째로 삼켰다. "으아악!" 비명이 복도를 울렸다. 온몸이 불타는 듯한 감각이었다. 뼈가 재구성되는 소리가 귓속에서 울렸다. 쩌저적! 관절 마디마디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팔이 짧아지고, 어깨가 좁아지고, 손가락이 가늘어지는 과정이 고스란히 신경을 타고 전달됐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통증에 김도윤은 이를 악물었다. 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림자는 강렬한 빛 앞에서 형체를 잃고 흩어졌다.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복도를 채우던 냉기도 순식간에 걷혔다. 김도윤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의식이 다시 돌아온 건 몇 분 뒤였다. 눈을 뜨자 천장의 조명이 흐릿하게 보였다. 형광등 불빛이 눈을 찔러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뭔가 이상했다. 무게 중심이 낯설었다. 팔을 짚으려는데 팔의 길이가 원래와 달랐다. 머리카락이 길게 흘러내렸다. 색깔은 익숙한 흑색이 아니라 붉은빛이었다. '...이게 뭐지?' 손을 들어보았다. 손가락이 가늘고 작았다. 손톱 끝이 다른 사람의 것처럼 느껴졌다. 손등의 뼈 모양도, 손목의 굵기도 전부 낯설었다. 김도윤은 자신의 손을 몇 번이나 뒤집어 보았다. 복도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보고서야 상황을 이해했다. 거기에는 붉은 머리의 여자가 서 있었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수백 번 보았던 얼굴이었다. 홍설아. '말도 안 돼.' 김도윤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더듬었다. 낯선 감촉이었다. 하지만 분명 자신의 의식이었다. 뺨을 짚은 손끝에서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코, 입술, 눈썹의 위치까지 하나하나 확인하며 김도윤은 몇 번이나 숨을 삼켰다. 목소리를 내보았다. "...여보세요?" 목소리마저 완전히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높고 낭랑한, 애니메이션 속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다리가 풀려 그대로 벽에 등을 기댔다. 등이 벽에 닿는 순간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몸은 분명 여자의 것인데, 그 안에서 소리치고 있는 건 여전히 김도윤 자신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나는 김도윤인데.' 휴대폰을 다시 확인했다. 화면에는 짧은 문장만 남아 있었다. [동기화 완료.] [상태: 홍설아 형태 고정.] [해제 조건 미확인.] 건조한 문장이 눈앞을 스쳤다. '해제 조건이 없다는 거야?' 등줄기로 서늘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이 몸으로 영원히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손끝이 떨렸다. 화면을 몇 번이나 위아래로 밀어봤지만 다른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낯선 목소리가 울렸다. [안녕! 나는 홍설아야! 드디어 만났네!] 밝고 씩씩한 목소리였다.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의 성격 그대로였다. '...이거 지금 내 머릿속에서 말하는 거야?' 김도윤은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목소리는 분명 머릿속에서 울린 게 맞았다. [맞아! 우리 이제 한 몸이 된 거지! 재밌겠다, 그치?] 김도윤은 벽에 기대 눈을 감았다. '재밌긴 개뿔. 이게 무슨 상황이야...' '너는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잖아. 어떻게 진짜로 말을 걸어.' [나도 잘 모르겠어! 근데 확실한 건, 이제 우리 둘이 같이 있다는 거야!] 너무 태평한 말투에 김도윤은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상황은 최악인데, 상대는 지나치게 밝았다. 그러나 몸속 깊은 곳에서 낯선 열기가 여전히 맴돌고 있었다. 손끝에서 작은 불꽃이 파직 튀어 올랐다. 놀라서 손을 흔들었다. 불꽃은 순식간에 꺼졌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방금 그건 분명 진짜 불이었다. [화염 능력이야! 감정에 따라 반응하니까 조심해!] 건조하고 낯선 상황 속, 그 목소리만이 지나치게 활기찼다. '감정에 반응한다고? 그럼 지금처럼 놀라거나 화나면...'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몸으로 뭘 잘못 만졌다가는 복도 전체가 불바다가 될지도 몰랐다. 김도윤은 일어나 복도 끝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다시 확인해야 했다. 다리가 후들거려 몇 번이나 벽을 짚으며 걸었다. 낯선 몸의 균형을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발걸음마다 익숙하지 않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화장실 문 앞에서 걸음이 멈췄다. 안에서 누군가 나오고 있었다. 야근 중이던 청소 직원이었다. 직원의 손에는 대걸레가 들려 있었고, 목에는 수건이 걸려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 있던 게 분명했다. 직원은 김도윤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저, 저기... 누구세요? 여기 직원 아니신 것 같은데..." 직원의 시선이 위아래로 훑고 지나갔다. 붉은 머리에 낯선 얼굴, 게다가 이 시간에 회사 복도에 서 있는 여자라니.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당연했다. 김도윤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뭐라고 설명하지. 나는 도윤인데, 라고 말해봤자...'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홍설아의 목소리가 재잘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목소리조차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눈앞의 직원은 점점 더 경계하는 눈빛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손끝에서는 아직도 옅은 열기가 남아 있었다. '이러다 진짜 불이라도 뿜으면...' 김도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뭐라도 말해야 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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