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최저임금 마법소녀

4화

"저... 그냥, 여기 아르바이트생이에요." 김도윤은 목소리를 낮춰 얼버무렸다. 청소 직원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훑었다. 위아래로, 천천히. "이 시간에요? 이상하네." "네, 야근... 정리하다가요." 다행히 더 묻지는 않고 자리를 떠났다.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김도윤은 숨을 참았다. 김도윤은 서둘러 사무실 창고로 숨어들었다. 문을 닫고 나서야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그날 밤, 그는 창고 구석에서 아침을 맞았다. 차가운 바닥에 등을 대고 눈을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헛된 것이었다. 아침 햇살이 창고 틈으로 스며들 때까지도 손끝은 여전히 낯설었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 부드러운 피부. '제발... 원래대로만이라도.' 기대는 배신당했다. 거울 조각도 없는 창고 안에서, 그는 손등의 촉감만으로 확인했다. 여전히 홍설아의 몸이었다. 다음 날 신분증을 확인해봤지만 얼굴 사진과 지금의 모습은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사진 속 남자의 얼굴과 지금 손에 든 카드에 비친 흐릿한 자신의 얼굴은 완전히 달랐다. '이러면 회사도 못 나가고, 병원도 못 가고...'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혔다. 신분증도 못 쓰고, 얼굴도 낯설고, 목소리도 다르다. 이 상태로 어디를 가든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출근했다. 로비를 지날 때마다 심장이 뛰었다. "저, 신입이세요?" 동료 노혜정이 그를 보고 물었다. 김도윤은 순간 말을 잃었다. '혜정 씨한테는 뭐라고 해야 하지.'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듣지 않는 걸 확인한 후에야 입을 열 수 있었다. "어... 그게, 사실은요." 그는 조용한 곳으로 노혜정을 데려가 조심스럽게 사정을 설명했다. 말을 하는 동안 손끝이 계속 떨렸다. 누가 들어도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노혜정은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이 얼어붙은 채로, 눈만 몇 번 깜박였다. "...진짜 도윤 씨예요?" "네. 목소리는 다르지만, 진짜 저예요." 노혜정은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눈, 코, 입술 하나하나를 확인하듯 훑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진짜 일어나긴 하네요." 의외로 그녀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잠깐 침묵한 뒤, 오히려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회사에서 몇 년 일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더라고요. 그러니 이 정도는... 받아들이는 게 낫죠." 김도윤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누군가 자신의 말을 믿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어깨가 가벼워졌다. "고맙습니다, 혜정 씨." "일단 태수 씨는 병원에서 안정 취하고 있대요. 과로 진단 나왔고요." "다행이네요." 짧은 안도가 스쳤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노혜정이 시계를 보며 자리로 돌아갔다. 김도윤도 서류를 든 채 책상 앞에 앉았지만, 손에 잡힌 펜은 자꾸만 미끄러졌다. 오후, 영업부장 박기석이 사무실에 들어섰다. 큰 목소리로 인사를 받으며 들어오는 그의 걸음걸이는 여느 때처럼 거만했다. 그는 낯선 여자, 즉 홍설아의 모습을 한 김도윤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오, 새로 온 직원인가?" 박기석의 시선이 위아래로 훑었다. 김도윤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하필 지금.' "저, 그게..." 김도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름이 뭐야?" "...홍설아입니다." 순간적으로 나온 대답이었다. 박기석이 다가서며 웃음을 지었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향수 냄새가 진하게 퍼졌다. "이런 데서 일하기 아깐데. 커피 한 잔 하러 갈까?" 그는 김도윤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 했다. 손이 점점 가까워졌다. 손끝에서 순간적으로 열기가 확 치솟았다. '이러면 안 돼...!' 김도윤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등이 책상 모서리에 부딪힐 정도로 급하게. 동시에 문 쪽으로 몸을 틀었다. 빠져나갈 길을 찾는 눈이 사무실을 훑었다. 박기석이 따라오며 팔을 뻗었다. "왜 이렇게 도망가, 부담스러워?" 목소리에는 짓궂은 웃음이 섞여 있었다. "손 대지 마세요." 김도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박기석은 그 말에 오히려 더 다가섰다. 자존심이라도 상한 듯, 한 걸음 더 성큼 다가섰다. 순간 균형을 잃은 그가 앞으로 휘청였다. 구두 뒷굽이 바닥에 걸린 모양이었다. 콰직! 박기석의 머리가 문틀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으악!" 그는 이마를 감싸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붉은 액체가 손등을 타고 바닥에 떨어졌다. 사무실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부장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 다급한 발소리가 뒤섞였다. 김도윤은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발이 바닥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밀친 것도 아닌데.' 손끝에는 아직 미열이 남아 있었다. 분명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뭔가 반응했던 감각이었다. '설마 이 열기가 반발한 건가.' [감정이 격해지면 몸이 자동으로 반응해! 조심해야 해!] 머릿속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이게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거야?' 김도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아무 상처도 없는데, 열기의 흔적만 남아 있는 손이었다. 박기석은 골절 진단을 받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구급대원이 그를 들것에 눕히는 동안에도 사무실은 여전히 웅성거렸다. 사무실은 온통 이 이야기로 뒤덮였다. "저 신입 여자가 부장님 밀쳤대." "아니, 부장님이 먼저 들이댔다던데." 소문은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누군가는 확신에 찬 얼굴로 떠들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노혜정이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 "도윤 씨, 이거 조심해야 해요. 이 회사, 진실보다 힘 있는 사람 말이 먼저예요." 김도윤은 그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자신이 이 사무실에서 얼마나 낯선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그는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손끝의 미열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멀리서 누군가 그를 힐끔거리며 수군거렸다. 시선이 하나둘 그에게 모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들 속에는, 이미 그를 의심하는 눈빛이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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