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천장이 낯설다는 거였다. 젠장, 내 나이 오십셋에 눈을 떴는데 낯선 천장이라니, 이건 또 무슨 술주정의 결과인가 싶어서 나는 잠시 눈만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려 했는데, 이상하게도 몸이 가벼웠다. 관절이 시큰거리지 않았고, 등허리가 뻐근하지 않았으며, 아침마다 반복되던 그 익숙한 통증의 리스트가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기까지 최소 삼 분은 걸리는 게 정상이었다. 오른쪽 무릎부터 시작해서 왼쪽 어깨, 그다음 허리로 이어지는 순서로 통증이 깨어나는 걸 몸으로 체감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게 내 오십셋 인생의 아침 루틴이었는데, 지금은 그 루틴이 통째로 증발해 있었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봤는데, 손끝에 닿는 피부가 지나치게 팽팽해서 나는 순간적으로 숨을 삼켰다. 주름이 없었다. 손도 낯설었다. 마디마디 굳어있던 관절 대신 매끈하고 탄력 있는 손가락이 거기 있었고, 나는 그 손을 눈앞에 가져다 대고 몇 번이나 접었다 펴보며 이게 정말 내 손인지를 확인하려 했다. 손등에 있어야 할 검버섯도 없었고, 오랫동안 담배를 태운 흔적으로 누렇게 물든 손톱도 없었다. 그냥 깨끗했다. 지나치게 깨끗해서 오히려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방 안을 둘러봤다. 좁은 원룸이었는데, 벽에는 못생긴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놓여있고 책상 위에는 종이 달력이 걸려있었다. 책상 한쪽에는 삐삐로 보이는 물건이 놓여있었고, 그 옆에는 카세트테이프가 몇 개 쌓여있었다. 달력을 확인한 순간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1995년 3월. '이거 소품인가' 싶어서 달력을 뜯어보려다가, 그 옆에 붙은 대학 시간표를 발견하고는 손이 멈췄다. 시간표 상단에 적힌 이름은 강도현이었고, 학과는 경영학과, 학번은 95학번이었다. 나는 방바닥에 널브러진 학생증을 주워 사진을 확인했는데, 사진 속 얼굴이 방금 화장실 거울에서 본 그 얼굴과 정확히 일치했다.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뜯어봤다. 이십대 초반의 얼굴이었는데,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피부가 좋았으며, 어디 하나 늙은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십셋 강도현—아니, 이젠 이십 대 강도현이 된 나—의 정신이 이 몸을 빌려 쓰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한 건 바로 그 거울 앞에서였다. 나는 손으로 뺨을 몇 번 두드려보고, 입을 벌려 이빨을 확인하고, 심지어 눈꺼풀을 뒤집어 흰자까지 살펴봤는데, 어디에도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냥 멀쩡한 이십 대 청년의 몸이었다.
그러니까 요컨대, 나는 오십대 남자의 정신을 가진 채로 이십대 초반 대학생 강도현의 몸에 들어와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패닉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건 아마 오십대까지 살아오면서 온갖 황당한 상황을 겪어본 경험 때문일 텐데, 사기당하고 이혼당하고 사업이 세 번 망하고 나면 사람이 어지간한 일에는 무덤덤해지는 법이었으니까. 오히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죽는 것보단 나은 거 아닌가.'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병원 침대였고, 의사가 나지막이 가족에게 뭔가를 설명하던 장면이었으니, 이렇게 젊은 몸으로 다시 눈을 뜬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상황이었다.
'일단 살아있으니 된 거다' 하고 나는 이불을 걷어내며 몸을 일으켰는데, 그 순간 창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 목소리로 뭔가를 외치는 소리였는데, 톤이 지나치게 낭랑하고 애교스러워서 나는 창문으로 다가가 밖을 내려다봤다. 골목에서 웃통을 벗은 청년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는데, 그 전단지를 받아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여자였다. 여자들이 그 청년 주변으로 몰려들어 손을 잡고 사진을 찍고 있었고, 청년은 그걸 즐기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포즈를 취했다. 심지어 한 여자는 청년의 팔뚝을 만지며 소리를 질렀고, 다른 여자는 휴대용 카메라—그 시절 유행하던 필름 카메라였다—를 꺼내 연달아 셔터를 눌렀다. '뭐지, 저건'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텔레비전을 켰는데, 화면에 나온 뉴스 앵커도 남자였고, 그 옆에서 스포츠 소식을 전하는 캐스터도 남자였다. 다들 화면 앞에서 지나치게 꾸민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 화면 하단에 흐르는 자막을 본 순간 나는 진짜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다음 순서는 미남 배우 열전, 오늘의 화제 배우는...]
채널을 돌렸다. 다른 채널에서는 남성 아이돌 그룹의 무대가 나오고 있었는데, 카메라가 유난히 그들의 상체와 표정을 클로즈업하고 있었고, 방청석에는 여자들만 앉아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무대 위 남자들은 상의를 반쯤 풀어 헤친 채 춤을 추고 있었고, 조명은 그들의 근육을 강조하듯 아래에서 위로 쏘아졌다. 방청석의 함성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는데, 그 열기가 화면 밖으로도 전해질 지경이었다. 또 다른 채널을 돌리니 이번엔 성인 방송처럼 보이는 화면이 나왔는데, 등장인물이 전부 벗은 몸의 남자였다. 나는 리모컨을 쥔 손을 멈추고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가, '...이게 뭔데' 하고 혼잣말을 뱉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콘셉트 방송인가 싶었다. 아니면 심야 특집 같은 거려나, 하고 넘기려 했는데, 채널을 돌릴수록 이상한 점이 계속 겹쳐 보였다. 광고에 나오는 자동차 모델도 남자였고, 화장품 광고 역시 남자 모델이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립글로스를 발랐다. 그 다음 광고에서는 향수 모델로 나온 남자가 상반신을 드러낸 채 카메라를 향해 관능적인 시선을 던졌는데, 그 옆에 뜬 문구는 '그녀를 유혹하는 향'이었다. 심지어 방금 전 골목에서 봤던 그 웃통 벗은 청년의 전단지에는 '남성 전용 헬스클럽 개업'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는데, 그 옆에 작은 글씨로 '여성 회원 방문 시 특가 이벤트'라는 문구까지 붙어있었다. 나는 그 전단지의 기억을 곱씹으며 다시 채널을 돌렸는데, 이번엔 예능 프로그램이 나왔다. 남자 진행자 여럿이 나와서 몸매를 자랑하는 코너였고, 여성 방청객들이 심사위원처럼 앉아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뭔가 결정적으로 어긋난 세계였다.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방바닥에 주저앉았는데, 다리가 후들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단순히 시간을 건너온 게 아니라,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룰이 적용되는 세계로 넘어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확신으로 변해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곱씹어보면, 내가 원래 알던 1995년의 대한민국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 시절 텔레비전을 틀면 나오는 건 여자 아이돌이었고, 광고 모델도 여자였으며, 헬스클럽 전단지에 '여성 회원 특가'라는 문구가 붙는 게 아니라 '남성 회원 특가'가 붙는 게 정상이었다. 지금 이 세계는 그 반대였다. 성별의 위치가 통째로 뒤바뀐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게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 일관적이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문밖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도현아, 자니? 학과 오티 갈 준비 안 해?"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잠시 숨을 죽였다.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었는데, 그게 놀라움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몸이 원래 가진 청년다운 반응 속도 때문인지는 구별할 수 없었다. 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문을 열면 어떤 얼굴이 나타날지, 나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문을 여는 순간부터 이 이상한 세계에 대한 본격적인 적응이 시작될 거라는 사실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