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리더님, 도망가도 되나요?

3화

강의실은 백 명은 족히 들어갈 정도로 넓었다. 계단식으로 배치된 좌석에 신규 탐사자들이 삼삼오오 흩어져 앉아 있었다. 다들 어색한 표정으로 옆자리를 살피거나, 협회에서 나눠준 안내 책자를 뒤적이고 있었다. 나는 그 분위기가 낯설지 않았다. 신입 연수 첫날, 어느 회사에 가도 이런 공기가 흐르지 않던가. "뒤에 앉자." 도현이 앞장서서 계단을 올랐다. 준호가 뒤따라오며 투덜거렸다. "왜 굳이 뒤야. 앞에서 봐야 잘 들리지." "뒤에서 딴짓하려고 그런다." "딴짓은 니가 더 하잖아." 우리 셋은 결국 맨 뒷줄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의자는 딱딱했고, 등받이는 미묘하게 뒤로 젖혀져 있어서 자세를 잡기가 애매했다. 준호가 앉자마자 다리를 떨었다. 긴장한 건지, 그냥 습관인 건지 모르겠다. "저기 봐." 준호가 턱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쇼트헤어를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검은색 스포츠웨어 차림에 어깨선이 단단했다. 팔뚝 근육이 옷 위로도 드러날 정도였다. 옆에 앉은 어린 여성도 분홍색 스포츠웨어를 입고 뭔가를 재잘거리고 있었다. 둘은 아는 사이인 듯, 서로 어깨를 부딫히며 웃었다. "쳐다보지 마." 도현이 소곤댔다. "보라고 한 게 누군데." 준호가 되받았다. "보라는 거랑 저렇게 뚫어지게 보는 거는 다르지." 나는 둘의 실랑이를 흘려들으며 강의실을 훑었다. 벽면에 걸린 협회 로고, 천장에 매달린 스크린, 그 아래 강사용 단상. 다 처음 보는 풍경인데도 어딘가 회사 신입 교육장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가 뒤집혀도 형식은 그대로인가 싶어서 웃음이 났다. 강사가 들어오고 강의가 시작됐다. 스탯창 사용법, 레벨업 방식, 스킬 슬롯 관리. 화면에 예시 스탯 창이 떴다. [예시: 힘 12 / 민첩 10 / 체력 14 / 지력 8 / 행운 9] "신규 탐사자 평균 스탯은 대략 이 정도입니다." 강사가 설명했다. 목소리가 딱딱했다. 몇 년째 같은 말을 반복한 사람의 톤이었다. "이 이상은 개인차가 크니 참고만 하시고요. 레벨이 오른다고 무조건 스탯이 균등하게 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각자 던전에서 얻는 경험치의 종류에 따라 편차가 생깁니다." 옆에서 준호가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냥 게임이랑 똑같네." "게임이면 죽어도 다시 살아나지." 도현이 낮게 받아쳤다. 준호가 입을 다물었다. 강사의 설명이 계속됐다. 스킬 슬롯은 처음엔 세 개,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늘어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필기를 하는 척 했지만 실제론 별생각 없이 펜을 굴리고 있었다. 머릿속엔 다른 게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두 여자, 그중 쇼트헤어 여자의 분위기가 계속 신경 쓰였다. 몸매도 몸매지만, 앉아 있는 자세부터가 남달랐다. 등이 곧고, 시선은 강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무심코 옆 사람들의 스탯창이 궁금해졌다. 협회 앱에는 근처 사용자의 공개 스탯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강의 초반에 지나가듯 언급된 기능이었다. 원래 예의상 잘 안 쓰는 기능이라고 했다. 매너의 문제라나.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오히려 더 궁금해지는 게 사람 심리인가 보다. 호기심을 못 참고 앱을 열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몇 번 머뭇거렸다. 그러다 결국 눌렀다. 근처 목록에 이름 몇 개가 떴다. 대부분 회색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비공개. 그런데 하나, 쇼트헤어 여자의 이름만 파란색으로 활성화되어 있었다. 공개 설정이 되어 있었다. [힘 41 / 민첩 38 / 체력 45 / 지력 22 / 행운 19] 숨이 턱 막혔다. 눈을 몇 번 깜빡이며 다시 확인했다. 숫자는 그대로였다. "어이." 준호가 내 화면을 넘겨봤다. 눈이 커졌다. "이게 뭔 숫자냐." "평균이 12인데." "쟤는 뭐 몬스터냐?" "조용히 해." 도현이 다급하게 팔을 잡았지만 이미 늦었다. 준호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울렸다. 그때였다. 쇼트헤어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우리 쪽을 봤다. 눈빛이 서늘했다. 강의실 조명 아래서도 그 눈빛만은 유독 선명하게 느껴졌다. "저기요." 그녀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며 말했다. "지금 제 스탯 보신 거예요?" 강의실 안 시선이 우르르 몰렸다. 백 명 가까운 사람들의 눈이 한꺼번에 우리 쪽으로 쏟아졌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죄송합니다." 내가 고개를 숙였다. "기능이 있어서 무심코..." "무심코 남 정보를 훔쳐보나요?" 그녀 목소리는 차가웠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사실 반박할 이유도 없었다. 잘못한 건 나였으니까. 앱에 기능이 있다고 다 써도 되는 건 아니지 않나. 머릿속으로 자책하면서도, 한편으론 저 숫자가 계속 눈에 밟혔다. 41이라니. 신규 탐사자 평균이 12인데. 옆에 있던 어린 여자가 킥킥 웃었다. "언니, 그냥 신기해서 그런 거예요. 초짜들이잖아요." 말투가 가벼웠다. 놀리는 건지 편들어주는 건지 애매했다. 쇼트헤어 여자는 대답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냉기가 등 뒤까지 느껴졌다. 나는 몸을 최대한 낮추고 숨을 죽였다. "완전 망신당했다." 도현이 낮게 중얼거렸다. "니가 시켰잖아." "난 그냥 앱 켜라고 안 했어. 넌 켜고 확인하고 나한테 보여준 거잖아." "보여달라고 뺏어간 게 누군데." 셋이서 소리 없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강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갔다. 화면이 바뀌었다. 던전 구조 도식이 떴다. 강의가 끝나갈 무렵, 강사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참고로, 던전은 층마다 난이도가 급격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초심자 던전에서도 예상치 못한 이상현상이 보고되고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이상현상이 뭔데요." 누군가 물었다. 앞줄 어딘가에서 나온 목소리였다. "정확한 원인은 협회도 파악 중입니다. 층 구조가 갑자기 바뀌거나, 등급 외 몬스터가 출현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강의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방금까지 웅성거리던 공기가 가라앉았다. 나는 스탯 41의 그녀를 다시 봤다. 그녀도 그 말에 미묘하게 표정이 굳어 있었다. 팔짱을 낀 자세는 그대로였지만, 턱 끝이 살짝 굳는 게 보였다. 저 정도 스탯을 가진 사람도 긴장한다는 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저 사람도 겁내는 게 있구나. "쟤 뭐하는 사람일까." 준호가 물었다. 목소리가 아까보다는 작아져 있었다. "몰라. 근데 우리랑 같은 던전 갈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도현이 말했다. "왜?" "딱 봐도 급이 다르잖아. 우리 초심자 던전에 저런 스탯 가진 사람이 왜 있겠냐." 맞는 말 같았다. 그런데도 뭔가 걸렸다. 그녀가 왜 이 강의실에 있는지, 왜 신규 탐사자 오리엔테이션에 앉아 있는지. 답은 나오지 않았다. 강의가 끝나고 나가는 길, 어린 여자가 우리를 스쳐가며 씨익 웃었다. "조심하세요, 오빠들." 짧은 인사였다. 목소리는 장난스러웠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그 웃음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뭘 알고 하는 말 같았다. 그냥 놀리는 건지, 진짜 경고인지 구분이 안 됐다. "저거 뭐야. 방금 그 말." 준호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이미 두 사람은 인파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몰라. 신경 쓰지 마." 도현이 걸음을 재촉했지만, 그의 표정도 편치 않아 보였다. 그날 밤, 나는 집에 와서 협회 사이트를 뒤졌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잠이 오지 않았다. 낮의 일이 계속 머리에서 재생됐다. 41이라는 숫자, 그녀의 서늘한 눈빛, 그리고 그 어린 여자의 웃음. 최근 이상현상 보고 게시판이 있었다. 협회 홈페이지 구석에, 눈에 잘 안 띄게 배치된 게시판이었다. 몇 건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초심자 던전 3층에서 등급 외 개체 목격.' '벽면 이상 소음 보고.' '2일 전 입장자, 통신 끊김 이후 미귀환.' 마지막 글에는 눈이 좀 더 오래 머물렀다. 미귀환이라니. 협회 시스템상 던전 안에서 실종되면 어떻게 처리되는 건지, 그런 것도 강의에서 다뤄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댓글은 대부분 조작이라거나 오인이라는 반응이었다. '또 어그로다.' '초심자 던전에서 그런 게 나올 리가 없음.' '관리자 확인 부탁드립니다 → 확인 중이라는 답변만 반복.' 하지만 나는 그 게시판을 한동안 닫지 못했다. 화면 위에서 손가락만 몇 번 왔다 갔다 했다. 이틀 뒤면 나도 첫 입장을 한다. 초심자 던전, 1층부터. 별거 아닐 거라고, 강의에서도 그렇게 말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낮에 본 그 굳은 표정이 자꾸 떠올랐다. 41의 스탯을 가진 사람도 저렇게 굳는데, 나 같은 초짜는 대체 뭘 각오해야 하는 걸까.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봤다. 어둠 속에서 눈만 뜨고 있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결국 나는 다시 게시판을 열었다. 미귀환 글을 다시 읽었다. 작성 시간을 확인했다. 사흘 전이었다. 그 뒤로 업데이트는 없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