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리더님, 도망가도 되나요?

4화

탐사 첫날, 우리는 서울 외곽에 있는 초심자용 던전 입구에 섰다. 정식 명칭은 '녹지대 3호 게이트'. 협회 홈페이지에서 몇 번이나 검색해본 이름이었다. 입구는 그냥 커다란 균열이었다. 아스팔트가 갈라진 것처럼 보이는 그 틈으로, 공기가 미묘하게 다른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손을 대보면 서늘했다. "진짜 들어가는 거야." 준호가 마른침을 삼켰다. "우리 등록증도 있고 강의도 들었고." 목소리에 자신감을 넣으려 애쓰는 게 보였다. "등록증 있다고 안 죽는 건 아니잖아." 도현이 말했다. 안경 너머 눈이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저 자식은 원래 겁이 많았다. 게임할 때도 보스 앞에서 세이브부터 하는 성격이었다. 나는 방패를 들었다. 협회에서 대여한 초급 장비였다. 표면에 스크래치가 잔뜩 나 있었다. 나보다 먼저 이걸 든 사람이 몇이나 됐을까. 무겁다는 느낌보다 어색하다는 느낌이 먼저였다. 손목이 자꾸 아래로 처졌다. "규칙 다시 확인." 내가 말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담담하게 나와서 스스로도 좀 놀랐다. "무리하지 않기. 후퇴는 늦지 않게. 정보 없는 구역은 안 간다."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더로서 명령한다. 다들 살아서 나가자." "오오, 리더답네." 도현이 놀렸다. 그래도 웃음이 좀 섞여 있었다. 그 웃음 덕분에 나도 어깨가 조금 풀렸다. "너도 검 놓지 말고 잘 따라와." "네네, 리더님." 균열 안으로 들어가자 풍경이 바뀌었다. 회색 동굴 같은 공간, 발밑은 이상하게 부드러운 흙이었다. 신발이 살짝 눌리는 감촉이 낯설었다. 벽면에는 이끼처럼 보이는 것이 빛을 내고 있었다. 연한 청록색이었다. "밝네." 준호가 중얼거렸다. "강의에서 봤어. 발광 이끼류. 몬스터 서식지 표시용이라던데." 도현이 아는 척을 했다. 그래도 그 지식 덕분에 조금 안심이 됐다. 삼십 분쯤 걷자 첫 몬스터가 나왔다. 슬라임처럼 생긴 젤리 덩어리였다. 색은 탁한 초록색이고, 표면이 물처럼 일렁였다. "저건 약하다고 했지." 내가 확인했다. "강의에서 봤어. 초심자용 몬스터. 체력 낮고 공격력도 낮다고." 도현이 검을 뽑았다. 자세가 어색했다. 검을 처음 잡아보는 사람 특유의 뻣뻣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괜찮아?" "괜찮아. 헬스장 좀 다녔어." "헬스장이랑 실전은 다르잖아." 준호가 끼어들었다. "닥쳐, 해보기 전엔 몰라." 온다. 젤리가 먼저 움직였다. 한 번. 도현이 검을 휘둘렀다. 빗나갔다. 칼끝이 허공을 갈랐다. 두 번. 젤리가 튕겨 올랐다. 도현의 다리를 감싼다. 끈적한 표면이 바짓단을 타고 올라왔다. "으악!" 비명이 터졌다. "떼어내, 떼어내야 돼!" 준호가 소리쳤다. 내가 방패로 밀어냈다. 콰앙! 젤리가 벽에 부딫혔다. 흩어졌다. 사방으로 튄 젤리 조각들이 서서히 흙 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졌다. "괜찮냐." "괜찮아, 괜찮아." 도현이 숨을 몰아쉬었다. 얼굴이 하얬다. 다리를 두어 번 털어냈다. 뭐라도 묻은 것처럼. "체력이 벌써 다 빠졌어." 준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평소 운동 안 했지." "컴퓨터 앞에 십 년 앉아 있었는데 뭐." "그럼 앞으로 십 년은 운동해." "지금 그런 말 할 때야?" 나는 잠깐 도현의 얼굴을 살폈다. 식은땀이 이마에 배어 있었다. 별거 아닌 전투였는데도 이 정도라니. 그때는 그냥 초심자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계속 걸었다. 이번엔 계단 구간이었다. 낮고 좁은 통로였고, 계단 하나하나가 불규칙하게 튀어나와 있어서 걷기가 여간 불편했다. 도현의 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잠깐 쉬자." 그가 헐떡이며 말했다. "우리 이제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준호가 시계를 봤다. "삼십 분에 이 정도면..." "이 정도면 뭐." "아니, 그냥. 걱정돼서." 우리는 계단 중턱에서 잠깐 멈췄다. 도현이 벽에 기대어 물을 마셨다.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물 더 있어?" "두 병뿐이야. 아껴 마셔." "알았어, 알았어." 그때였다. 벽에서 소리가 났다. 스걱, 스걱. 뭔가 벽을 긁는 소리였다. "뭐야, 저거." 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방패를 앞으로 세웠다. 심장이 빨라졌다. 강의에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벽면 이상 소음 보고. 게시판에서 봤던 그 글. 제목까지 기억났다. "3호 게이트 최근 이상현상 보고, 조심하세요." 댓글은 몇 개 없었지만 다들 심상찮은 반응이었다. "강사가 그랬잖아. 최근에 이상현상 보고됐다고." 내가 말했다. "설마 여기서?" 도현이 검을 다시 들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이 검날까지 전해졌다. 소리가 멈췄다. 정적이 더 무서웠다. 귀를 기울일수록 내 숨소리만 크게 울렸다. "돌아갈까." 도현이 물었다. "강의 들었을 땐 별거 아닌 것처럼 말했는데." "강사들은 항상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해. 그래야 사람들이 등록하니까." 준호가 리더답게 판단을 내려야 했다. 그의 얼굴에 갈등이 보였다. 입을 몇 번 열었다 닫았다. "조금만 더 가보자. 규칙대로, 위험하면 바로 후퇴."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규칙은 이미 정해놨으니까. 하지만 도현의 표정은 달랐다. 안경 너머 눈동자가 계단 위쪽 어둠을 향해 있었다. "나는 이제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그가 낮게 말했다. "진짜로 못 가." "조금만 쉬면 괜찮아질 거야." 준호가 다독였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냥— 못 가겠어." 리더와 팀원 사이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긴 순간이었다. 나는 그걸 그때는 그냥 체력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도현이 계단 벽에 등을 붙인 채 주저앉았다. 준호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스걱, 스걱.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엔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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