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탄환은 무공을 모른다

3화

허공에서 딸랑, 하는 소리가 났다. [배정 결과: 총기.] [등급: 하위 무공.] 강도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위는 또 뭔 소리야. [무림대륙 기준, 총기는 화포술의 잡급 계열로 분류됩니다. 실전 활용성 낮음.] 강도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봤다. 다른 애들은 검 뽑고 도 뽑고 있는데 나만 총이냐. [불평은 접수되지 않습니다.] 접수 안 해도 할 건 하는 거고. 주변을 둘러봤다. 야트막한 야산 자락. 발밑엔 마른 풀이 깔려 있었고, 저 멀리 산등성이 위로 구름이 낮게 걸려 있었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외진 곳이었다. 여기가 그 무림대륙이라는 건가. 딱 봐도 촌구석인데. 손을 뻗어봤다. 허공에서 뭔가 묵직한 것이 뚝, 떨어졌다. 강도현은 반사적으로 받아냈다. 검은 금속. 익숙한 무게감. 손에 쥐어진 것은 권총이었다. 특수부대에서 수백 번은 만져본 형태였다. 다만 표면에 낯선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거 내가 쓰던 거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무림대륙의 기술 체계로 재구성된 화기입니다. 탄환은 마나로 생성됩니다.] 마나로 탄환을 만든다고. [정확합니다.] 그럼 총알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거네. [탄환 생성에는 마나가 소모됩니다. 마나가 부족하면 발사되지 않습니다.] 강도현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 그럼 결국 총알 제한 있는 거잖아. [정확합니다.] 와, 이거 완전 사기당한 기분인데. 허공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강도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살폈다. [강도현] [레벨: 1] [직업: 총사(銃士) - 하위 등급] [마나: 50/50] [스킬: 없음] 스킬이 없다고. 아무것도 없어. [초기 스킬은 상황에 따라 각성됩니다.] 각성은 언제 되는 건데. [답변할 수 없습니다.] 또 비공개냐. 강도현은 권총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총구를 살펴보고 슬라이드를 당겨봤다. 철컥, 하는 소리가 났다. 손에 익은 감각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적어도 이 몸에 밴 감각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거지. 손잡이를 쥐어봤다. 그립감도 그대로였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어보고, 조준선을 따라 시선을 맞춰봤다. 수천 번 반복한 동작이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이 정도면 뭐, 총만큼은 문제없이 쓰겠는데. 마나 50이 얼마나 되는 건지 감이 안 잡히네. [마나 1당 탄환 1발 생성 가능합니다.] 그럼 나 지금 50발 쏘면 끝이라는 거네. [정확합니다.] 강도현의 얼굴이 서서히 구겨졌다. 무협 세계 와서 총 쥐여줬는데 총알이 오십 발이라니. 이거 완전 함정 카드 아니냐. 권총 하나 쥐여주면서 실탄은 딱 오십 발. 이건 무슨 예산 아껴 쓰라는 공무원 마인드도 아니고.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야, 명천아. 이거 진짜 억울한데. 다른 사기 캐릭터들은 마나 무제한이고 뭐고 다 있을 거 아니야. 대답이 없었다. 강도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 대답 없는 건 여전하네. 그럼 어쩌겠냐, 일단 몸으로 때워야지. 혼자 중얼거리며 흙길을 향해 걸었다. 걸음마다 발밑에서 흙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바스락. 바스락. 태양이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하늘 색이 붉게 물들어갔다. 산등성이 위로 걸린 구름도 붉게 번져갔다. 한참을 걷던 강도현은 문득 걸음을 멈췄다. 마나 50에 스킬 없음. 이거 진짜 이상한데. 뭔가 놓친 게 있는 느낌이었다. 특수부대에서 배운 습관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무기를 받으면 반드시 전체를 다 뜯어보는 것.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 것. 지급받은 장비는 절대 대충 넘기지 말라고 했었지. 권총을 다시 들어 살펴봤다. 이번엔 좀 더 꼼꼼했다. 총구부터 슬라이드, 손잡이까지 손끝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확인했다. 손잡이 아래쪽에 아주 작은 문양이 하나 더 있었다. 처음엔 그냥 장식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미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거 뭔데. 손톱만 한 크기였다. 눈을 가까이 대고 봐야 겨우 보일 정도였다. 이런 걸 어떻게 눈치채라는 거야. 손끝으로 문양을 눌렀다. 순간 허공에 새로운 알림이 떠올랐다. [히든 스킬 발견: 무한 재장전.] 강도현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 [탄환 생성 시 마나 소모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단, 발사 간격에 제한이 존재합니다.] 마나 소모가 없다고. 그럼 총알이 무한이라는 거잖아. [정확합니다.] 강도현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야 이거, 이거 완전 다른 얘기잖아. 아까 그 오십 발이 뭐. 이제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되는 거잖아. [발사 간격은 0.3초로 제한됩니다.] 0.3초면 초당 세 발이잖아. 그게 뭐 대수야, 나한테는. 특수부대에서 실전 사격만 몇 년을 했다. 손목의 감각, 조준의 속도, 반동 제어까지 몸에 새겨진 능력이었다. 0.3초 제한 따위는 오히려 여유 있는 수준이었다. 이거 완전 잡급으로 위장한 사기캐 아니냐. 허공을 보며 히죽 웃었다. 명천아, 너 이거 알고 나한테 준 거지. [답변할 수 없습니다.] 대답 안 하는 거 보니까 알고 있었다는 소리네. 야, 그럴 거면 처음부터 말을 해주지. 사람 놀리는 재미로 사는 거냐. [답변할 수 없습니다.] 똑같은 말 두 번 하는 거 보니 확신이 드네. 강도현은 권총을 허리춤에 꽂았다. 손끝으로 총 손잡이를 한 번 툭 두드렸다. 몸을 돌려 다시 흙길을 따라 걸었다. 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좋아, 그럼 이제 이 무한 재장전 갖고 뭘 할 수 있는지 좀 확인해봐야겠는데. 머릿속으로 계산이 돌아갔다. 초당 세 발이면 일 분에 백팔십 발. 마나 걱정 없이. 총알 걱정 없이. 몸만 버텨주면 되는 싸움. 이 정도면 무공 배운 놈들이랑도 어떻게든 붙어볼 만하지. 문제는 이 세계에서 총이라는 게 얼마나 낯선 물건인지, 상대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모른다는 거였다. 검이나 도라면 눈에 익겠지만, 이 손안의 물건은 누구도 본 적 없는 형태일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부딪쳐보면 알겠지. 마침 멀리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명이었다. 거칠고 험한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 사이로 여자의 비명 같은 소리도 들렸다. 강도현의 걸음이 뚝 멈췄다. 귀를 기울였다.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흐릿하게 사람 형체 몇 개가 움직이는 것도 보였다. 강도현의 눈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타이밍 죽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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