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탄환은 무공을 모른다

4화

비명이 들린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길은 가팔랐다. 발밑에서 자갈이 굴렀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스칠 때마다 손으로 걷어냈다. 숨소리는 일정했다. 훈련받은 몸은 이런 지형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조금 내려가자 작은 초가 마을이 보였다. 낮은 담장, 무너진 지붕 몇 개. 마당에 널브러진 항아리 하나가 깨져 있었다. 마을이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했다. 사람이 사는 흔적은 있는데 사람 그림자는 하나도 없었다.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가 바람에 흔들렸다. 다들 어디 숨은 거야. 강도현은 몸을 낮췄다. 담장을 따라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마을 중앙 공터에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대략 여덟 명. 허름한 무복을 입고 각자 병장기를 든 채였다. 칼, 몽둥이, 삼지창 비슷한 것도 하나 보였다. 무기는 제각각인데 다루는 폼은 하나같이 어설펐다. 저것도 병장기라고 들고 다니냐. 그 앞에 노인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등이 굽고 흰머리가 헝클어진 노인이었다. 노인 옆에는 젊은 여자가 팔을 붙잡힌 채 끌려가는 중이었다. 놔라, 이놈들. 노인이 소리쳤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영감, 조용히 해라. 곡식이랑 손녀만 내주면 목숨은 살려줄 테니. 사내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이죽거렸다. 배가 나오고 눈이 째진 사내였다. 손에 든 칼을 노인의 목 가까이에 슬쩍 갖다 댔다. 여자가 몸부림쳤다. 할아버지, 저 신경 쓰지 마시고 도망가세요. 어딜 도망가라는 게냐, 이 못된 놈들. 노인이 사내의 다리를 붙잡았다. 사내가 발로 노인을 걷어찼다. 노인이 흙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흙먼지가 얼굴에 그대로 묻었다. 주변 사내들이 낄낄거렸다. 강도현은 담장 뒤에 몸을 숙인 채 상황을 살폈다. 5류 산적 새끼들이 딱 하는 짓이네. 특수부대 시절 인질극 진압 훈련이 몸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인원 배치, 무장 상태, 시야각. 눈으로 순식간에 계산이 끝났다. 여덟 명. 무기는 다 근접용. 원거리 견제 없음. 지형은 완전히 개방된 공터. 은닉이나 매복 가능성 없음. 이 정도면 워밍업이지. 권총을 뽑아 들었다. 손에 익은 무게가 그대로였다. 담장 위로 몸을 살짝 세웠다. 조준선이 우두머리 사내의 어깨에 맞춰졌다. 실전은 항상 첫 방이 제일 중요하다. 기선을 잡아야 나머지가 편해진다.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성이 산골짜기에 울렸다. 메아리가 두어 번 튕겨 돌아왔다. 우두머리 사내가 어깨를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이거. 다른 사내들이 일제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무림에서 원거리 병기라고 해봐야 활 정도였다. 이런 파열음과 이런 속도는 처음이었다. 누, 누가 활을 쏜 거냐. 활 아닌 것 같은데. 사내들끼리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강도현은 담장을 넘어 뛰어나왔다. 타앙, 타앙. 연달아 두 발이 발사됐다. 사내 둘이 다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짧은 비명이 겹쳐서 울렸다. 뭐냐 저놈은. 요, 요술을 부리는 거냐. 사내들이 우왕좌왕했다. 몇 명은 뒤로 물러났고 몇 명은 오히려 앞으로 튀어나와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방향도 없고 목표도 없었다. 강도현은 여유롭게 걸으며 총구를 옮겼다. 마치 사냥터에서 표적을 고르는 사람 같았다. 요술은 아니고, 그냥 총이라는 건데. 사내 하나가 칼을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무공이랬자 헛둘 소리를 지르며 뛰는 게 전부였다. 발놀림도 엉망이고 자세도 무너져 있었다. 기본도 안 된 놈이 칼은 왜 들고 다니는지. 강도현은 몸을 살짝 틀며 총구를 그의 무릎에 겨눴다. 타앙. 사내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얼굴을 흙바닥에 처박은 채 신음했다. 덤빌 거면 좀 세게 덤벼야지. 이래서야 재미가 없잖아. 남은 사내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우두머리는 이미 어깨를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 이건 무공이 아니잖아. 이런 게 어딨어. 몰라. 나도 처음 써봐서. 강도현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는 달아. 근데 그 손녀는 왜 붙잡고 있었는데. 강도현이 여자를 붙잡고 있던 사내에게 총구를 겨눴다. 사내가 여자를 놓고 두 손을 들었다. 노, 놓았습니다. 놓았어요. 타앙.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알이 그의 어깨를 뚫었다.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말은 늦게 하고 사람은 먼저 놓았어야지. 이런 건 순서가 중요한 거야. 순식간에 여덟 명 중 다섯 명이 쓰러졌다. 남은 세 명이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려 했다. 발이 서로 엉켜 넘어질 뻔한 놈도 있었다. 강도현은 그들의 발목을 향해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타앙. 세 명이 차례로 바닥을 굴렀다. 흙과 신음이 뒤섞였다. 어디 도망가냐, 인사도 안 하고. 마나 소모 없이 발사되는 감각이 낯설면서도 짜릿했다. 손목에 익숙한 반동만 남고 총알 걸릴 걱정은 전혀 없었다. 재장전도 필요 없이 계속 당기면 그대로 나갔다. 이거 진짜 사기 스킬이었네. 전생에서 이랬으면 진급이 몇 번은 더 빨랐을 텐데. 마지막 사내가 신음하며 바닥에 엎어졌다. 마을 공터는 순식간에 부상자들로 가득 찼다. 아무도 제대로 일어서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강도현은 총을 허리에 꽂으며 노인 쪽으로 다가갔다. 여자가 노인을 부축하려 애쓰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노인이 강도현을 올려다봤다. 얼굴에 흙과 상처가 뒤섞여 있었다. 눈빛에는 아직 놀란 기색이 가득했다. 은, 은공이시오. 은공은 무슨, 그냥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여자가 강도현을 바라봤다. 얼굴이 예쁘장했다. 겁에 질린 눈이었지만 그 안에 안도감이 스쳤다. 손끝이 아직 떨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은공. 강도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 여기 정리부터 좀 하고 얘기하죠. 부상자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신음하며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깨를 부여잡은 손이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두, 두목한테 알려야 해... 강도현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두목. 뭔 소리야, 이 새끼들 말고 위에 또 있다는 거야. 노인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놈들은 흑풍채라는 산채의 하수인들이오. 산 너머에 본채가 있소. 강도현은 흑풍채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그럼 이건 그냥 앞잡이였다는 거네. 여자가 노인을 부축하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할아버지, 얼른 마을로 돌아가요. 이만하면 됐어요.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놈들이 곡식을 노렸다면 곧 본채에서 사람을 더 보낼 거다. 이런 잔챙이들 몇 명 다친 걸로 끝날 리 없다. 여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노인의 말이 맞다는 걸 아는 얼굴이었다. 강도현은 부상자들을 훑어보며 생각했다. 이거 딱 봐도 앞으로 더 귀찮은 일이 생기겠다는 얘기네. 한 놈 손봐줬더니 뒤에 열 놈이 더 나오는 그림이잖아. 노인이 강도현의 소매를 붙잡았다. 은공, 부탁이 있소. 말은 나중에 듣죠. 일단 여기 상황이 안 끝난 것 같아서. 마을 뒤편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두각, 두각, 두각. 다들 고개를 돌렸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누군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말 위에 탄 사람의 형체가 점점 뚜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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