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포식하는 갓난 도사

2화

밤이 깊었다. 강서윤은 부엌일을 마치고 아이 곁에 누워 이미 잠들어 있었다. 하루 종일 물을 긷고 빨래를 하고 도현을 씻긴 그녀의 손끝에는 아직도 물기가 남아 있었다. 그 손이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채 아이의 조그만 발을 살짝 덮고 있었다. 도현은 그녀의 숨소리를 들으며 홀로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갓난아기의 몸은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지만, 그의 의식만은 전생의 기억을 온전히 품은 채 또렷했다. 밤마다 이렇게 잠들지 못하고 천장을 바라보는 것이 어느새 익숙한 일과가 되어 있었다. 전생에서도 그는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몸이 늙어갈수록, 병이 깊어갈수록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 다음 날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 습관이 몸을 바꿔서도 그대로 이어진 모양이었다. 방 안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도현은 그 변화를 즉시 감지했다. 온도가 변한 것도, 소리가 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무언가가 '있다'는 감각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전생에서 수많은 생사의 갈림길을 지나본 감각이었다. 죽음의 기척을 알아채던 그 오래된 감각이, 이 작고 무력한 몸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이건...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렇게 직감했다. 살아있는 것의 기척과는 다른, 차갑고 건조한 위화감이었다. 천장 구석에서 반투명한 형체가 스며나왔다. 스르르- 형체는 사람의 팔뚝만 한 크기로, 안개처럼 흐릿했지만 분명한 윤곽을 갖고 있었다. 눈이라고 짐작되는 자리에서 검은 점 두 개가 도현을 향해 고정되었다. 그 시선은 어미인 강서윤이 아니라, 오직 도현만을 향해 있었다. 마치 방 안에 있는 두 사람 중 하나만이 눈에 들어온다는 듯이. '저게... 보인다.' 도현은 그렇게 확신했다. 전생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였다. 평생을 살아오며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 이론 따위는 무의미했다. 그것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이의 이불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는 서두름이 없었다. 마치 사냥감이 도망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짐승의 걸음걸이 같았다. 도현은 몸을 뒤척이려 했지만, 갓난아기의 근육은 그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팔을 조금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겨웠다. '움직여야 한다.' 그는 속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몸은 무거운 진흙처럼 그의 의지를 삼켰다. 전생에서라면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쯤은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지금은 그 손가락조차 제 뜻대로 펴지지 않았다. 그 무력함이 더 낯설고 참담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문득 오래전, 병실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항암 치료로 다리에 힘이 빠져 제대로 걷지 못하던 시절, 물리치료사가 그렇게 말했다.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는 마음으로 먼저 길을 내야 한다고. 지금 이 순간, 그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온몸으로 이해가 갔다. 형체가 아이의 가슴 위에 완전히 내려앉았다. 스윽- 서늘한 감각이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듯했다. 통증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가 빨려나가는 느낌이었다. 마치 생명 그 자체가 조금씩 새어나가는 것 같았다. 몸 안 깊은 곳, 심장이 뛰는 자리 어딘가에서 온기가 새어나가 허공으로 흩어지는 감각이었다. 도현은 그 감각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본능이 경고를 보냈다. '이대로 두면 죽는다.' 전생에서 병으로 죽어가던 순간의 감각과 닮아 있었다. 서서히 스러지는, 그러나 확실한 소멸의 예감. 숨이 옅어지고, 의식의 가장자리가 흐릿해지고,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그 과정을. 그는 이미 한 번 겪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다시는 그런 방식으로 끝나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죽지 않는다. 이번엔 아니다.' 그는 반사적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으앙--!" 갓난아기의 울음은 밤공기를 찢을 듯 날카로웠다. 그러나 그것이 형체를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을 뿐이다. 목청을 쥐어짜듯 소리를 내는 것,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뚱이가 서글펐다. 강서윤이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로 아이를 살폈다. 잠이 덜 깬 얼굴로 손을 뻗어 아이의 이불을 다시 여며주었다. "우리 도현이, 왜 그래. 배고파?"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실려 있었지만, 그 시선은 아이의 가슴 위에 얹혀 있는 형체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그녀의 손이 아이의 배 위를 쓸어내렸다. 형체가 있는 바로 그 자리를, 아무런 저항도 느끼지 못한 채 그대로 스치고 지나갔다. '보이지 않는 건가.' 도현은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요물은, 오직 자신에게만 보이는 존재였다. 어머니의 눈에는 그저 우는 아이만 있을 뿐, 반투명한 것의 존재는 아예 인식되지 않았다. 손을 대도, 시선을 던져도, 그녀에게는 그저 텅 빈 공기일 뿐이었다. 그 사실이 도현을 더욱 절망케 했다. 위협은 실재했으나, 도움을 청할 대상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 전생에서도 그는 늘 혼자였지만, 이번만큼 철저한 고립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때는 적어도 두 다리로 서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다. 지금은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와 마주하고 있었다. 강서윤은 아이를 안아 올리며 젖을 물렸다. 그녀는 그것이 배고픔이나 놀람 때문이라 여겼다. 자연스러운 대응이었고, 그 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녀의 품은 따뜻했다. 그 온기가 등을 타고 스며들었지만, 가슴 위에 남은 서늘한 감각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도현이 젖을 삼키는 순간, 몸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영양이 아니었다. 생명력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온기 어린 활력이 혈관을 타고 퍼져나갔다. 마치 오랫동안 얼어있던 물길에 갑자기 뜨거운 물이 흘러드는 것 같았다. 그 기운은 배 속에서 시작해 가슴으로, 다시 팔다리 끝으로 번져나갔다. 형체가 그 기운에 반응했다. 부르르- 형체의 윤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뜨거운 것에 닿은 벌레처럼, 아이의 가슴에서 떨어져나가려 몸부림쳤다. 검은 점 두 개가 흔들리며 초점을 잃었다. 형체는 물러나려는 듯 몸을 뒤로 젖혔지만, 완전히 떨어져나가지는 못하고 여전히 아이의 몸에 매달려 있었다. '지금이다.' 도현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본능이 그렇게 속삭였다. 몸속에 퍼진 그 뜨거운 기운을 붙잡아,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온몸의 힘을 끌어모아 울음으로 그것을 토해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는 다시 크게 울었다. "으아아앙--!" 그 울음과 함께, 몸속의 뜨거운 기운이 한꺼번에 밖으로 뻗어나갔다. 형체는 마치 불에 데인 듯 몸을 뒤틀며 천장 쪽으로 튕겨나갔다. 검은 점 두 개가 순간 커졌다가, 곧 흐트러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스러졌다. 스르르...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형체는 그렇게 방 안에서 자취를 감췄다. 남은 것은 방 안 가득했던 서늘한 위화감이 서서히 걷혀가는 감각뿐이었다. 강서윤은 아이가 젖을 물고 다시 얌전해진 것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 배가 고팠구나." 그녀는 아이의 볼을 쓰다듬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숨소리가 다시 느리고 규칙적으로 변해갔다. 방금까지 방 안에서 벌어진 일을 그녀는 끝내 알지 못한 채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도현은 그 품 안에서 가만히 어둠을 응시했다. 위협은 사라졌지만,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 형체가 남긴 잔상이 여전히 그의 감각 어딘가에 들러붙어 있었다. 마치 살갗 아래에 얇은 실 한 가닥이 남아있는 것처럼, 완전히 걷히지 않은 서늘함이 미세하게 감지되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는 그렇게 직감했다. 전생에서 수많은 싸움을 겪으며 얻은 감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 번의 습격은 우연일 수 있지만, 두 번은 필연이다. 그리고 그 필연이 다시 찾아올 때, 지금처럼 순전히 운으로 넘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도현은 어둠 속에서 눈을 감지 않았다. 갓난아기의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검도 없고, 내공도 없고, 심지어 제 몸조차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 다음번 그것이 다시 나타난다면 오늘처럼 운 좋게 울음소리 하나로 쫓아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강서윤의 품속에서, 도현은 그렇게 오래도록 천장의 어둠을 노려보고 있었다. 방 안의 공기는 다시 평온해졌지만, 그 평온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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