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던전 포식 귀환자

5화

빛이 얼굴을 정면으로 때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부우웅. 드론이 좁은 통로 안까지 들어와 있었다. 렌즈가 나를 향해 있었다. 붉은 녹화 표시등이 켜져 있었다. 망했다. 머릿속으로 몇 가지 선택지가 스쳐 지나갔다. 도망친다. 부순다. 그냥 무시하고 나간다. 다 소용없었다. 이미 렌즈는 나를 정확히 물고 있었고, 저 붉은 불빛은 초 단위로 어딘가에 신호를 보내고 있을 거였다.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접선을 썼다. 드론과의 거리를 지우고 그 뒤로 이동했다. 픽. 드론 몸체를 손으로 잡아 카메라 방향을 벽 쪽으로 돌렸다. 렌즈가 흙벽을 찍고 있는 사이, 나는 배터리 칸을 뜯어 전원을 껐다. 조명이 꺼지고 통로가 다시 어둠에 잠겼다. 하지만 이미 몇 초는 찍힌 뒤였다. 그 몇 초 안에 뭐가 담겼을지 계산해봤다. 통로의 흙벽, 흩어진 고블린 사체 셋, 그리고 나. 얼굴까지 나왔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확신할 수 없다는 게 더 무서웠다. 나는 드론을 그대로 든 채 입구 쪽으로 달렸다. 발밑에서 고블린의 초록빛 피가 질척하게 밟혔다.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멈춰 서서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접선을 세 번 연달아 써서 통로를 빠져나왔다. 몸속 마력이 급격히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속이 텅 비는 듯한, 배가 고픈데 배 속이 아니라 뼈 안쪽이 고픈 듯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멈출 상황이 아니었다. 입구 밖으로 나오자 새벽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차가웠다. 몸에 남은 열기가 순식간에 식는 게 느껴졌다. 초소의 불빛이 여전히 저 멀리서 깜빡이고 있었다. 경비 인원이 교대 시간을 놓쳤는지, 아니면 아직 이상을 감지하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드론을 근처 수풀에 던져 넣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통제선을 벗어났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저 드론이 발견되면 분명 조사가 들어갈 거고, 통신 두절 위치를 역추적하면 통로 입구까지도 금방 특정될 거다. 그 안에 남겨둔 고블린 사체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아니, 애초에 처리할 방법이 있기는 한가.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렀을 때 나는 이미 동네 초입에 들어서 있었다. 새벽 배달 트럭이 편의점 앞에 짐을 내리고 있었고, 골목 어귀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힐끔 보고는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했다. 나만 아니었다. 집에 도착한 건 해가 뜨기 직전이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거실 불이 켜져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엄마는 잠옷 위에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고, 아빠는 안경을 코끝에 걸친 채 신문을 무릎에 얹어두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이 시간까지 자지 않고 있었다는 게, 말보다 먼저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 엄마의 목소리가 낮았다. 순간 여러 대답을 머릿속에서 굴려봤다. 편의점, 산책, 친구 집. 다 소용없는 변명이었다. 옷에 아직 흙과 초록빛 피가 얼룩져 있었으니까. 게다가 신발 밑창에서는 흙 부스러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던전에요." 나는 그냥 말했다. 엄마의 눈이 커졌다가, 다시 천천히 가늘어졌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대신 나를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훑었다. 상처가 있는지 확인하는 눈빛이었다. "뉴스에서 봤어. 새벽에 통제구역 근처에서 드론 하나가 신호를 잃었다고. 그거 너야?" 생각보다 빨랐다. 정부의 대응이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아니, 정부가 아니라 부모님의 정보력이 빠른 건가. "네." 아빠가 신문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나를 빤히 봤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뭔가를 가늠하는 얼굴이었다. 회사에서 부하 직원의 보고서를 읽을 때 짓던 표정과 비슷했다. "거기 왜 갔어." 나는 대답 대신 소파에 앉았다.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접선을 세 번 연속으로 쓴 후유증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이 상황 자체가 주는 무게였는지 구분이 안 됐다. 그리고 처음으로, 지구에 돌아온 뒤로 처음으로, 그 이야기를 꺼냈다. "저쪽 세계에서 이십 년 산 몸이, 여기 음식으로는 안 채워져요. 사흘째 거의 못 먹었어요. 저기 안에 있는 것들, 몬스터요. 그걸 먹어야 배가 채워져요." 말을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숨겨온 게 이제야 밖으로 나온 느낌이었다. 밥을 먹어도, 죽을 먹어도, 몸속 어딘가가 계속 비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도, 그게 위장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결핍이라는 것도 처음으로 소리 내어 말한 거였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봤다. 눈시울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우는 건 아니었지만, 울음 직전의 얼굴이었다. 손끝이 무릎 위에서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럼 거기 계속 가야 한다는 거잖아." 아빠가 낮게 말했다. "네." "위험한 건 알지?" "알아요." "드론에 찍혔으면, 그거 조사 들어갈 거야. 요즘 정부가 저 던전 때문에 예민해. 외국에서도 관심 갖는다더라." 아빠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답게, 이런 종류의 소식을 뉴스로 챙겨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평소엔 야구 스코어나 확인하던 사람이 언제부터 저 던전 관련 뉴스를 저렇게 상세히 알고 있었나 싶었다. 아마 내가 사라졌던 시간 동안, 그리고 돌아온 뒤로도, 계속 그쪽 뉴스만 챙겨봤을 거였다. 한동안 거실에 정적이 흘렀다. 시계 소리만 크게 들렸다. 냉장고 모터가 돌아가는 낮은 진동음도 들렸다. 평소엔 신경 쓰지도 않던 소리였는데, 지금은 그것마저 귀에 박혔다.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드론, 찾으러 오면 뭐라고 할 거야." "모른다고 해야죠." "네 옷은." 나는 옷을 내려다봤다. 초록빛 얼룩이 소매와 무릎에 짙게 남아 있었다. 흙과 뒤섞여 거의 검게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산책에서 묻힐 수 있는 얼룩은 아니었다. 엄마가 일어나서 세탁실 쪽으로 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슬리퍼 끄는 소리가 거실을 지나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세탁실 문 여는 소리로 이어졌다. "벗어. 지금 세탁기 돌리면 아침 되기 전에 마를 거야." 나는 잠깐 아무 말도 못 했다. 옷을 갈아입으라는 그 한마디가, 어떤 긴 설명이나 위로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아빠는 다시 신문을 펴 들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하지만 그 신문을 넘기는 손가락이,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만약 물어보면, 어제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고 할 거야." 아빠가 신문을 넘기며 말했다. "엄마도 나도, 그렇게 말할 거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채는 데 몇 초가 걸렸다. 부모님이 지금, 나를 위해 거짓말을 하겠다고 정한 거였다. 아무런 협의도, 긴 설득도 없이. 그냥 그렇게 하겠다고. 두 사람 사이에 눈빛 한 번 교환하는 것도 없었다. 이미 정해진 일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괜찮다, 라고 생각하려는데 목이 이상하게 좁아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세탁실로 옷을 벗어 던졌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물이 채워지고, 세제 냄새가 흔들리고, 통이 회전하는 규칙적인 소리. 나는 그 앞에 잠깐 서 있었다. 물이 처음엔 맑았다가, 곧 옷에서 초록빛과 갈색이 뒤섞여 빠져나오는 게 창 너머로 보였다. 엄마가 그걸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냥 세탁기 옆에 서서, 팔짱을 낀 채 화면 속 회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씻고 자." 엄마가 말했다. "밥은 아침에 먹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욕실로 갔다. 뜨거운 물이 몸에 닿는 순간, 그제야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 날 오전, 뉴스는 예상보다 더 커져 있었다. 통제구역 내 드론 신호 두절 사건을 두고 정부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화면 아래로 자막이 빠르게 지나갔다. 기자들의 질문이 마이크 너머로 겹쳐 들렸다. "신호 두절 원인이 무엇입니까." "인명 피해 가능성은." "드론이 촬영한 영상이 있습니까." 대변인은 손에 쥔 종이를 한 번 내려다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조사 결과, 신호 두절은 지형에 의한 통신 장애로 추정됩니다. 다만 안전성 확보를 위해, 국제 기준에 따른 합동 안전점검단의 조기 파견을 요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국제 조사단. 어제 뉴스에서 검토 중이라고 했던 게, 하루 사이에 결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검토와 결정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짧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는 밥그릇을 앞에 두고 화면을 봤다. 밥알이 목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른 채 씹고 있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국을 떠 주고 있었다. 국그릇을 내 앞에 놓는 손이, 평소보다 조심스러웠다. 아빠는 신문 대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안경 너머의 눈이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조사단이 오면." 아빠가 낮게 말했다. "저 던전 안까지 들어갈 거 아니야?" 대답할 말이 없었다. 만약 그들이 그 통로 안, 내가 어제 남겨두고 온 고블린 사체 셋과 흩어진 자리를 발견한다면. 흙바닥에 남은 발자국, 접선을 쓴 흔적이 있을 리는 없지만, 뭔가 인위적인 흔적이라도 남았다면. 그리고 그 조사단 중 누군가가, 어제 그 드론이 찍은 마지막 몇 초짜리 영상을 손에 넣는다면. 영상 속엔 뭐가 담겼을까. 얼굴이 나왔을까, 옷의 특징이 잡혔을까. 몇 번을 돌려봐도 확신할 수 없었던 그 몇 초가, 이제는 국가 단위의 조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밥맛을 완전히 없앴다. 밥그릇을 쥔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이번엔 힘을 조절할 여유가 없었다. 딱. 두 번째 그릇에도 실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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