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새벽 여섯 시, 기숙사 세면대 앞에서 손등에 난 상처를 들여다보다가 나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실습 중에 삼급 괴이의 발톱에 긁힌 자리였는데, 분명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깊었던 상처가 하룻밤 사이에 흉터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수도꼭지를 틀어 찬물을 손등에 흘려보내며 나는 몇 번이나 상처가 있던 자리를 문질러 보았다. 아무 감각도 없었다. 아픔도, 흔적도, 심지어 그날의 기억을 증명해줄 딱지 자국조차 없었다.
'이번엔 또 얼마나 빨리 없어진 거야.'
나는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보며 중얼거렸고,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걸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청화학원에 입학한 지 삼 년째, 나는 여전히 최하위 낙제생 명단에서 이름을 빼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단 하나, 내 능력이 지나치게 근거리에서만 발동한다는 것이었다.
강씨 가문이라고 하면 구마사 업계에서 알아주는 명문가였고, 조부님도 아버지도 모두 특급 구마사로 이름을 날리셨지만, 나에게 흐른 피는 어딘가 잘못 배합된 것처럼 능력이 뒤틀려 있었다. '무효화'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지만 실상은 내 몸에서 반경 오십 센티미터 이내에 들어온 저주나 초능력을 지워버리는, 말 그대로 붙어야만 쓸모가 있는 능력이었으니까. 원거리 공격이 주류인 구마 전투에서 이런 능력은 쓸모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고, 나는 매 학기 성적표에서 D를 넘지 못한 채 조롱거리로 남아 있었다.
세면대 물을 잠그고 수건으로 손을 닦는 동안에도 나는 자꾸만 손등으로 시선이 갔다. 매끈한 살결 위로 형광등 불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렸는데, 그 매끈함이 오히려 소름 끼치게 낯설었다. '남들은 다치면 흉터가 남는데, 나는 왜 아예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걸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 질문을 삼 년 동안 계속 던졌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했다.
식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는 동안에도 나는 어제의 상처 자국을 다시 확인했는데, 손등은 매끈했고 그 흔한 붉은 자국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상하지, 원래 무효화는 이런 식으로 상처까지 치유해주는 능력이 아닌데.' 나는 몇 번이나 같은 의문을 곱씹었지만 답을 찾지 못한 채 식당 문을 열었다.
식당은 이미 소란스러웠다. 창가 쪽 테이블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던 동급생들이 나를 발견하자마자 낮게 웃음소리를 흘렸고, 그중 하나가 팔짱을 낀 채 말을 걸어왔다.
"오, 강도경. 오늘도 삼급 괴이한테 도망만 다녔다며?"
옆에 있던 다른 녀석이 거들었다.
"ㅋㅋ 무효화면서 왜 도망을 다니냐, 그냥 붙으면 되잖아."
나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며 식판을 들고 자리로 향했지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낮은 킥킥거림은 여전히 귓가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식판 위에 놓인 미역국이 흔들거리는 걸 보며 나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 걸 깨닫고서야 겨우 숨을 골랐다.
'저런 말에 일일이 반응하면 지는 거야.'
나는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지만, 밥맛은 이미 반쯤 사라진 뒤였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나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왜 나만 이런 식으로 능력이 뒤틀린 걸까.' 조부님의 무효화는 반경 십 미터까지 발동했다고 들었는데, 나는 그 오십분의 일도 못 미치는 거리에서만 능력이 작동했다. 게다가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실습실 벽에 걸린 저주받은 부적이 내가 지나가기만 해도 스르르 힘을 잃었고, 어느 날은 동료가 실수로 발동시킨 소환진이 내 근처에서 갑자기 흐트러졌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나는 매번 그 순간을 기억했고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한번은 실습 조교에게 슬쩍 물어본 적도 있었다. "혹시 무효화 능력이 자가 치유까지 포함될 수 있나요?" 조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데. 강도경 학생, 혹시 다른 잠재능력이 숨어 있는 거 아니야?" 나는 그 말을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그 가능성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채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밥을 다 먹고 실습동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나는 게시판에 붙은 오늘의 임무표를 확인했다. 내 이름 옆에는 여지없이 'C랭크 정기순찰 - 지하 3구역'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다른 동급생들의 이름 옆에는 B랭크, A랭크 임무가 줄줄이 붙어 있는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배정이었지만, 나는 이제 그런 것에 상처받지 않을 만큼 익숙해져 있었다.
게시판 옆에서 임무표를 함께 확인하던 동기 하나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야, 강도경. 넌 또 지하냐? 거기 삼급 괴이 말고는 아무것도 안 나오는 데잖아."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 그래도 일은 일이니까." 그 대답이 스스로도 얼마나 궁색하게 들리는지 알았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오늘도 별일 없이 순찰만 돌면 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장비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는데, 그 순간의 나는 이 평범한 하루가 몇 시간 뒤 완전히 뒤집히리라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장비함 앞에서 순찰용 부적과 결계 감지기를 챙기는 동안에도, 나는 손등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매끈한 피부, 흔적 없는 살결. 장비함 유리문에 비친 내 얼굴은 여전히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고, 눈 밑에는 옅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치료 능력까지 있는 건 아닐 텐데.'
나는 그 생각을 애써 접어두고, 결계 감지기의 배터리 잔량을 확인한 뒤 어깨에 순찰 배낭을 걸쳤다. 배낭 안에서 부적 뭉치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은 어두웠고, 형광등 몇 개는 이미 수명을 다한 듯 깜빡거리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계단참에 부딪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는데, 그 소리가 마치 뭔가를 예고하는 것처럼 느껴져 나는 괜히 걸음을 서둘렀다.
'별일 없을 거야. 지하 3구역, 삼급 괴이 몇 마리, 늘 하던 대로 순찰만 돌고 오면 끝.'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며 지하로 이어지는 마지막 계단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