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쿵! 쿵! 쿵!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나는 소녀를 등 뒤로 감춘 채 무너진 철문 쪽을 응시했다. '이번엔 또 뭐야.' 감지기는 여전히 고장 난 상태였지만, 굳이 기계의 도움이 없어도 느껴지는 기운만으로도 짐작이 갔다. 아까 소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좀 더 원초적이고 짐승 같은 압박감이었다.
'설마 하나 더 있는 거야?'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발끝에 힘을 주었다. 오늘 하루 야근 수당도 못 받는 판에 특급 괴이까지 상대해야 한다면 이건 진짜 노동청에 신고할 사안이었다. 그런 실없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사이, 발밑의 콘크리트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지하 깊은 곳에서 거대한 발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고, 먼지가 천장에서 부슬부슬 떨어져 내렸다.
철문이 안쪽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순간, 거대한 형체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몸통만 해도 삼 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그 괴이는, 마치 곰과 뱀을 억지로 이어붙인 것 같은 흉측한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등에서는 검은 촉수 같은 것이 여러 갈래로 뻗어 나와 있었다. 촉수 하나의 굵기만 해도 사람 허벅지만 했고, 그 끝은 마치 낫처럼 예리하게 갈라져 있어 살짝만 스쳐도 몸이 두 쪼가리가 날 것 같았다. '저건 특급이잖아.' 나는 도감에서 본 특급 괴이의 특징을 떠올리며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특급 괴이는 학원 내에서도 최상위 구마사 몇 명만이 겨우 상대할 수 있는 존재였고, C랭크 낙제생인 내가 마주할 등급이 절대 아니었다. 교재에서 배운 대로라면 특급 괴이 하나를 처리하는 데 A랭크 구마사 세 명이 붙어야 정상이었고, 그마저도 사상자가 나오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이건 도망쳐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뒤에는 아직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소녀가 있었고, 등 뒤로 그녀의 손이 내 옷깃을 꽉 붙잡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옷깃을 쥔 힘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데리고 뛸까.' 하지만 저 몸통을 보건대 달리기로는 절대 거리를 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특급 괴이의 저 거대한 몸집이 한 걸음만 내디뎌도 우리와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질 게 분명했다.
괴이가 촉수를 휘두르는 순간, 나는 소녀를 감싸안으며 몸을 굴렸다. 콰드드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촉수가 조금 전까지 우리가 서 있던 자리를 갈라놓았고, 바닥의 콘크리트가 종이처럼 찢어지는 광경에 나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거 맞으면 그냥 죽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계속 몸을 움직였는데, 이상하게도 몸이 평소보다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원래대로라면 이 정도 구르기만 해도 무릎이 다 까지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몸이 솜사탕처럼 가벼워진 것 같았고, 근육이 반응하는 속도도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이것도 저 아이 때문인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소녀의 손이 내 몸에 닿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 이런 이상한 현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촉수 하나가 다시 우리를 향해 날아드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저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촉수가 내 손끝에 닿는 순간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부딪히면 팔이 부러지거나 최소한 큰 상처를 입어야 정상이었을 텐데, 촉수는 마치 얼음이 뜨거운 물에 녹듯 스르르 형체를 잃고 흩어져버린 것이다.
"……어?"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며 얼빠진 소리를 냈다. 손끝에는 상처 하나 없었고, 오히려 방금까지 촉수가 있던 자리에는 검은 재 같은 것만 희미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괴이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움직임을 멈췄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소녀를 안은 채 뒤로 물러났다. '이게 무효화 능력이라고?' 지금까지 내가 알던 무효화는 반경 오십 센티미터 안에서 미약한 저주나 부적 정도를 지우는 수준이었는데, 방금 그건 특급 괴이의 촉수를 통째로 소멸시킨 것과 다름없었다.
교수님들이 늘 말하던 "무효화 계열은 랭크가 아무리 높아도 실전에서는 반쪽짜리 능력"이라는 소리가 갑자기 웃기게 들렸다. 지금 이 순간, 이 반쪽짜리 능력이 특급 괴이의 필살기를 그냥 없는 것처럼 지워버렸으니 말이다. '이게 진짜 내 능력인가, 아니면 저 아이 때문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시간이 없었다.
괴이가 다시 포효하며 몸통 전체를 밀어붙였다. 커어어억—! 하는 울음소리가 지하 공간 전체를 뒤흔들었고, 나는 소녀를 안은 채 필사적으로 몸을 굴려 그 거대한 몸통을 피했다. 몸통이 지나간 자리의 바닥이 움푹 꺼져 들어갔는데, 마치 덤프트럭이 지나간 흙길 같은 흔적이 남았다. 그 순간 소녀의 손이 다시 내 팔을 붙잡았는데, 손끝에서부터 미약한 냉기가 전해져오는 걸 느꼈다.
'설마 저 아이가 나한테 힘을 더해주는 건가.' 나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몸이 움직이는 속도와 반응이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해져 있다는 걸 느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박동이 불안이 아니라 어떤 기묘한 확신처럼 느껴졌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낙제생 주제에 이런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괴이의 다음 공격이 날아드는 순간, 나는 이번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손을 뻗었다. 뒤에서 소녀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두려움보다 궁금함이 더 컸다. 방금 그 현상이 우연이 아니라면,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있었다.
손끝이 괴이의 몸통에 닿는 순간, 마치 거대한 얼음 조각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콰드드드득—!
그리고 정적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