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저녁상 위로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한도윤은 젓가락을 든 손을 멈추지 않았다.
밥그릇 바닥이 보였다.
국그릇도 비었다.
반찬 접시 세 개도 이미 빈 자리였다.
김치 국물이 말라붙은 흔적만 남았다.
젓가락 끝이 빈 접시 바닥을 몇 번이나 훑고 지나갔다.
배 속에서 낮은 울림이 났다.
허기가 아니었다.
허기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계속 파여나가는 감각이었다.
마치 배 속에 아궁이가 있어서, 그 아궁이가 아무리 불을 넣어도 채워지지 않는 것 같았다.
도윤은 그 감각을 열넷이 되도록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더 없어요."
어머니 윤미경이 낮게 말했다.
목소리에 물기가 섞여 있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손끝이 떨렸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다.
그것을 참아내는 게 힘들어서였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을 주고, 숟가락을 상 위에 조용히 내려놓는 그 짧은 동작 하나에도 온몸의 신경을 써야 했다.
맞은편에 앉은 형 한도영이 젓가락을 놓았다.
그의 밥그릇에는 아직 밥이 남아 있었다.
반쯤 넘게 남은 밥이었다.
형은 그것을 조용히 도윤 쪽으로 밀었다.
그릇이 상 위를 미끄러지며 낮은 마찰음을 냈다.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됐어."
"먹어."
"됐다니까."
"먹으라니까, 도윤아."
"형이나 먹어."
도영은 더 밀지 않았다.
그저 자기 밥그릇을 끌어당겨 다시 조용히 먹기 시작했다.
그 손끝이 살짝 굳어 있었다.
젓가락을 쥔 손가락 끝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형은 그것을 숨기려 밥그릇에 얼굴을 더 가까이 붙였다.
아버지 한승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밥상 끝에 앉아 젓가락을 내려놓은 채였다.
눈은 도윤을 향했다가 다시 밥상으로 떨어졌다.
그 시선 속에는 걱정도 있었고, 지겨움도 있었고, 둘 다 아닌 다른 무언가도 있었다.
말로 옮기지 못한 그 감정이 그의 눈꺼풀 아래에서 몇 번이나 오르내렸다.
청담은 산골 마을이었다.
밭이 좁았다.
짐승도 적었다.
겨울이면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눈에 막혀 몇 달씩 고립되기도 했다.
한 해 농사로 한 가족을 먹이는 것도 빠듯했다.
집집마다 쌀독 바닥을 긁는 소리가 겨울 내내 들렸다.
그런데 한도윤이라는 아이는 어른 셋이 먹을 양을 혼자 먹어치웠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어깨는 두 배는 넓었다.
뼈대부터가 이상했다.
손목 굵기가 다른 아이들의 팔뚝만 했다.
마을 의원도 그 이유를 몰랐다.
읍내에서 온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맥을 짚어보고, 눈을 들여다보고, 배를 두드려보고도 고개만 저었다.
마을 사람들도 몰랐다.
그저 수군거릴 뿐이었다.
저 집 둘째는 뭔가 씌었다고.
아니면 산신령이 잘못 붙었다고.
도윤 자신도 정확히는 몰랐다.
다만 가끔, 잠들기 직전, 낯선 풍경이 스쳐 지나갈 때가 있었다.
본 적 없는 하늘.
회색빛이 도는, 청담의 밤하늘과는 다른 색이었다.
본 적 없는 길거리.
돌이 아니라 무언가 매끈한 것으로 덮인 바닥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려 하면 늘 흩어졌다.
마치 물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잡으려는 것과 같았다.
잡히는 순간 형체가 없어졌다.
식사가 끝나고 상을 물릴 때, 도윤이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젓가락 소리가 멈췄다.
윤미경의 손이 상 위에서 멈춰 섰다.
행주를 쥔 손가락이 굳었다.
한승재는 고개를 들었다.
도영도 동생을 바라보았다.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곳간굴에 들어가겠습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초침 하나가 넘어갈 때마다 그 소리가 도끼로 나무를 패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윤미경의 눈이 먼저 흔들렸다.
"도윤아."
"결정했어요."
"아직 어린데."
"열넷이면 늦은 편이에요. 마을에 저보다 어린 애들도 들어갔다 나왔어요."
"살아서 나온 애가 몇이나 되는데."
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이었다.
곳간굴에 들어간 차남 중 절반은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온 절반도 손가락이 없거나, 다리를 절거나, 눈빛이 예전과 달랐다.
그중 한 명은 마을 우물 옆에 앉아 하루 종일 허공을 보고 웃기만 했다.
또 한 명은 밤마다 소리를 지르다 결국 산 너머 친척집으로 보내졌다.
그래도 마을에서는 그것을 관례처럼 받아들였다.
장남은 집과 밭을 물려받고, 차남은 스스로 먹을 길을 찾는다.
오래된 규칙이었다.
청담이 생긴 이래로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규칙이었다.
누구도 그것에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할 여력이 없었다.
저항해봤자 굶어 죽는 건 결국 온 가족이었다.
윤미경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소리 없이, 빠르게.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어깨가 작게 흔들렸다.
숨을 참는 소리가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
도윤은 그 모습을 오래 볼 수 없었다.
시선을 밥상 쪽으로 떨어뜨렸다.
상 위에 놓인 빈 그릇들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어머니."
"……."
"저 하나 먹는 걸로 온 가족이 힘들어지는 거 알아요."
"그런 말 하지 마라."
"사실이니까요."
"사실이라도 하지 말라고 했다."
윤미경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녀는 도윤의 팔을 붙잡았다.
손톱이 옷감을 파고들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한승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준비는 되어 있느냐."
짧은 물음이었다.
그 안에는 이미 결과를 짐작하고 있는 사람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칼도 있고, 밧줄도 있어요. 마을 창고에서 빌렸습니다."
"곳간굴 안에 뭐가 있는지는 아느냐."
"모릅니다. 아무도 정확히는 모른다고 들었어요."
"돌아온 이들도 말을 못 하더냐."
"몇 마디는 들었어요. 어둡다고. 넓다고. 그리고… 뭔가 숨소리가 들린다고."
한승재는 한동안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말릴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 있었다.
동시에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표정도 함께였다.
그는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한 번 쓸었다.
그 손짓이 마치 뭔가를 억누르려는 것 같았다.
한승재는 결국 고개를 떨어뜨렸다.
"가라."
짧은 말이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허락이 아니라, 포기에 가까웠다.
그 한마디를 뱉고 나서, 그는 다시 젓가락을 들지도, 상을 정리하지도 못했다.
그저 상 위 어딘가를 오래 바라보았다.
윤미경이 도윤의 손을 붙잡았다.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손은 도윤의 손보다 훨씬 작았다.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
"그럴게요."
"약속해."
"약속해요."
"내 눈을 보고 말해."
도윤은 어머니의 눈을 마주 보았다.
붉게 젖은 눈이었다.
"약속해요, 어머니."
윤미경은 그제야 손에서 힘을 조금 풀었다.
하지만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도영은 그 모든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눈동자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것이 안심인지, 다른 무엇인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형은 잠시 입을 열려다가 다시 다물었다.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기 밥그릇에 남은 몇 알의 밥을 젓가락으로 계속 옮겨댔다.
상을 다 물린 뒤에도 방 안의 무거운 공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윤미경은 부엌으로 가서 그릇을 씻는 대신 한참을 문턱에 서 있었다.
등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한승재는 마당으로 나가 담배를 태웠다.
평소보다 한 대를 더 태웠다.
그날 밤, 도윤은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배 속에서는 여전히 그 파이는 감각이 계속되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낯선 냄새가 떠올랐다.
피 냄새.
젖은 흙냄새.
그리고 뭔가 구워지는 냄새.
어디서 맡았는지 기억나지 않는 냄새들이었다.
분명 청담에서는 맡아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청담의 냄새는 짚 냄새, 젖은 흙, 아궁이 재였다.
그런데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분명 다른 냄새였다.
그것들이 자꾸 도윤을 곳간굴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마치 몸속 어딘가에 그 굴로 향하는 실이 매어 있는 것 같았다.
도윤은 몸을 뒤척였다.
이불이 서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옆방에서 낮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였다.
그 규칙적인 소리가 오늘 밤만큼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창밖에서 낮은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마당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해가 지면 대부분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산짐승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도윤은 몸을 일으켰다.
마루 밑에서 삐걱,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자신이 먼저 놀랐다.
숨을 멈추고 잠시 귀를 기울였다.
발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창문 너머 그림자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림자의 크기가 어른 한 사람 정도였다.
느린 걸음이었다.
서두르지 않는, 오히려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한 걸음이었다.
웅—
귀 안쪽에서 낮은 울림이 지나갔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마치 귓속 깊은 곳에서 종이 울리다가 그 소리가 몸 전체로 퍼지는 것 같았다.
손끝부터 시작해서 팔, 어깨까지 그 울림이 번져나갔다.
도윤은 창문에 손을 짚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창호지 너머로 보이는 그림자의 윤곽이 조금씩 뚜렷해졌다.
마당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드러났다.
노태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