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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정신이 서서히 돌아왔다. 이도윤은 눈을 떴다. 사무실 천장이 어렴풋이 보였다. 형광등 하나가 깨져 반쪽만 남은 채로 깜박이고 있었다. '살아있나.' 몸을 움직이려 했다. 놀랍도록 가벼웠다. 조금 전까지 온몸을 짓누르던 통증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오히려 힘이 넘쳤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활력이었다. 손끝을 꼼지락거려 보았다. 관절 하나하나가 낯설도록 매끄럽게 움직였다. 이도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손을 짚었는데, 유리 조각이 손바닥을 스쳤다. 그런데 아프지 않았다. 베인 자리를 들여다봤지만 피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이게... 왜 안 아프지?' 주변을 둘러보다가 숨을 삼켰다. 사무실이 엉망이었다. 깨진 유리, 흩어진 서류, 부서진 파티션. 책상 하나는 반으로 쪼개져 있었고, 프린터는 저쪽 벽 밑에 처박혀 있었다. 마치 태풍이 지나간 듯했다. '내가 이런 걸...?' 기억이 뚝뚝 끊겨 있었다. 통증이 시작된 이후는 거의 남은 게 없었다. 야근하다가 갑자기 속이 뒤틀리듯 아팠던 것. 그 다음은 캄캄했다. 동료들은 다 어디 갔을까. 그 생각이 들자마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사무실 안에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렸다. 달칵. 이도윤은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한 여학생이 들어섰다.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나이답지 않게 차가웠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도 아닌데 발소리마저 정갈하게 울렸다. "이도윤 씨." 낮고 단정한 목소리였다. 이도윤은 반사적으로 몸을 굳혔다. "...누구세요?"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황가린이라고 해요." 여학생은 짧게 자신을 소개했다. "삼족오 소속 안내원입니다." 이도윤의 눈이 흔들렸다. '삼족오? 그게 뭔데?'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회사도 아니고, 관공서도 아닌 것 같았다. 황가린은 부서진 사무실을 둘러보며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예상보다 규모가 크네요." 그녀는 깨진 파티션 조각을 발끝으로 슬쩍 밀어보았다. "저기,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도윤 씨." 황가린이 그의 말을 끊었다. "본인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이 가시나요?" 이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짐작이... 안 갑니다." 황가린은 잠시 그를 응시했다. 시선이 그의 얼굴에서 손, 그리고 다시 눈으로 옮겨갔다. 마치 뭔가를 확인하는 눈빛이었다. 그러다 짧게 말했다. "각성하셨습니다." "...네?" "뱀파이어로요." 사무실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형광등 깜박이는 소리만 짧게 딸깍거렸다. 이도윤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톱이 평소보다 조금 더 길어 보였다. 끝이 미묘하게 뾰족했다. 입안에서 느껴지던 그 이상한 감각이 다시 떠올랐다. 혀로 슬쩍 훑어보니 송곳니 부분이 이상하게 날카롭게 만져졌다. '뱀파이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 그러나 눈앞의 폐허가 그 말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깨진 유리, 부서진 책상,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나은 손바닥의 상처. "장난치시는 거죠?" 이도윤이 겨우 물었다. 목소리에 애써 힘을 줬지만 끝이 흔들렸다. 황가린은 대답 대신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각성 확인: 개체명 이도윤 / 종류: 미분류 뱀파이어 계열 / 발현 조건: 야간) 건조한 문구가 화면에 떠 있었다. 글자마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것처럼 딱딱했다. 이도윤은 그 문구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미분류...?' 읽을수록 실감이 나지 않았다. "등급이 아니라 계열만 나온 거예요." 황가린이 설명을 덧붙였다. "이도윤 씨 같은 경우는 흔치 않아서요." "흔치 않다는 게..." "보통 뱀파이어는 낮에도 어느 정도 능력이 유지되는데." 황가린이 창밖 어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창밖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이도윤 씨는 완전히 야간에만 발현되는 유형이에요." "그럼 낮에는..." "낮에는 아마 평범한 사람보다도 무기력하실 거예요." 황가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몸이 그렇게 설계된 거니까요." 이도윤은 그 말을 곱씹었다. 낮의 무기력. 밤의 이상한 활력. 지난 며칠간의 증상들이 하나로 이어졌다. 며칠 전부터 낮만 되면 몸이 무겁고, 커피를 몇 잔을 마셔도 정신이 흐릿했던 것. 밤이 되면 이상하게 눈이 밝아지고 신경이 곤두섰던 것. 그게 다 우연이 아니었던 걸까. '그게... 그런 이유였다니.' 숨이 턱 막혀왔다. 황가린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드릴 말씀, 잘 들으셔야 해요." 목소리에 처음으로 무게가 실렸다. 이도윤은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도윤 씨는 지금부터, 국가의 관리 대상입니다." 황가린의 눈빛이 한층 더 가라앉았다. 말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도윤은 그 말의 의미를 되짚어보려 했으나,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것 같았다. '관리 대상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황가린은 그런 그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짧게 덧붙였다. "내일 아침, 저희 쪽 사람이 다시 찾아올 겁니다." "내일... 아침이요?" "네. 그때까지는 최대한 조용히 계세요." 황가린의 시선이 부서진 사무실 곳곳을 훑었다. "이 정도 규모면, 이미 신고가 들어갔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 말에 이도윤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신고. 경찰. 머릿속으로 온갖 단어들이 스쳐 지나갔다. "저, 저기,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도윤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나 황가린은 이미 몸을 돌리고 있었다. 문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건 내일 오시는 분이 설명해 드릴 거예요." 그녀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돌아보지 않은 채로,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참고로." 이도윤은 숨을 죽였다. "뱀파이어 각성자 중에, 순순히 관리에 따른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달칵. 문이 닫혔다. 사무실 안에는 다시 이도윤 혼자만 남았다. 깨진 형광등이 여전히 딸깍거리며 깜박였다. 이도윤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방금 들은 말을 되새겼다. '순순히 따른 사람이 거의 없었다니.' '그럼 그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된 거지?' 손끝이 다시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떨림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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