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30년 전 죽은 영웅

4화

태민은 협회 로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여전히 그에게 꽂혀 있었고, 그중 몇은 낮게 웃으며 지나쳤다. 로비 한복판에 우두커니 선 그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삼십 년 전 방식 그대로의 갑주 자락이, 유리와 강철로 뒤덮인 이 공간에서는 마치 시대를 잘못 찾아온 유령처럼 보였을 것이다. '낯설다.' 태민은 속으로 그렇게 인정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자신이 알던 세계와 어긋나 있었다. 벽면 가득한 화면에는 처음 보는 문자와 숫자가 흐르고 있었고, 사람들의 손에는 작고 빛나는 판 같은 물건이 들려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사람조차 마땅치 않았다. 지나가던 젊은 직원 두 명이 태민을 힐끗거리며 소곤댔다. "저 사람 뭐야, 코스프레야?" "협회 로비에서 저러고 다니면 안 되는데..." 태민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자신을 향한 시선의 성질이 호의가 아니라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조용히 벽 쪽으로 물러섰다. 소란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거기, 잠깐." 낮고 굵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돌아보니 오십대 중반의 사내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정장 차림이었지만, 눈빛만은 낡은 갑옷을 입던 시절의 것이었다. 태민은 그 눈빛을 먼저 알아보았다. 옷이 바뀌고 얼굴에 주름이 늘어도,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었다. "박대수." 태민이 먼저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에 확신이 없었다. 사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손에 든 서류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철퍽- 종이 몇 장이 흩어졌지만, 그는 줍지 않았다. "...태민이냐." 그가 겨우 그렇게 물었다. "오랜만이군, 대수." 태민이 짧게 답했다. 대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십대 후반 젊은이의 얼굴이 삼십 년 전 그대로 눈앞에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이 태민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이마, 눈매, 턱선. 하나도 변한 곳이 없었다. 마치 세월이 이 남자만 건너뛰고 지나간 것 같았다. "살아있었냐. 살아있었어, 진짜..." 대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는 다 죽은 줄 알았다. 새벽의 발톱, 그 층에서 전멸했다고. 협회 기록에도 그렇게..." "기록이 틀렸다. 아니, 반은 맞다." 태민이 낮게 말했다. "나만 살았으니까." 대수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태민의 어깨를 붙잡았다가, 이내 손을 떨어뜨렸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잡은 것이 정말 사람인지, 확인하려는 손짓이었다. "미안하다." 그가 말했다. "그때 지원대를 더 넣어야 했는데, 위에서 막았어. 최심부는 손실이 너무 크다고. 나는... 나는 그냥 물러났다." '원망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태민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대수 역시 살기 위해 물러났을 뿐이었다. 그때의 대수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 파티 리더였고,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거스를 만한 힘이 없었다. 죽은 자를 대신해 산 자를 탓하는 것은 쉬웠지만, 태민은 그 쉬운 길을 택하지 않기로 오래전에 마음을 정했다. '죽은 자를 탓해서 산 자가 얻는 것은 없다.' 스승의 말이 불쑥 떠올랐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삼십 년 전, 그가 검을 처음 배우던 시절 스승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지난 일이다." 태민이 짧게 말했다. "지금은 이 세상이 뭔지가 먼저다." 대수는 그 말에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눈앞의 이 남자는 원망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았을 뿐이고, 이제는 그 낯선 삶을 이어가야 할 처지였다. "...일단 따라와라." 대수가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대충 주워 들며 말했다. "여기서 이야기할 건 아니다." +++ 대수는 그를 근처 사무실로 데려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여전히 낯설었다. 높은 건물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고, 그 사이로 처음 보는 탈것들이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삼십 년이다, 태민아." 대수가 커피 한 잔을 그의 앞에 놓았다. 김이 오르는 검은 액체였다. 태민은 그것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입안에 퍼졌다. "이게 뭔가." 태민이 물었다. "커피다. 삼십 년 전에도 있었을 텐데, 넌 안 마셔봤나?" "산 아래 마을에는 있었지. 던전 안에서는 마실 겨를이 없었다." 대수가 짧게 웃었다. 웃음 끝이 서글펐다. "던전은 이제 재난이 아니라 산업이야." 대수가 말을 이었다. "관광 코스도 있고,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방송도 있다. 처음엔 우리도 그저 재앙이라고 불렀는데, 삼십 년이 지나니까 사람들이 그걸로 돈을 버는 방법을 찾아냈지." "중계라니." 태민이 미간을 좁혔다. "사람들이 던전 안을 보면서 즐기는 거야. 스트리머라 부르는 이들이 목숨 걸고 들어가서 그걸 보여주지. 그게 돈이 된다." 태민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가 목숨을 걸었던 곳이, 이제는 누군가의 구경거리라는 사실이 낯설었다. 그 짐승이 울부짖던 통로가, 이제는 화면 너머 사람들이 손에 뭔가를 들고 즐기며 보는 풍경이 되었다는 것을 그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목숨을 걸고 들어가서 보여준다고 했나." 태민이 되물었다. "그럼 그 안에서 죽는 자들도 있을 텐데." "있다." 대수가 씁쓸하게 답했다. "많지는 않아. 등급 낮은 던전은 이제 어느 정도 안전하게 관리되니까. 하지만 등급이 높은 곳은... 여전히 사람이 죽어나가." "우리가 뚫었던 그 던전은." 그가 물었다. "지금은 어떻게 됐나." 대수의 표정이 잠깐 흐려졌다. 서류철을 뒤적이던 손이 멈췄다. "7712번, 관리 등급 A급으로 재분류됐다. 지금도 공략이 진행 중이야. 이번 주에 큰 방송사가 생중계로 들어간다더군." 태민은 그 숫자를 듣는 순간 속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7712번. 자신이 살아 나온, 동료들이 전멸했다고 기록된 그 던전이었다. 삼십 년이 지났다는데, 그 안의 짐승들은 여전히 살아 사람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곳의 최심부는." 태민이 낮게 물었다. "아직 뚫리지 않았나." "아무도 그 층까지 못 갔다. 너희 이후로 시도한 파티가 여럿이었는데, 최심부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돼서 지금은 그 위층까지만 공략 대상이야." 대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쾅- "본부장 대리님! 큰일 났습니다." 젊은 직원이 헐떡이며 뛰어들었다. 이마에 땀이 흥건했고, 손에 든 판 같은 물건을 쥔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7712번 던전, 방송 중에 통제 불능 몬스터 출현했다고 합니다. 스트리머 하나가 고립됐어요!" 대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는 의자를 박차듯 일어섰다. "뭐? 통제 불능이라니, 등급 심사는 분명 A급으로..." "그게, 지금 실시간으로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이쪽으로요!" 직원이 다급하게 손에 든 판을 내밀었다. 화면 속에는 어두운 통로와, 그 속에서 무언가에 쫓기며 도망치는 사람의 모습이 비쳤다. 비명 같은 소리가 판 안에서 흘러나왔다. 태민은 그 이름 하나를 들은 것 같았다. '7712번.' 자신이 죽었다고 기록된, 자신이 살아 나온 그 던전이었다. 그가 등을 돌려 통로 저편으로 사라진 지 삼십 년, 그곳은 여전히 사람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대수가 판을 든 손을 그대로 태민 쪽으로 돌렸다. 화면 속 통로의 벽면이, 태민의 눈에 익숙했다. 손끝이 저릿해질 만큼 낯익은 구조였다. "저기." 태민이 화면을 가리키며 낮게 말했다. "저 통로... 내가 아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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