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휴대폰은 사당 뒷마당 구석, 찢어진 패딩 조각 사이에 처박혀 있었다. 눈에 반쯤 파묻힌 채였다. 액정이 반쯤 깨졌지만 다행히 전원은 들어왔다. 화면을 켜자마자 부재중 전화 스물세 통과 메시지 알림이 폭탄처럼 쏟아졌다.
숫자를 보는 순간 손이 먼저 굳었다. 스물세 통이라는 숫자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루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전화를 걸 수 있다는 게, 짐승의 몸으로 며칠을 보낸 나에게는 오히려 낯선 감각이었다.
대부분은 여동생 강하나였다.
"오빠 어디야"
"오빠 왜 전화 안 받아"
"뉴스에 이상한 거 나왔는데 그거 오빠 출근길 근처 아니야?"
"오빠 진짜 장난치는 거 아니지"
"오빠 나 지금 경찰서 가야 되나"
메시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짧고 격해졌다. 문장에서 문장부호가 하나씩 사라졌다. 나중에는 마침표도 없이 툭툭 끊어지는 말들만 남았다. 마지막 메시지는 새벽 세시에 도착해 있었다.
"오빠 진짜 죽었으면 나 어떻게 살아"
그 한 줄에서 나는 처음으로 짐승의 몸이 아니라 인간의 심장으로 아플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심장이 있기는 한지도 모르겠는 이 거대한 몸뚱이 어딘가에서, 뭔가가 쿡쿡 찔러대는 기분이었다. 손이 떨렸다.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한참을 그 화면만 들여다봤다.
박도현이 옆에서 넌지시 물었다.
"동생인가?"
"네. 저희 부모님 일찍 돌아가시고, 저희 둘뿐이라……"
"그럼 답은 해줘야지."
"뭐라고 하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잖아요. 오빠가 용 됐다고 하면 믿겠어요?"
"그것도 나름 재밌는 상황이겠군. 동생이 기절할지도 모르지."
"지금 웃을 때가 아닙니다."
그 말에 설연이 사당 툇마루에서 코웃음을 쳤다.
"사실대로 말하면 그 애가 산속까지 쫓아올 거다. 그편이 낫겠느냐."
"쫓아오면요? 어차피 저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영물의 기운을 못 느끼는 인간이라도, 있는 곳은 찾아올 수 있다. 애정이라는 게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나는 잠시 고민한 뒤, 짧은 답장을 보냈다.
"살아있어. 일이 좀 있어서 며칠 연락 못 할 것 같아. 걱정 마."
버튼을 누른 손끝이 무거웠다.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완전한 진실도 아니었다. 강하나는 몇 초 만에 답을 보냈다. 그 속도가 무서웠다. 마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밤을 새운 사람처럼.
"무슨 일인데"
"어디야 지금"
"오빠 회사에서도 연락 안 된다고 전화 왔었어"
한빛물류에서까지 전화가 갔다는 사실에 나는 머리를 짚었다. 새해 첫날 무단결근, 게다가 정체불명의 사고 소식과 함께. 인사팀이 어떤 상상을 하고 있을지 짐작조차 하기 싫었다. 최악의 경우, 실종 처리가 되고, 그다음엔 사망 처리가 되고, 그다음엔 내 자리에 누군가 새로 채용될 것이다. 세상은 사람 하나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간다. 그게 원래 그런 거였다.
"당분간 지방에 일이 생겨서 그래.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해줄게. 진짜 걱정 마."
"오빠 이상해. 진짜야?"
"진짜야."
거짓말이 쌓일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강하나는 결국 더 이상 캐묻지 않았지만, 마지막 메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알겠어. 근데 일주일 넘게 연락 없으면 나 진짜 경찰 부를 거야."
시한이 정해졌다. 일주일.
나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일주일이라는 숫자가 갑자기 아주 짧게 느껴졌다. 인간의 몸으로 회사를 다닐 때는 일주일이 그저 다섯 번의 출근과 두 번의 휴일이었는데, 지금은 그게 생존의 마감 시한처럼 느껴졌다.
설연에게 그 사정을 말하자, 여우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인간화에 필요한 시간은 최소 몇 주다. 일주일로는 어렵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완전한 인간화 전에, 임시로 인간의 형체를 잠깐 빌려 쓰는 방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위험이 크다."
"위험이라니요?"
"몸의 균형이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에서 형체를 바꾸면, 원래의 모습으로 정확히 되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박도현이 걱정스레 끼어들었다.
"그럼 위험한 거 아닙니까. 하지 말게."
"동생한테 얼굴 한 번 보여주는 것 정도는 해볼 만한 값어치가 있지 않느냐."
설연이 묘하게 나를 떠보듯 말했다. 눈이 웃고 있었다. 저 여우는 분명 이걸 재밌어하고 있었다. 나는 고민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강하나에게 살아있는 얼굴을 보여줄지, 아니면 며칠 더 시간을 벌고 안전하게 수련을 계속할지.
박도현은 반대했다. 확률을 따지자면, 되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이유였다. 그의 말도 맞았다. 하지만 나는 강하나가 정말로 경찰서에 가서 신고서를 쓰는 모습을 상상했다. 실종된 오빠, 마지막 목격 장소, 인상착의. 그 서류에 적힐 내 얼굴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얼굴이 될 것이다.
결국 나는 시도해보기로 했다.
설연이 마당 한가운데 작은 진을 그렸다. 흰 모래로 원을 그리고, 그 위에 부적 몇 장을 겹쳐 놓았다. 손짓이 빨랐다. 마치 수백 번 해본 사람처럼 익숙했는데, 그게 오히려 불안했다. 익숙하다는 게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 원 안에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앉았다. 20미터급 몸을 그 좁은 원 안에 다 넣을 수는 없었기에, 몸의 대부분은 원 밖으로 삐져나온 채였다. 꼬리 끝은 마당 담벼락에 걸쳐 있었고, 앞다리 하나는 사당 기둥에 짓눌려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였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설연이 손을 뻗어 주문을 외웠다.
"잠시만이다. 오래 유지 못 해."
순간 몸이 확 줄어드는 감각이 들었다. 비늘이 안으로 말려들어가고, 뿔이 사라지고, 다리가 팔로 바뀌었다. 그 과정이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몸이 급격히 작아진다는 느낌이 속이 뒤집힐 듯 낯설었다. 몇 초 뒤, 나는 인간의 형체로 마당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손이 너무 작았다. 팔뚝에 근육이 하나도 없었다.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릴 만큼 길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마당 한쪽에 놓인 깨진 거울 조각을 집어 들었다.
거기에는 은발의, 낯선 소녀 얼굴이 있었다.
박도현이 뒤로 넘어질 듯 놀란 얼굴로 나를 가리켰다.
"어, 어어? 이게, 이게 어떻게……"
설연도 눈을 크게 떴다. 신수답게 잘 흔들리지 않는 표정이 처음으로 무너진 순간이었다. 여우의 귀가 좌우로 마구 움직였다. 나는 그게 저 여우가 진짜로 당황했을 때 나오는 버릇이라는 걸 그 순간 처음 알았다.
"이건 예상 밖이군."
"예상 밖이라니요! 저 지금 얼굴이 왜 이래요!"
나는 소리를 지르려 했는데, 그 목소리마저 나긋한 소녀의 음성으로 흘러나왔다. 완전한 패닉이었다. 목소리가 낯설다는 게 이렇게까지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몰랐다. 내가 소리를 지르는데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는 기분. 몸을 내려다보니 옷은 진작에 다 찢어져서, 급하게 사당 마루에 걸려 있던 낡은 이불 하나를 뒤집어썼다.
"백룡의 그릇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형체를 빌리면 이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었……"
"경고를 그렇게 대충 하셨습니까?!"
"이런 결과까지는 예상 못 했다는 뜻이다."
"그럼 뭘 예상하셨는데요!"
"뭐, 조금 어려 보이거나, 조금 못생겨 보이는 정도?"
너무 무책임한 대답에 나는 말을 잃었다. 박도현은 이불을 뒤집어쓴 나를 보며 애써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 배려가 오히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이상한지를 실감하게 했다.
"거울 좀 다시 줘보시죠."
거울 속 얼굴을 다시 들여다봤다. 눈매가 낯설었다. 코도 낯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동자 색만은 원래 내 눈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그게 위로가 되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는 채로, 나는 거울을 도로 내려놓았다.
문제는 지금 당장 이 얼굴로 강하나에게 무언가를 보여줄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영상통화라도 했으면 그대로 오해를 살 상황이었다. 오빠가 사라지고 낯선 여자애가 나타났다고 신고했을 게 뻔했다.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실종 신고에 이어 유괴 신고까지 겹치는 그림이었다.
"이 상태로 얼마나 유지됩니까?"
"길어야 한 시간."
"그 한 시간 안에 뭘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결국 나는 그 짧은 인간의 시간을 이용해 사당 안을 둘러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두 발로 걷는 감각이 오랜만이라 처음엔 몇 걸음 걷다 넘어질 뻔했다. 부서진 마루, 곰팡이 낀 서까래, 벽에 걸린 낡은 그림 한 점. 그림 속에는 흰 용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용 곁에 작은 여우 한 마리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그림은 오래되어 색이 다 바랬는데도 용의 형상만은 이상하게 선명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그 부분만 덧칠해온 것처럼.
설연이 그 그림을 보는 내 시선을 알아채고 조용히 말했다.
"그게 그때의 백룡이다."
"저랑 닮았나요?"
"닮은 게 아니라, 네가 지금 그 백룡의 그릇을 쓰고 있는 거다."
그 말이 무겁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그릇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서늘했다. 나는 그릇이고, 그 안에 담기는 건 뭘까. 원래의 강용준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니면 이 낯선 은발 소녀의 모습으로 어떤 새로운 존재가 되어버릴지, 그날은 전혀 알 수 없었다.
한 시간이 지나기 전, 몸이 다시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뼈마디가 하나씩 다시 늘어나는 감각이었다. 이불이 먼저 찢어졌고, 그다음엔 발밑의 흙이 움푹 꺼졌다. 나는 황급히 마당 한가운데로 뛰어갔다. 다행히 원래의 백룡 형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온몸의 비늘이 다시 자리를 잡는 순간, 박도현이 안도의 숨을 길게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왔군. 다행이다."
"다행이라는 말이 그렇게 가볍게 나오면 곤란한데요."
"미안하다. 진심으로 놀랐다."
하지만 그 짧은 실험이 남긴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정말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의미일까. 아니면 그때마다 조금씩 다른 누군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일까. 설연도 그 질문에는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마당의 진을 발끝으로 슥슥 지워버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강하나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다.
"오빠, 나 오빠 회사 동료한테 들었는데, 오빠 자리 벌써 정리됐대.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그 문자를 읽고도 한참 동안 답을 보낼 수 없었다.
액정 위에서 커서만 깜빡였다. 뭐라고 써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회사에서 내 책상이 치워졌다는 건, 세상이 나를 이미 지워버렸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나는 여기, 산속 사당 마당에서 은발 소녀의 얼굴로 한 시간을 살아본 참이었다.
강하나가 알아야 할 진짜 이야기와, 강하나가 믿어줄 이야기 사이의 거리가 그 순간 다시 한번 아득하게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