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회사 자리가 정리됐다는 말은, 며칠 뒤 정식 문자로 확인되었다.
"강용준 사원님, 연속 무단결근 및 연락 불가로 인해 부득이하게 인사 조치가 진행되었음을 안내드립니다." 인사팀 발 문자였다. 짧고 사무적인 그 문장 하나로, 3년 동안 다닌 회사와의 관계가 정리되었다. 세상은 이럴 때 냉정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세 줄짜리 문자였다. 3년의 출근과 야근과 회식과 눈치와 보고서가, 딱 세 줄로 정산됐다. 인사팀 담당자의 이름조차 없었다. 그냥 '인사팀'이었다. 그 익명성이 오히려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박도현이 그 문자를 대신 확인하고는 씁쓸하게 말했다.
"미안하네. 나 때문에 여기 붙어 있느라 자리를 잃었구먼."
"당주님 때문이 아니에요. 어차피 이 상태로 회사에 갈 수도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사람 자리 하나가 사라진 게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몸이 반쪼가리 용이었는데 출근했으면 그게 더 문제였겠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은 복잡했다. 인간으로 돌아가도 돌아갈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상실감보다 더 크게 자리 잡은 감정이 있었다. 이제 이 사당을 떠날 이유가 하나 줄었다는, 조금은 뒤틀린 안도감이었다.
설연은 그 소식을 듣고도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였다.
"인간 세상의 직업이란 게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거였나."
"쉽지 않았어요. 그냥 세상이 빨랐던 거죠."
"흥미롭군. 백룡이던 시절엔 백 년 단위로 세상을 지켜봤는데, 요즘은 며칠 단위로 사람의 자리가 사라지는구나."
"그때는 사람들이 백 년을 기다려줬나 보죠."
"기다려준 게 아니라, 딱히 대신할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그 무심한 비교가 오히려 위로가 됐다. 나는 그날부터 본격적인 인간화 수련에 들어갔다.
수련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뉘었다.
첫째, 염화(念化). 몸의 형체를 마음의 이미지로 통제하는 훈련이었다. 설연은 내 앞에 놓인 촛불 하나를 가리키며, 그 불꽃의 흔들림에 맞춰 숨을 쉬라고 했다. 처음에는 우스울 정도로 안 됐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내 몸의 비늘이 불규칙하게 곤두섰다. 한번은 숨을 너무 세게 들이쉬는 바람에 촛불이 아예 꺼져버렸다. 설연이 그걸 보고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백룡이 촛불 하나를 못 이기다니."
"바람을 낸 게 저인지도 몰랐어요."
"그게 문제라는 거다."
며칠이 지나자 겨우 촛불과 호흡을 맞출 수 있게 됐다. 불꽃이 흔들리면 나도 흔들리고, 불꽃이 잦아들면 나도 잦아들었다. 그 리듬을 몸에 새기는 데만 사흘이 걸렸다.
둘째, 용맥감지(龍脈感知). 산 전체를 흐르는 기운의 결을 느끼는 훈련이었다. 설연은 나를 사당 뒷산 정상까지 끌고 올라가, 눈을 감고 발밑의 흐름을 느껴보라고 시켰다. 처음엔 그냥 흙과 바위였다. 발바닥에 닿는 건 차가운 돌과 축축한 이끼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어렴풋이 산 전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맥동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심장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 감각은 도장에서 상대의 힘의 방향을 읽던 감각과 이상하게 닮아 있었다. 발끝으로 상대의 체중이 어디로 쏠리는지 읽어내던 그 순간의 감각이, 산 전체의 흐름을 읽는 감각으로 그대로 확장됐다.
"이게 뭔지 알겠나."
설연이 물었다.
"기운이 흐르는 방향 같은데요."
"그럼 그 방향을 따라가지 말고, 방향을 만들어봐라."
"그건 다음 단계 아닌가요?"
"눈치는 빠르군."
셋째, 인간화 술법. 앞의 두 훈련이 충분히 쌓여야만 시도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였다.
"몸의 균형이 잡히지 않은 채로 시도하면 지난번 같은 사고가 또 난다."
설연이 경고하듯 말했다. 나는 그 은발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은 사양이었다. 한 번 더 그 얼굴이 됐다가는 사철이가 아예 나를 못 알아볼지도 몰랐다.
수련은 고됐지만, 그 과정에서 사당 생활의 리듬도 조금씩 만들어졌다.
박도현은 아침마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사왔다. 참치마요와 전주비빔, 그리고 늘 하나는 실패하는 신상품이었다. 사철이라는 이름의 진돗개가 사당 뒤편에 살고 있었는데, 처음엔 나를 보고 사흘 내내 짖다가 나흘째부터는 그냥 옆에 와서 뒹굴었다. 다섯째 날부터는 내가 촛불 수련을 할 때마다 옆에 앉아 같이 촛불을 쳐다봤다. 개도 리듬을 아는 건지, 그냥 심심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설연은 매일 오후 촛불 수련이 끝나면 툇마루에 앉아 낡은 한지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는 알아볼 수 없는 고대 문자가 가득했다. 한 번은 무슨 내용인지 물었더니, "네가 읽어도 이해 못 할 내용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왜 매일 읽어요?"
"이해가 아니라 확인하는 거다. 잊지 않으려고."
박도현은 매일 아침 마당을 쓸었다. 설연은 매일 오후 촛불 곁에 앉았다. 나는 매일 저녁 뒷산을 올랐다. 그렇게 각자의 일상이 사당이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나란히 흘러갔다. 박도현의 빗질 소리, 설연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 사철이가 마당을 뛰어다니는 발소리. 그 세 가지 소리가 어느새 내 하루의 배경음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뒷산 수련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박도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자네, 인간으로 돌아가면 정말 이 사당에서 봉사할 생각인가?"
"약속했으니까요."
"약속이 아니라도, 여기 계속 있고 싶은 마음이 있나?"
나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회사도 잘렸고, 원래의 삶은 이미 상당 부분 무너져 있었다. 서울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밀린 월세와, 몇 개의 확인하지 않은 부재중 전화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에서의 하루하루가 나쁘지 않았다. 설연의 냉소적인 잔소리도, 박도현의 서투른 배려도, 사철이의 미련한 애정도. 그 모든 게 어느새 익숙해지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근데 여기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요."
박도현이 그 말에 조용히 웃었다.
"나쁘지 않다는 게, 나쁘게 안 들리는 게 다행이구먼."
"칭찬이었어요, 그거."
"알아. 그냥 확인한 거야."
그날 밤, 설연이 나를 사당 안쪽, 낡은 신위가 놓인 방으로 불렀다. 촛불 몇 개가 밝혀진 그 방에는 오래된 위패와, 첫날 마당에서 봤던 흰 용과 여우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림 속 용의 눈이 촛불 그림자에 따라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은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이다."
설연이 말했다.
"염화와 용맥감지가 어느 정도 안정됐으니, 이제 본격적인 인간화 술법을 시도해볼 수 있다. 다만 이번엔 임시가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시도가 될 거다."
"되돌릴 수 없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성공하면 온전히 인간으로 돌아온다. 실패하면, 백룡의 형체로 영원히 고정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 말이 방 안의 촛불처럼 흔들리며 가슴에 박혔다. 박도현이 문밖에서 그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조심스레 방으로 들어왔다.
"위험한 시도라면, 좀 더 준비 기간을 두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준비는 이미 충분하다. 오히려 더 미루면 그릇이 백룡 쪽으로 완전히 굳어버릴 위험이 있어."
설연의 목소리에는 처음으로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 조급함의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그것이 단순히 나를 위한 걱정만은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결정은 네가 해야 한다, 백룡."
설연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시도할지, 아니면 좀 더 기다릴지."
나는 촛불을 바라보았다. 그 흔들림에 맞춰 호흡을 가라앉히던 며칠간의 수련이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휴대폰 속에 쌓여가는 강하나의 문자들이 떠올랐다.
"오빠 언제 와?"
"오빠 진짜 이러기야?"
"엄마가 계속 물어봐. 뭐라고 해야 돼?"
시한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일주일. 그 시간은 벌써 절반 넘게 지나 있었다. 남은 날짜를 세어보니 손가락 세 개면 충분했다. 세상이 그렇다. 사람이 사라지는 데는 문자 한 통이면 충분하고, 사람이 돌아가는 데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지금 하겠습니다."
내 대답에 설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촛불이 있는 방 한가운데, 흰 모래로 그려진 새로운 진 위에 나를 세웠다. 지난번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문양이었다. 원 안에 원이 겹치고, 그 사이사이로 처음 보는 글자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설연의 손끝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와 그 문양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몸의 중심을 놓지 마라. 흐름을 따라가되, 끌려가지는 말고."
도장에서 늘 듣던 말과 닮아 있었다. 상대의 힘에 몸을 맡기되, 내 중심축만은 절대 내주지 말 것. 사범님이 입에 달고 살던 그 말이, 이 낯선 방에서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흐름 속에서 내 중심축을 찾으려 애썼다. 몸이 서서히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비늘이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감각, 뼈가 재배열되는 감각, 몸의 크기가 급격히 줄어드는 감각이 동시에 몰려왔다. 마치 몸 안에서 수백 개의 매듭이 동시에 풀리고 다시 묶이는 느낌이었다.
박도현이 문가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사철이도 어느샌가 문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낮게 낑낑거렸다. 아무도 소리 내지 못했다.
그 순간, 진의 문양이 격렬하게 흔들리며 갑자기 붉은빛이 폭발했다.
설연이 다급하게 외쳤다.
"버텨! 중심을 놓치면 그대로 굳어버린다!"
나는 그 빛 속에서, 내가 이제 완전히 다른 존재로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강용준으로도, 백룡으로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붉은빛이 눈을 찔렀고, 귀가 먹먹해졌고, 그 사이로 설연의 목소리만 아득하게 들려왔다.
"눈을 뜨지 마라. 아직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몸 어딘가가, 인간의 것인지 용의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 감각으로, 마지막 매듭을 향해 뜨겁게 조여들고 있었다.